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애완견만도 못한 몰지각한 사람들
- 'TV 동물농장', 칭찬 받아 마땅한 이유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수년 전 SBS 'TV 동물농장'에서 연예인 모 씨네 개들을 집중 조명한 적이 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의 어머니가 키우시는 개들이었지만. 녀석들이 얼마나 영특한지, 또 각기 어찌 그리 습성이 다를 수가 있는지 ‘사람과 다를 바 없구나’, 매번 감탄을 하면서 봤었다. 이 프로그램에 취미를 붙이고 일요일 아침마다 기다리며 보게 된 것도 다 녀석들 때문이지 싶다. 훗날 나름 주인공이던 개가 죽었다는 기사가 뜨던 날은 한참 동안 마음이 심란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였으니 나도 모르는 사이 남의 집 반려견들과 정이 푹 들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평생 단 한 번도 개를 키워본 적이 없는 나는 개가 사람 말을 다 알아듣는다는 얘기에는 반신반의할 수밖에 없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주인의 목소리까지 구별하는 걸 보면서도 설마? 하는 마음이었다. 아무래도 방송인지라 과장이 따랐겠거니 했다. TV에서 뭔가 재미있거나 신기한 걸 보면 그거 봤느냐고, 꼭 보라고 떠들고 다니기를 좋아하는 나, 그 당시에도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수다 깨나 떨었던 것 같다. 그러면 애견인들은 신바람이 나서 자신의 경험담을 늘어놓으며 맞장구들을 쳤고 그와 달리 비애견인들은 대체로 나처럼 의심어린 반응을 보였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도 개가 주인 말 알아듣는다는 걸 믿는다. ‘확실히’를 덧붙인다면 더 좋겠다. 우리 집도 이젠 당당히 애견가정 대열에 합류했으니까. 우리 식구가 된 녀석을 소개하자면 4개월 반 된 포메라니안 수컷. 가수 싸이의 해외 진출 이후 요즘 ‘강제’라는 단어가 유행인가 본데 사실 이 녀석도 자의가 아닌 강제로 키우게 된 셈이다. 오밤중에 딸아이 품에 안겨 떠밀듯 들어온 녀석, 다시 돌려보내기엔 시간이 너무 늦은지라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고 아침이 되고난 후엔 어영부영 우리 집에 눌러 살게 되었다.

보통 개를 입양하려면 가족들 간의 충분한 상의가 필수라는데 우리 집의 경우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셈이다. 결사반대를 하던 아버지나 어머니들도 막상 키우게 되면 더 개를 귀히 여기기 마련이라는 주변 얘기를 믿고 딸아이가 일단 일부터 저지른 건데, 어쨌든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제 이 녀석은 우리 집안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얘를 내보내려면 차라리 네가 나가라는 소리를 서로 주고받을 정도가 되었으니 두 말해 무엇하리요.

물론 마냥 즐거움만 주는 건 아니다. 아기 키우는 집처럼 강아지 물품으로 집안이 늘 어수선한데다가 그간 물어뜯어 망쳐놓은 물건이 한두 개가 아니니까. 게다가 하도 달려들어 뭐 하나 마음 편히 먹을 수도 없고 또 현관 벨이 울릴 때마다, 누가 올 때마다 난리법석을 치며 짖어대는 통에 여유 자적함은 아예 물 건너 가버렸다. 그러나 그 모든 걸 감수하고 남을 만큼 따스함을 가져다준 녀석, 여러모로 참 고맙다.







다시 개가 사람 말 알아듣는다는 대목으로 돌아가 보자. 태어나 두 달이 지나서 우리 집에 왔는데 그때부터 이미 눈치가 있었다. 그리고 보름 남짓 지나니 알아듣는 단어가 하루가 다르게 늘기 시작했다. 그런 것들을 보며 드는 생각은, 어떻게 이렇게 말 다 알아듣고, 주인 알아보고, 눈치 빤한 녀석을 버릴 수가 있지? 솔직히 그전에는 유기견 문제가 심각하다 해도, 너무하다 싶어도 키우던 개를 버리는 사람들을 향해 대놓고 욕을 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기에, 무슨 사정이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라서. 그러나 이젠 욕이 절로 나온다. 정말 이해가 안 간다.

지난 주 가수 바다의 내레이션을 배경으로 방송된 ‘인간과 반려견의 행복한 동행’,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한 'TV 동물농장' 유기견 프로젝트 '더 언더독' 첫 번째 이야기를 보는 내내 참을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오르지 뭔가. 호러물도, 납량특집 귀신 이야기도 아니거늘 보다 못해 눈을 질끈 감은 경우는 처음이지 싶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게 사람이라는 걸 몰랐던 바는 아니지만 독하고 모진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을 줄이야. 키우다 버려지는 반려견이 한 해에 무려 10만 마리란다. 버려진 개들의 태반이 한 달도 채 안 돼 안락사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단다.

또한 수요를 위해 우리에 갇혀 죽어라 생산만 하다 생을 마치는 어미 개도 부지기수란다. 차마 방송된 내용을 이 자리에 세세히 옮기지는 못하겠다. 너무 가슴 아프고 미안해서. 사람의 필요에 의해 태어나 사람의 손에 의해 생을 마감하는 장면도 끔찍했지만 더 가슴이 서늘했던 건 한 마디로 개 공장에서 솎아냄을 당해 버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말티즈 새끼들이었다.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어린 강아지들이 과일도 아니고 채소도 아니거늘 어찌 이리도 잔인할 수 있을까.






마지막 장면, 안락사 되어 이름도 없이 번호만 남긴 채 신문지에 싸여진 강아지는 마침 우리 집 녀석과 같은 종인 포메라니안. 아, 그야말로 가슴이 미어졌다. 자고 있는 우리 집 녀석을 끌어 당겨 쓰다듬으며 평생을 꼭 함께 하리라고 약속했다. 한때 조작 방송 논란이 일었던 적도 있고 동물의 사랑스러운 면만 지나치게 부각시켜 무분별한 동물 사육을 부추겼다는 비난도 일기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번 '더 언더독' 프로젝트가 몰지각한 애완견 사육에 크게 경종을 울려줬다는 점에서 'TV 동물농장'은 칭찬 받아 마땅하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그림 정덕주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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