- <아랑사또전>, 처녀귀신 얘기라는 탈 쓴 추리극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TV를 보고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있기에 드라마라면 모조리 섭렵하는 것이 마땅하고 옳은 일이나 어쩔 수 없이 시청을 포기하고 마는 경우가 있다. 그 중 하나가 귀신 이야기다. 워낙 무서운 이야기라면 태생적으로 질색을 하기 때문인데 자칫 잘못해서 한 장면이라도 봤다가는 다음 날 머리를 감는 일조차 꺼려질 정도로 찝찝한데다가 때로는 그 후유증이 일주일 이상 가기도 하는 통에 되도록이면 피하는 게 상책.

그래서 처녀귀신의 원한을 고을 신임 사또가 풀어주는 옛날이야기를 모티브로 했다는 MBC <아랑사또전>도 볼까 말까 많이 망설였었다. 귀신이야기 중에 <전설의 고향> 단골소재인 처녀귀신 이야기만큼 겁나는 게 또 있을까. 머리를 풀어 헤친 처녀귀신이 칼을 입에 물고 옷에 피 칠을 하고 나타나서는 “사..또.또,,, 억울하옵니다.” 하며 애절히 우는 광경, 그 뿌옇게 안개 핀 푸르죽죽한 배경은 상상만 해도 섬뜩하지 않은가. 결말을 다 알면서도 볼 적마다 매번 이불을 뒤집어쓰게 만드는 게 바로 처녀귀신 이야기. 아, 맞다. 언젠가 이불 속에서 귀신이 발견되는 영화를 본 이후엔 이불도 맘 놓고 뒤집어쓰지 못하는 형편이다.

그런데 <아랑사또전>은 처녀귀신은 물론 저승사자며 잡귀들이 떼거지로 등장하는데도 하나도 무섭지가 않다. 주인공 아랑의 애통 절통한 사연뿐만이 아니라 곳곳에 한이 배인 사연들과 말 못할 슬픔을 간직한 인물들이 포진해 있지만 시종일관 유쾌함을 잃지 않는 특이한 드라마다.

사실 방송 첫 날 망설이던 끝에 채널을 고정하게 만들었던 건 아랑 역의 연기자 신민아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지 싶다. 장르가 전혀 다르긴 했으나 SBS <내 여자 친구는 구미호> 때도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으니까.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일 때도, 피로 칠갑을 한 처녀귀신일 때도, 산발을 해도, 꼬질꼬질한 옷을 걸쳐도, 외로울 때나 슬플 때나, 밝고 순수하다 못해 심지어 귀신임에도 피하고 싶은 게 아니라 말을 걸고 싶어지니 묘한 매력을 지닌 연기자이지 않나. 마침 엉겁결에 떠밀려 밀양 사또 자리에 오른 은오(이준기) 도령과 아랑의 입맞춤 장면이 있었는데 현실이 아니라 은오의 꿈이긴 했어도 귀신과의 입맞춤이라니! 소름이 끼쳐야 마땅할 상황이건만 웬 걸, 상큼하기까지 했다.







또 하나, 극에 몰입하게 만드는 건 아랑과 은오, 아랑과 정혼한 사이였다는 최대감집 양아들 주왈, 그리고 속내를 짐작할 수 없는 저승사자 무영(한정수) 등 등장인물들의 감춰진 이야기 하나하나가 짜임새가 있어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은오가 단지 서자라는 사실 하나로 세상을 등지고 떠돌게 됐을까? 무당도 아니거늘 어찌 귀신을 볼 수 있는 것일까? 은오의 어머니(강문영)의 비녀를 왜 아랑이 지니고 있는 걸까? 주왈이 끼고 있는 검은 반지는 무슨 힘을 지닌 걸까? 살아난 아랑과 마주친 순간 반지가 왜 반응을 한 걸까? 보름날에 주왈에게 일어날 일은 뭘까? 염라대왕의 심복이지만 실제로는 옥황상제와 더 가까운 사이이지 싶은 무영은 어떤 존재일까? 뭐지? 왜? 머릿속이 의문부호로 가득해진다. 아랑이 살해된 이유 말고도 궁금한 것이 너무도 많아진 것이다.

그리고 이 드라마를 밝은 기운으로 채우는 건 염라대왕(박준규)과 옥황상제(유승호)의 옥신각신이다. 홈페이지의 설명에 따르면 흰 수염을 휘날리는 노인인 염라대왕과 미소년 옥황상제가 이란성 쌍둥이일 수도 있다나? 이처럼 실소를 머금게 만드는 설정들도 흥미진진하고 손발이 절로 오그라들게 만드는, 마치 홍콩 무협 판타지에나 나올 법한 대사들을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진지하게 읊는 연기자 유승호를 보는 재미도 있다. 무릇 캐릭터가 확실하면 캐릭터들이 살아서 움직이며 서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어가기 마련, 이제 <아랑사또전>은 단순히 처녀귀신의 한을 풀어주는 이야기가 아니다. 더구나 이제는 염라대왕의 말대로 세 번의 보름을 넘기는 잠시잠깐으로 그칠지 앞으로 쭉 계속될지 알 수는 없으나 아랑이 사람이 됐지 않나.





사람이 된 아랑은 기일 내에 스스로 자신의 죽음의 진실을 알아낼 수가 있을까? 그보다 더 귀추가 주목되는 건 염라대왕이 아랑을 다시 살려주는 조건으로 내건 내기에서 이겨 옥황상제의 꽃다운 몸을 차지할 수 있을지. 밀양 전설이라는 탈을 쓰고 우리에게 다가온 신개념 추리극 <아랑사또전>의 전개가 기대가 된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그림 정덕주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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