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어때서. 무책임한 남자 만났거나, 불장난 결과거나, 남자가 죽었거나,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미혼모야. 좋아서, 즐거워서가 아니라 차마 뱃속의 아이 죽이는 짓 할 수 없어서 미혼모란 말이야. 대부분 마음 약하고 착해서 미혼모되는 거야. 내 경우는 다르지만. 모두 미혼모 아닌 여자들보다 몇 갑절 열심히, 죽도록 일해 아이 키워내. 사회적으로 백안시당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이야. 엄마 딸이 미혼모야. 편견 버려. 선진국은 미혼모에 대한 편견 같은 거 없어.”

- JTBC <무자식이 상팔자>에서 안소영(엄지원)의 한 마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이제 4회가 방송된 김수현 작가의 JTBC <무자식이 상팔자>. 손꼽아 기다렸던 탓인지 사실 첫 주에는 아쉬움이 좀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마치 데자뷰처럼 지나치게 익숙한 인물들, 어디선가 본 듯한 장면이며 인간관계들이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점이었는데, 뭐랄까? 지금까지의 역작을 버무려 놓은 느낌이라고 할까? 어찌나 비슷비슷한 설정이 많은지 <무자식이 상팔자>가 방송을 시작했다는 걸 모르는 시청자일 경우 새 드라마가 아닌 작가의 전작으로 착각할 수 있지 싶다.

예를 들면 며느리 이지애(김해숙)와 시어머니 최금실(서우림)이 마당에서 얘기를 주고받는 장면은 SBS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김민재(김해숙)가 밭일을 하는 시어머니(김용림)에게 ‘쉬엄쉬엄 하시라’ 권하는 장면과 엇비슷했고 둘째 아들 안희명(송승환)과 안희규(윤다훈)가 티격태격하는 장면은 역시나 <인생은 아름다워>에서 양병준(김상중)과 양병걸(윤다훈)이 벌이던 옥신각신을 떠올리게 했다.

또한 친정 옆에 살면서 늘 이것저것 챙기던 딸 양지혜(우희진) 대신에 소소한 음식 재료들을 죄다 시집에서 얻어가는 얌통머리 없는 며느리 지유정(임예진)이 등장했나 하면 바리스타를 희망하는 막내아들 안준기(이도영)는 공부에는 뜻이 없어 스킨스쿠버 강사 일을 하던 양 씨 일가의 막내 양호섭(이상윤)을 생각나게 했으니까.

익숙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출연진의 태반이 김수현 작가와는 꾸준히 인연을 맺어온 연기자들이 아닌가. <인생은 아름다워>, <천일의 약속>, 그리고 이번 <무자식이 상팔자>까지, 어느새 세 편의 드라마에 연이어 출연 중인 김해숙을 비롯한 중견 연기자들이야 두 말하면 잔소리이겠고 젊은 연기자들 중에서도 안희명과 지유정의 아들로 나오는 정준의 경우 <목욕탕 집 남자들>, <부모님 전상서>, <천일의 약속>에 출연한 바 있으며 그의 처 역할의 김민경 역시 <엄마가 뿔났다>를 통해 연기자로 거듭날 수 있었으니까. 그런가하면 <인생은 아름다워>와 <천일의 약속>에 출연해 호평을 받았던 이상우도 큰딸 안소영(엄지원)의 옛 애인 하인철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소소한 아쉬움들은 잠깐, 3회에 이르러서는 무릎을 치고 말았다. 역시 거장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매 작품마다 사회가 좀처럼 관심을 두지 않는, 이를테면 자폐아(<부모님 전상서>), 동성애(<인생은 아름다워>), 조기치매(<천일의 약속>)와 같은 소재를 화두로 삼아온 김수현 작가. 이번 드라마를 통해 작가가 우리에게 제시한 생각할 거리는 미혼모 문제다. 사실 나는 미혼모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지닌 사람은 아니나 소영이가 어머니(김해숙)에게 쏘아붙인 대사 “미혼모가 어때서? 대부분 마음이 약하고 착해서 미혼모가 되는 거야.”, 그 말을 듣기 전까지는 그녀들이 착하고 마음이 약해서 미혼모가 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서 순간 누군가가 뒤통수를 한 대 친 것 같았다. 맞는 얘기다. 그녀들은 모질지 못해서 낙태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설움을 받으며 낳아서 열심히 최선을 다해 키우고 있는, 누구보다 책임감 있는 이들이 아니겠나. 칭찬은 못할지언정 손가락질 할 이유가 무에 있으리. 그런데 떡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지 오지랖 넓은 삼촌들(송승환, 윤다훈)은 아이를 떠맡길 인물을 찾겠다고 난리굿들을 피우는 중이다.

어떻게든 덮고, 감추고, 가려야 할 존재. 그게 바로 현재 우리 사회가 미혼모를 대하는 방식이 아닐는지. <무자식이 상팔자>로 인해 미혼모의 복지 향상까지는 바랄 수 없겠지만 인식에는 조금이나마 변화가 있으리라는 기대를 해보게 된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김수현 작가와 한 시대를 살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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