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레가 끓다’와 ‘부아가 나다’, 흥미로운 관용구인 이유

[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옥잠화(玉簪花)는 백합과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꽃 봉오리가 벌어지기 전 모습이 비녀 같다고 해서 이 이름을 얻었다. 그래서 우리말 이름은 옥비녀꽃이다.

잠(簪)은 비녀를 뜻하는 한자. 화잠(花簪)은 새색시가 머리를 치장하는 데 쓰는 비녀다. 옥판에 잔새김을 한 뒤 그 자리에 금·은 등을 박아 꾸미고 떨새를 앉혀 만든다. 떨새는 가는 은실로 용수철 모양을 만들고 그 위에 새 모양을 붙인 장식으로 흔들리면 발발 떨린다. 족두리나 큰 비녀에 단다.

옥잠화와 잎이 비슷하게 생긴 수생식물이 부레옥잠이다. 부레옥잠은 부풀린 잎자루에 공기를 넣어 물에 뜬다. 잎자루가 물고기의 부레 모양이고 부레와 비슷한 구실을 하는 것이다.

부레는 물고기의 몸 속에 있는 공기 주머니로 뜨고 가라앉는 것을 조절하는 기능을 한다. 구명부표(救命浮標)를 다른 말로 구명부레라고 한다.

부레는 부레풀이라는 뜻도 지닌다. 부레풀은 민어의 부레를 끓여서 만든 풀이고 교착력이 강해 목기(木器)를 붙이는 데 많이 활용된다. 부레풀로 물건을 붙이는 일을 부레질이라고 한다. 옛날 아이들은 연줄을 질기게 하려고 부레 끓인 물을 연줄에 먹였다. 이를 부레뜸이라고 했다. 부레뜸을 하는 김에 물에 사금파리 가루를 섞어서 먹여 연줄을 실톱처럼 만들었다. 상대방의 연줄을 끊는 연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였다.

연싸움은 제주도 사투리로 연타발이다. 고구려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 연타발과 발음이 같다. 물론 연관은 전혀 없을 게다. 연타발이라는 단어는 요즘엔 음식점 이름에도 쓰인다. 이 이름이 앞으로 어떤 분야로 진출할지 궁금하다.

부레는 인기 있는 음식이자 식재료다. 여느 물고기의 부레는 먹잘 게 없다. 민어는 다르다. 민어는 길이가 1m 가까울 정도로 크다. 부레도 큼지막하다. 부레는 날로 썰어서 기름소금 같은 데 찍어 먹는다. 부레찜이나 부레저냐로 요리하기도 한다. 둘 다 민어 살과 소고기를 이긴 뒤 양념을 해 부레 속에 넣고 동여맨 뒤 익힌 음식이다. 익히는 방법이 다르다. 삶거나 찐 뒤 썰어낸 게 부레찜이고, 삶아 부친 뒤 썰어놓은 음식이 부레저냐다. 저냐는 얇게 저민 고기나 생선 따위에 밀가루를 묻히고 달걀 푼 것을 씌워 기름에 지진 음식을 뜻한다.

‘부레가 끓다’는 ‘몹시 성나다’는 말이다. 예컨대 ‘억지로 참자니 속에서 부레가 끓었다’라고 표현한다. ‘부아가 나다’나 ‘부아가 치밀어오르다’는 관용구도 뜻이 비슷하다. 여기서 ‘부아’는 노엽거나 분한 마음을 뜻한다. 부아의 다른 뜻은 허파다.

사람의 허파를 가리키는 낱말 ‘부아’가 물고기 ‘부레’와 한 음절이 같고 비슷한 관용구에 쓰는 점이 흥미롭다. 더 재미난 사실은 부레와 부아가 생물학적으로는 상동기관(相同器官)이라는 점이다. 상동기관은 본디 같은 원형에서 갈라져 형태와 기능이 달라진 두 기관을 가리킨다. 사람 팔과 고래 가슴지느러미도 상동기관이다.

부레가 허파로 진화되는 과정을 폐어(肺魚)가 보여준다. 폐어는 물 속에서는 아가미로 호흡하다가 건기에 강물이 마르면 땅 속에 몸을 묻고 지내면서 공기호흡을 한다. 공기호흡은 허파처럼 발달한 부레로 한다.

우리 조상이 부레가 부아로 진화했다고 상상해 낱말을 지어냈을 리는 없다. 그런데도 두 단어를 닮게 빚고 비슷한 관용구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조어 감각 측면에서 참 흥미로운 대목이다.


칼럼니스트 백우진 <안티이코노믹스><글은 논리다> 저자 smitten@naver.com


[사진=민어와 민어부레. 목포 남도농수산 생선카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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