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샅치기가 사치기가 된 뒤

[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샅치기놀이’가 있다고 한다. 둥그렇게 모여 앉아 시작하는 사람이 ‘샅치기 샅치기 샅뽀뽀’라고 외치면서 어떤 동작을 하면 옆사람이 돌아가면서 그 동작을 따라하다가 틀린 사람이 벌칙을 받는 방식이라고 한다. 참가자들은 입으로는 ‘샅치기’라고 하면서 실제로는 자신과 옆사람의 무릎을 친다.

샅치기놀이는 실뜨기, 땅따먹기, 사방치기 등과 함께 아이들(이 즐겼던) 민속놀이로 소개된다. 아이들이 이 놀이에 어떻게 그 가사를 붙이게 됐는지는 알 수 없다. 요즘처럼 인터넷도 게임은 물론 TV도 없었던 시절, 아이들은 뜻 모를 노래도 놀이 소재로 삼았다고 짐작된다. 내가 어렸을 적 여자 아이들이 ‘전우여 잘가라’를 부르며 고무줄 놀이를 한 게 또 다른 예가 되겠다.

샅은 다리와 다리 사이를 가리킨다. 씨름에서 다리 사이와 허리에 둘러 묶는 천을 샅바라고 한다. ‘바’는 ‘참바’ ‘밧줄’과 같은 말로 삼이나 칡으로 세 가닥을 지어 굵다랗게 꼰 줄을 가리킨다.

손가락과 손가락 사이는 손샅이고, 발가락과 발가락 사이는 발샅이다. 남을 욕할 때 ‘발샅에 낀 때’에 빗대는 방법이 있다. 고샅은 시골 마을의 좁은 골목길이나 골목길 사이, 좁은 골짜기의 사이를 뜻한다.

샅을 사타구니라고도 한다. 사전은 사타구니를 ‘샅을 낮잡아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한다. 실제로 ‘구니’는 생활용품인 바구니와 한자어인 비구니를 제외하면 대개 단어 끝에 붙어 낮추거나 편하게 하는 역할을 하는 듯하다.

‘구니’로 끝나는 말에는 어처구니, 틈바구니, 악다구니, 볼따구니, 뺨따구니, 철따구니 등이 있다.

‘구니’하면 떠오르는 접미사가 ‘서니’다. 구니와 서니는 어떤 사이일까? 자매는 아니더라도 사촌쯤은 되지 않을까? 철따구니와 비슷한 말이 철딱서니다. 더 있다. 볼따구니의 제주 방언이 볼탁서니다. 어둑서니는 어두운 밤에 아무것도 없는데, 있는 것처럼 잘못 보이는 것을 뜻한다.

‘서니’도 구니’처럼 대상을 낮추고자 할 때 붙인다. ‘꼴’이 꼴이 아닐 때 ‘꼬락서니’라고 부른다.

동물과 식물에도 ‘서니’로 끝나는 종이 있다. 꼭두서니는 여러해살이 덩굴풀이다. 군평서니는 남해 등지에서 사는 몸길이 30cm 정도의 물고기.

사전에는 ‘샅치기’가 나오지 않는다. 대신 ‘사치기’가 표제어로 올랐다. ‘아이들 여럿이 둘러앉아 ‘사치기 사치기 사뽀뽀’ 하면서 우스운 몸짓을 흉내내는 놀이’라고 설명한다.

아이들 마음엔 티끌이 묻지 않았다. 샅치기 또는 사치기 놀이를 한 아이들 가운데 그 뜻을 아는 아이는 많지 않았으리.

샅치기는 사치기로 바뀌었다. 그 사치기도 이제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 않을까 싶다.


칼럼니스트 백우진 <안티이코노믹스><글은 논리다> 저자 smitten@naver.com


[사진=바보새 <아이들 민속놀이 100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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