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늑대소년>, 정말 男관객과의 소통은 불가능했나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고백하자면, 나는 시사회에서 <늑대소년>을 보았을 때만 해도 이 영화에 대한 남녀 관객의 반응이 이렇게 다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물론 송중기가 나오는 로맨스 영화니까 여성 관객의 힘을 받을 거라고는 생각했다. 하지만 과연 이 영화가 (씨네 21의 <헌즈 다이어리>가 그린 것처럼 http://www.cine21.com/news/view/idx/1/mag_id/71662/p/1 )
여성 관객들이 무조건 몰입하는 동안 남자 관객들은 '나는 누구고 여기는 어디인가'를 중얼거리며 혼란에 빠질 그런 영화일까? 근데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 정말 그런 것 같다!

관객들의 반응 자체를 가치평가하기는 어렵다. 이는 대부분 자연현상이다. 하지만 나는 여기에 대해 무리하게 일반화된 해석 하나는 피하고 싶다. <늑대소년>이 전적으로 여성 관객들에게 특화된 영화이며 남성 관객과 소통이 불가능하다는 말 말이다.

종종 <늑대소년>은 역시 최근에 개봉된 <용의자 X>와 연결되어, 여성 관객들의 욕망을 적극적으로 자극하는 영화의 사례로 언급된다. 왜 이런 소리가 나왔는지는 이해하겠지만 너무 가볍다. 물론 영화감독이나 작가가 특정 관객층을 대상으로 작품을 만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창작하는 사람들은 절대로 그렇게 이타적인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 자신의 욕망이다. <늑대소년>의 조성희나 <용의자 X>의 원작자 히가시노 게이고를 오로지 고객의 욕망을 위해 헌신하는 이타주의자로 본다면 많이 웃기지 않은가.

사실 이 두 작품들을 꼼꼼하게 본다면 다른 욕망과 쾌락의 레이어들을 볼 수 있다. 많은 관객들이 아무런 조건이나 대가없이 여자에게 무조건 헌신하는 남자 이야기가 굉장히 오랜 남성 판타지라는 것을 잊고 있다. 이들은 모두 익숙한 공식의 반영인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경우 <백야행>에서도 음지에 숨어 여자주인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남자 이야기를 다룬 적 있다. 그리고 그가 여기서 중점적으로 그리는 것은 그런 희생의 쾌락이다. (이 점을 한국영화판 <용의자 X>에서는 간과하고 있고, 이는 이 영화의 가장 큰 실패이다.) 다시 말해 적어도 원작인 <용의자 X의 헌신>은 철저하게 남성중심적인 작품이라는 것이다.

<늑대소년>의 경우는 엉뚱한 면이 있는데, 그건 바로 이 영화가 애견 영화라는 것이다. 이 영화에서 송중기의 역할은 늑대인간이라기보다는 송중기 모양의 커다란 강아지다. 보다보면 이 영화에서 박보영의 역할은 '여자주인공'보다 '개주인'에 방점이 찍힌 게 보인다. 몇몇 장면은 너무 노골적이라 도저히 놓칠 수가 없다. 다시 말해 남성감독 조성희가 별다른 어려움 없이 여자주인공에게 몰입할 수 있었던 통로가 보이는 것이다. 이것을 모든 남성 관객들이 외면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은 괴상하다.



여성의 욕망, 또는 소녀의 욕망에 대해서 이야기하라고 하면, 곧 종지부를 찍는 <트와일라잇> 시리즈를 빼먹을 수 없다. 이 영화는 여성 관객들이 무조건 열광하고 남성 관객들이 무조건 진저리를 치는 '특화된' 영화의 대표이다. 하지만 과연 그런가?

물론 이 시리즈를 무조건 신봉하는 여성팬들이 있다. 그들이 <트와일라잇> 소설과 영화를 히트작으로 만들었다. 이것이 스테프니 마이어라는 여성 작가가 자신의 판타지를 그대로 폭발시킨 결과물이라는 것도 맞다. 하지만 주변을 돌아보라. 반응이 생각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적어도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여성 관객들이라면 상당수가 이 작품을, '내가 13살 때 봤다면 재미있었을' 정도로 생각하거나 그 정도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예상보다 많은 여성 관객들이 이 영화에 표현된 욕망을 '전적으로 내 것이 아닌 다른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영화 시사회 때 늘 일가친척들을 끌고 가고, 며칠 전 있었던 마지막회 시사회에서도 그랬는데, 그들은 대부분 이 시리즈를 비웃거나 야유하는 재미로 본다. 겉으로 드러난 의도와는 상관없이 이 시리즈는 그들에게 코미디인 것이다.

보편성이라는 것을 너무 쉽게 이야기하지 말자. 세상 어느 것도 그렇게 보편적이지는 않다. 그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블록버스터로 만들어져도 마찬가지다. 스티븐 킹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이다. 하지만 그가 다루는 장르인 호러는 언제나 마이너이다.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히트했다고 해서 모든 여성들이 SM 플레이를 좋아한다고 믿는 것도 마찬가지로 무리한 생각이다. 모든 예술작품들은 특별한 취향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그들이 인류 전체, 또는 여성이나 남성 전체인 적은 없다. 인간은 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복잡하다. 여러분은 경험을 통해 그걸 이미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이건 단순한 선입견은 당연시된다. 그 결과가 좋았던 적은 없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부작용은 작품 자체를 재미없게 만든다는 것이다. 지루하고 무개성한 허구의 대상으로 작품을 만들면 그게 좋을 리가 없다. 심지어 단순할 것 같은 아이돌 팬들도 생각보다는 입체적일 것이다. 그러고 보니 소녀시대가 '오,오,오 오빠를 사랑해' 어쩌구로 이어지는 오글거리는 노래를 부르자 '오빠'에 해당되지 않은 팬들이 심한 거부감을 표현했던 것이 기억난다. 솔직히 '오빠'에 해당되는 팬들도 모두 좋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너무 직접적인 서비스는 재미가 없다.

그러나 가장 지루한 부작용은 독자나 관객들 스스로가 자신의 취향을 제한한다는 것이다. 특히 나는 여기서 손해를 보는 것은 남자들인 것 같다. 수많은 남성 관객이나 독자들이 자신에게 완벽할 수도 있는 작품을 여성용이라고 해서 외면해버리거나 이해를 거부해버린다. 그러는 동안 그는 자신 주변에 좁은 취향의 담을 치고 그 안에 주저앉는다. 여성관객이나 독자들은 상대적으로 덜하다. 이 세계는 남자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고 살기가 불가능한 곳이니까.

<늑대소년>으로 돌아가보면, 오히려 <헌즈 다이어리>의 남성관객이 보여준 반응이 나에겐 정상으로 보인다. <늑대소년>은 송중기 나오는 오글오글 멜로이기도 하지만 <남매의 집>과 <짐승의 끝>의 감독이 내놓은 정말로 괴상한 영화이기도 하다. 그가 아무리 노골적으로 청소년들도 즐길 수 있는 가족영화를 내놓았다고 해서 그가 스토리와 장르를 다루는 기이한 터치까지 사라진 것이 아니다.

이 영화에서 정상적이고 직설적으로 보이는 것들 대부분이 사실은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고로 이 영화를 보며 '나는 누구이고 여기 어디인가'를 외쳤던 관객들은 송중기의 돌직구 멜로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던 관객들보다 오히려 영화를 더 정확하게 봤을 수도 있다. 단지 그가 그 사실을 아직 모르고 있을 뿐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늑대소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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