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차르트와 함께하는 10일간의 특별한 오페라 향연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서울시오페라단이 기획한 무대와 영상이 함께 어우러진 신선한 오페라 공연 <모차르트 오페라 시즌>이 중반에 접어들었다. 공연의 막이 오르기 전부터 이미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 <마술 피리> 3작품은 매진신화를 이뤘다.

실제로 만나 본 결과 어렵고 재미없는 오페라에 대한 편견을 없애기에 충분했다. 김홍승 연출(협력연출 홍민정▪ 기민정▪ 유혜상)이 선두 지휘한 세 작품 모두 영상에 포커스를 맞춰 효과적인 무대 전환을 꾀했다. 영상의 적극적 활용으로 3편의 입체적 오페라가 탄생한 것이다. 무대 디자이너 최수연과 영상 디자이너 김세훈의 손길에서 탄생한 무대이다.

첫 문을 연 <돈 조반니>는 여자를 찾아 헤매는 조반니의 여정을 돋보이게 하는 원근감 있는 무대, 기사장 유령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생생한 현장감 가득한 영상이 눈에 들어왔다. 반면 <마술피리>는 동화 책의 한 페이지를 펼친 듯 상상하는 모든 것이 그대로 무대에 구현됐다. 특히, 타미노와 파미나가 겪는 물의 시련과 불의 시련을 보여주는 장면에선 반투명 막을 설치해 무대 전체가 물의 소용돌이, 화염으로 휩싸인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 만들기 충분했다. 마지막 <코지 판 투테>는 파스텔 톤의 무대와 영상으로 달콤한 로맨스 분위기를 한층 강화시켰다.

■ 시대를 뛰어넘은 걸작 <돈 조반니>

스페인의 유명한 바람둥이 ‘돈 후안’의 이야기를 소재로 한 대표적인 희가극 <돈 조반니>는 원작을 살리면서도 현대적 감각에 맞게 대사를 각색한 것이 신선미를 느끼게 했다. 조반니가 만난 2천명의 여성 중엔 객석에 앉은 관객들도 있음을 암시하는 대사는 단지 무대 위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님을 암시하며 시대를 뛰어넘은 공감을 갖게 했다. 또한 영상 속에서 먼저 만난 캐릭터가 곧 바로 가수 액션과 연결 돼 친근감을 주는 오페라였다.

조반니가 지옥에 간 뒤 나머지 등장인물들이 자신의 앞날에 대해 노래하는 최후의 6중창 장면은 마리오네트 인형 춤을 추는 걸로 처리되었다. 불완전한 인간에 대한 은유와 상징으로 읽혀졌다.

관객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장면은 조반니에게 두들겨 맞은 마제토가 우리말로 ‘아파’라고 대사를 하는 장면이었다. 정확한 소리, 순박한 표정, 적재적소의 리액션으로 마제토의 헌신을 보여준 바리톤 이재현은 이날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소 촌스러워 보이는 체크 무늬 양복(의상 디자이너 최원)을 입은 채 2대 8 가르마로 빗어 넘긴 헤어 스타일 자체도 웃음을 참지 못하게 했다. 체를리나 역 소프라노 김온유▪ 고정호의 사랑스러운 목소리와 애교 넘치는 액션도 눈길을 잡아 끌었다.

돈 조반니로 분한 바리톤 조현일과 차종훈은 외모나 연기 면에서 나무랄 데 없는 적역이어서 일단 관객을 무대에 집중시키는 데는 성공했다. 다만 조현일의 세레나데는 서정성이 부족한 점이 매력을 반감시켰고, 차종훈은 ‘샴페인의 노래’의 템포를 따라가지 못해 조반니의 끝 없는 욕망을 어필하지 못했다.

