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편지를 쓴 지, 참 오래됐습니다. 업무에 필요한 문서를 만들어 보내긴 합니다만. 제가 수습기자 시절에 한 선배는 편지를 쓰기 어렵게 된 괴로움을 토로했습니다. ‘모처럼 해외에 출장갔다가 엽서를 샀다. 그런데 그 좁은 엽서 한 면을 채우지 못하겠더라.’ 이런 얘기였습니다.

저는 당시엔 그 선배 말을 수긍하지 못했습니다. ‘글 쓰는 일을 업으로 하는 기자가 엽서 한 장 쓰지 못하다니.’ 이 직업에 짧지 않은 기간 몸담게 됐습니다. 이제 다시 생각해보니 그럴 법도 합니다. 기자는 사실로 말합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사실을 다수의 독자에게 전합니다. 물론 그 사실은 순수한 사실이라기보다는 일정한 틀, 혹은 특정한 시각 속에 채택된 사실입니다.

2월에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해안경계부대 소초에서 복무하는 일병이 보낸 편지였습니다. 지난해 이코노미스트에서 몇 달 인턴으로 근무하고 입대한 친구가 보냈습니다. 내용을 읽어보니 꼭 답장을 보내야 할 편지였지만, 차일피일 미뤘습니다. 주말에 빈둥댈 때면 ‘뭘 그렇게 꾸물대느냐’고 편지를 쓰지 못하는 절 자책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내용으로 회신해야 할지 부담이 컸기 때문에 미룬 측면도 있을 겁니다. 당사자의 동의 없이 그 일부를 소개합니다.

물론 그것이 매번 보내겠다고 약속한 독자편지를 단 한번도 쓰지 못한 핑계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틈나는 대로 이코노미스트를 읽었습니다. 선배들의 맛깔나는 기사, 유쾌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기사들을 밑줄 긋고, 동그라미 치고, 페이지 한 구석을 접기도 하며 읽었습니다. 제가 때로 피곤을 무릅쓰고 침낭 안을 LED로 밝힌 이유입니다. (중략)

경제, 시사, 외국어, 작문…. 기초를 튼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성실하고 여러 모로 준비된, 요새 보기 드문 참 괜찮은 청년으로 거듭나겠습니다. (하략)

마침내 어제 그 친구에게 답장을 썼습니다. 최근 이코노미스트 3호와 함께 부쳤습니다.

전방 어느 소초의 침낭 안에 LED를 밝히게 하는 매체. 피로로 무거워진 눈꺼풀을 내리지 못하게 하는 매거진. 바로 이코노미스트입니다. 직장과 가정에서도 그런 독자가 많아지도록, 독자가 매주 새 책을 기다리도록 이코노미스트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합니다.


칼럼니스트 백우진 <이코노미스트 편집장> cobalt@joongang.co.kr


[사진=방시혁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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