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어떤 역사교육보다 유익했던 ‘라디오스타’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MBC <황금어장> ‘라디오 스타’, ‘아이 러브 코리아 특집’에서 얼마 전 ‘8.15 독도 횡단 프로젝트’를 마치고 돌아온 김장훈과 서경덕 교수에게 MC 윤종신이 물었다. “일본이 자꾸 도발을 하잖아요. 우리도 같이 들끓어야 하는 거예요? 아예 대꾸를 안 해줘야 되는 거예요?” 반가웠다. 나 역시 궁금했던 부분이니까.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옳은가. 같잖은 말이니 무시해치우는 편이 옳은 건지, 아니면 조목조목 반박을 해야 옳은 건지.

일본과 별 상관이 없이 살아가는 나 같은 사람이야 그냥 혼자 생각하다 말면 되는 일이지만 이를테면 일본 선수와 직접 몸으로 부딪힐 일이 많은 우리나라 운동선수들이나 현지에서 활동해야 하는 한류 스타들, 또 이런저런 사유로 일본과 좋은 관계를 꾸준히 이어가야 하는 이들은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현명한 길인지 막막하지 싶다. 뭔가 국가 차원의 지혜로운 지침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는지.

독도 영유권 분쟁 문제가 처음 내 머리로, 가슴으로 파고 들어온 시기는 초등학교 4학년, 11살 때다. 40년도 더 지난 일이어서 당시 반 친구들 이름이나 얼굴은 가물가물하지만 그 기억만큼은 지금도 생생하다. 일본이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날 처음으로 접한 나, 분한 마음에 손을 번쩍 들고 “선생님, 우리가 독도를 지켜야 하는 이유가 뭔가요?”라고 물었었다. 어린 소견이었지만 뭔가 가슴을 울릴만한 의식 있는 정의를 담임선생님이 내려줄 것을 기대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돌아온 건 허망하게도 “지금까지 설명했는데 뭘 들었어?”라는 짜증 섞인 반응뿐이었다. 그리고 이내 수업은 다음 단원으로 넘어가 버렸다.

어느 나라 소유냐에 따라 영해가 달라지고, 경계수역 여부에 따라 광대한 지하자원이 왔다 갔다 한다. 뭐 이런 경제적인 이유 말고 독도를 사수해야 하는 상징적인 이유를 명확하게 설명해줄 수는 없었던 걸까? 일본은 왜, 무슨 까닭에서 시도 때도 없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건지, 우리가 어떤 자료와 이론으로 그 주장에 반박할 수 있는지, 잠시 짬을 내 아이들끼리 토론이라도 하게 했다면 어땠을까? 지금 와 생각해보면 서른 안팎이었을 그 선생님도 교과서 외에는 아는 지식이 별로 없었지 싶다. 아니 관심 자체가 아예 없었을지도 모르겠고.





그 후 강산이 몇 차례 바뀌었지만 교육 현장이 크게 달라졌을 것 같지는 않다. 아이들이 아닌 지나가는 어른을 붙들고 묻는다 해도 독도가 왜 우리 땅인지 확실히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으니까. 아마 ‘그런 노래가 있지 않느냐’는 답이 태반이리라. 이것이 바로 국사 교육에 소홀히 해온 우리의 현실이 아니겠나.

그러나 발 빠른 일본 방송은 이달 들어 독도 문제가 첨예해지자 몇몇 예능 프로그램에서까지 독도 문제를 자세히 다루는 등 영유권 주장 굳히기에 여념이 없다. 한국이 어처구니없게도 일본 땅을 불법 점유하고 있다며, 이래서야 되겠느냐며 시청자를 설득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이 독도를 실효지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따라서 계속해서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지 않으면 결국 독도는 한국 땅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생각으로 교과서는 교과서대로,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끊임없는 세뇌와 물밑 외교로 각개전투를 벌이고 있는 일본과 달리 우리의 대처는 누가 봐도 미흡한 편이다.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을 만큼 결정적인 역사적 증거를 들이댄다 해도 영유권 주장을 멈출 리 없는 일본이거늘 왜 주먹구구식 논리가 아닌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대응으로 맞서지 못하는 걸까.




그런 의미에서 감정적으로 대할 일이 아니라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고, 이해시키고, 설득시키기 위해 공부를 하고, 준비를 하고, 반박할 수 있는 조항을 모조리 외우고 있어야 한다는 김장훈의 말, 그리고 해외 언론에 독도 홍보 광고를 개재 할 때 독도가 우리 영토라는 건 역사적, 지리학적, 국제법적으로 엄연한 사실임으로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문구는 일부러 넣지 않는다, 대신 문화, 스포츠, 관광, 이 세 가지로 기획을 하고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섬 독도로 놀러오세요.“로 마무리 한다는 서경덕 교수의 말은 역사 시간에 받은 어떤 교육보다 유익했다고 본다. 김장훈의 말마따나 ‘라디오 스타’와는 어울리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그림 정덕주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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