노래와 음악 이상으로 가수들의 연기가 중요한 작품이 바로 오페라 <돈 조반니>다. 특히 나래이터 격인 레포렐로의 연기를 무시할 수 없다. 베이스 전준한과 베이스 바리톤 장철유 모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붓는 명연기를 선보였다. 색깔을 구분하자면 전준한은 보다 지적인 하인 이미지가 강했다면, 장철유는 보다 천방지축 하인 이미지로 어필했다. 그 결과 레포렐로의 유들유들함은 장철유의 연기에서 돋보였고 ‘카탈로그의 노래’의 명료한 저음의 울림은 전준한의 소리에서 빛났다.

돈나 엘비라 역 소프라노 김샤론▪ 곽현주 매혹적인 캐릭터 표현도 안정적이었다. 베이스 손철호는 풍성한 저음, 노련한 움직임으로 기사장 역을 드라마틱하게 살려주었다. 베이스 송필화도 나쁘진 않았으나 관객을 집중시키는 힘은 다소 부족했다.

아쉬운 배역은 돈나 안나 역의 소프라노 유미숙▪ 정꽃님, 오타비노 역의 테너 강신모 ▪박준석이었다. 돈나 안나의 격조 높은 대형 아리아 ‘그런 말은 말아주세요.’를 제대로 소화해내기엔 두 가수 모두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다. 반면 강신모는 어색한 액션으로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했고, 박준석은 유연한 프레이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김주현 지휘자가 지휘한 경기도필하모닉오케스트라는 가수의 템포와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지 않는 면이 몇몇 보이긴 했으나 대체로 안정적인연주를 들려줬다. 23일 19:30, 25일 15:00 2회 공연이 남아있다.



■ 모차르트도 춤추게 만든 오페라 <마술피리>

모차르트 최후의 걸작 오페라로 꼽히는 <마술피리>는 노래와 대사가 섞여 있는 ‘징슈필(Singspiel)’이다. ‘밤의 여왕’이 지배하는 어둠과 현자 자라스트로가 이끄는 빛의 대결, 또 타미노 왕자와 파미나 공주의 아름다운 사랑이 줄거리를 이룬다. 여기에 새잡이 파파게노와 파파게나와의 익살스런 사랑이 양념을 더한다. 여기까진 가족 오페라로 불리는 <마술피리>에 대한 동화적인 이미지다. 물론 ‘프리메이슨(Freemason)’의 이상에 대한 복잡한 은유와 상징까지 헤아리다 보면 수수께끼 오페라로 다가오기도 한다.

서울시오페라단은 진지한 의미를 담기보다 대중적 오페라 <마술피리>를 선보였다.
오페라 초심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대사는 한국말로 처리했다. 하지만 여기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듯 하다. 특히 한국어 대사가 터질 때 가수들의 연기력이 확연히 비교 됐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타미노 왕자와 파미나 공주의 대사처리에서 차이점을 확실히 감지할 수 있었다.

타미노 왕자 역의 테너 전병호는 독일 리트풍의 아리아를 부를 땐 관객의 귀를 부드럽게 자극했으나, 한국어 대사를 하는 순간엔 다소 어색함이 묻어나왔다. 같은 역의 류승욱은 모차르트 테너가 아닌 결과 캐릭터와 100% 일치하지 못하는 아쉬움도 남겼지만 한국어 대사를 하는 순간엔 어느 연극 배우 부럽지 않은 발성을 선보였다.

파미나 공주의 여린 감성과 사랑과 슬픔 등 다채로운 감정을 캐릭터에 온전히 담아낸 이는 소프라노 박지홍이었다. 최윤정이 소리와 연기로 표현해내는 파미나의 감정은 운신의 폭이 좁은 점이 아쉬웠다.

징슈필 스타일의 가수 파파게노와 파파게나의 최적의 궁합은 바리톤 이혁과 소프라노 강종희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다. 젊은 성악가들의 활기 넘치는 연기와 정확한 발성이 객석을 포복절도하게 했음은 물론이다. 애드립에 능한 박경종과 성량이 큰 윤정인의 궁합 역시 즐거운 웃음을 선사했다.

