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틀즈코드2>, 사람을 속이려면 동등한 경우에만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한창 시절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한 코너 ‘몰래 카메라’의 인기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다시보기가 있길 하나 다운로드 서비스가 있길 하나, 요즘 말로 ‘본방 사수’를 하지 못했다가는 재 시청이 요원하던 시절이라서 아예 일요일 저녁 약속이 금기시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이리저리 피해 보지만 어쩔 수 없이 외출할 일이 생길 때는 그거 하나 보겠다고 갖은 애를 다 썼던 기억이 난다. 전파사 앞을 기웃거리거나 TV를 틀어 놓은 지금의 커피숍인 ‘다방’을 찾아 헤맨다거나. 예전에는 지금의 터미널 대기실이나 찜질방에서처럼 손님들이 함께 모여 마치 권투나 축구 경기를 보며 열광하듯 ‘몰래 카메라’를 봤던 것이다. 1991년 4월 첫 방송을 시작해 1992년 11월에 끝이 났다고 하니 무려 20년도 전의 일이다.

당시 이 코너가 그토록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평소 극진한 대접만 받았을 스타급 연예인이 예측하지 못했던 난감한 상황을 겪으며 당황하는 모습이 흥미진진했기 때문이다. 무대나 영화, 드라마를 통해 보여준 만들어진 분위기가 아닌 그야말로 리얼 그대로의 인성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순간이었으니까.

진행을 맡은 개그맨 이경규는 이 코너 하나로 특급 스타로 자리매김했고 출연한 대부분의 연예인들이 ‘몰래 카메라’에서 보여준 자연스럽고 소탈한 모습으로 더 많은 대중의 사랑을 얻을 수 있었다. 한 마디로 서로에게 실보다는 득이 훨씬 많았던 것.

그 후 타방송사의 ‘꾸러기 카메라’를 비롯한 유사 코너들이 우후죽순 등장했고 고정 코너는 아닐지언정 각종 예능 프로그램마다 소재가 고갈됐다 싶으면 한 번씩 시도되곤 했는데 그러다 급기야 2005년에는 ‘몰래 카메라’ 시즌 2가 기대를 안고 재개되기도 했으나 초창기의 인기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

원인이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점차 욕심이 과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너무 가학적이라거나 필요 이상 웃음거리로 만든다거나, 지나친 설정으로 불쾌감을 자아내게 하는 경우가 잦아졌던 것이다. 언젠가 개그맨 최양락이 얘기했듯이 아무리 웃음을 주기위한 노력이라 해도 당한 사람이 속이 상하다면, 그들의 가족이 마음 아파한다면 그건 좋은 개그가 아니지 않나.








지난 주 Mnet <비틀즈 코드 시즌2>에서 초대 손님 걸스데이에게 시도한 몰래카메라만 봐도 그렇다. 대선배인 홍서범이 걸스데이 멤버 유라를 상대로 난데없이 진노하는 설정이었는데 나만 그랬을지 모르겠지만 재미와 웃음은커녕 어찌나 거부감이 들던지. 왜냐하면 당하는 쪽이 후배이고, 신인이고, 한참 약자 입장이었으니까. 길게 끌지 않고 빨리 마무리 지어준 것은 다행이었으나 억울하다고 대거리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게 기사화라도 되면 어쩌나, 버르장머리 없는 걸 그룹이라고 비난을 하면 어쩌나, 이 뒷감당을 어떻게 해야 하나, 아마 짧은 시간 동안에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을 게다.

장난이었다는 게 밝혀지자 얼마나 가슴을 졸였던지 리더 소진 양을 필두로 멤버 모두가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왜 아니 그랬겠는가. 하지만 그 안쓰러운 광경 앞에 박장대소하는 MC들이라니. 평소 호감을 갖고 있던 연예인들이지만 그 순간만큼은 비호감으로 다가왔다.

사실 홍서범과 걸스데이 사이의 평행이론은 그 어느 때보다 참신하고 기발했다. 그러나 몰래카메라의 여운이 너무 길었던 통에 더 이상 내용에 집중하기 어려웠으니 주객이 전도된 꼴이 아닐는지. 이번 걸스데이 몰래 카메라가 남긴 교훈이 있다면, 제발 동등한 관계일 경우에만 속여 먹든 놀려 먹든 하라는 것.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사진=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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