초절 기교의 콜로라투라를 선보여야 하는 밤의 여왕 역 소프라노 윤성회▪ 구민영 모두 대단한 성량을 자랑했다. 그럼에도 윤성회의 확실하게 목을 열어 부르는 가창이 귀를 더 잡아 끌었다. 대변인 역 베이스 김형수의 기품 있는 저음도 박수를 치게 만들었다. 독일풍의 악역 테너를 소화해내야 하는 모노스타토스 역 테너 구자헌은 아리아 ‘누구나 사랑의 기쁨을 알고 있지’의 빠른 템포를 쫓아가지 못한 치명적인 흠을 노출했다.

독일풍의 고전적인 가창을 안정적인 저음으로 들려줘야 하는 자라스트로 캐릭터는 베이스는 서정수의 음성에서 빛을 발했다. 자라스트로의 아리아인 ‘오 이시시와 오시리스여’, ‘성스러운 전당에서’ 모두 저음을 제대로 소화한 이는 서정수였다. 김형태는 저음의 아쉬움을 차지하고서라도 눈빛 처리와 액팅의 부자연스러움이 캐릭터와 불일치란 인상을 줬다.

윤호근 지휘자는 놀라운 생동감과 활력을 보이며 서곡부터 마지막 합창까지 꼼꼼하게 무대를 지휘해나갔다. 모차르트가 무덤에서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새로운 기쁨을 선사한 지휘였음은 물론이다. 그 결과 윤호근 지휘자의 손에서 조율된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음악은 남녀노소 모든 관객들을 춤추게 만드는 부드러운 힘을 자랑했다. 24일 19:30, 26일 19:30 2회 공연이 남아있다.



■ 소극장 오페라의 묘미 살린 오페라 <코지 판 투테>

모차르트의 대표적인 희가극 <코지 판 투테>(여자는 다 그래)는 ‘사랑과 유혹에 있어서 여자의 마음을 믿을 수 없다’는 식으로 풍자한 오페라로 현대적 감각에 맞는 각색과 다양한 연출의 시도가 가능한 작품이다. 서울시 오페라단은 무대 위의 성악가들과 관객이 온몸으로 교감하는 소극장 오페라의 묘미를 선사했다.

객석 1층과 2층으로 움직인 성악가들은 관객과 직접 와인을 나눠 마시기도 하고, 무대 위에서 벌어진 ‘배우자 바꾸기’를 객석에서도 서스름 없이 시도했다. 이에 관객은 웃음으로 화답했다. 또한, 피오르딜리지와 도라벨라의 2중창 ‘이렇게 아름다운 입술이 있을까’ 장면에선 영상에 굴리엘모와 페란도의 입술을 과장스럽게 확대시켜 띄어 만화적 상상력을 자극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1막의 피날레인 의사로 변장한 데스피나의 자석요법 장면에선 웃음과 열기로 가득한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다.

<코지 판 투테> 최고의 성악가는 알폰소 역의 바리톤 주영규와 데스피나 역의 소프라노 장유리였다. 진지함과 장난끼를 변화무쌍하게 선보이는 다채로운 연기와 시원한 소리가 돋보인 주영규, ‘여자 나이 열다섯 살쯤 되면’이라는 아리아에 담아낸 경박함과 노련함에 박수 치게 만든 장유리는 극 내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앙상블 오페라의 전형을 잘 구현한 작품답게, 다양한 형태의 중창을 들을 수 있는 오페라다. 짙은 음색의 메조소프라노 황혜재(도라벨라)와 보다 우아한 음색의 소프라노 최우영의 대비도 만족할만했다. 황혜재의 디테일한 표정연기와 요가동작도 웃음을 유발했다. 테너 강동명은 ‘사랑의 산들바람은’을 특유의 미성으로 소화했으며, 바리톤 송형빈은 파워 넘치는 가창과 유들 유들한 연기로 큰 재미를 선사했다.

박인욱 지휘자는 파닥 파닥 거리는 나비의 날개짓을 연상시키듯 세밀한 지휘를 선보였다. 24일 15:00, 25일 19:30 공연을 남겨놓고 있다.


공연전문 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서울시 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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