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 속물들이 매력적인 이유

[엔터미디어=신주진의 멜로홀릭] 코믹하면서도 서글픈, 삶의 아이러니와 비애는 결혼을 통해 가장 잘 드러난다. 반려자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는 결혼이라는 신성한 통과의례가 치사하고 뻔뻔한 이전투구로 변해가는 것을 보는 것은 우스우면서도 서글픈 일이다.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하명희 극본, 김윤철 연출)는 주인공 남녀가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그 지난하고 고된 과정을 순도 높은 세밀화로 포착해낸다.

물론 지난하고 고된 것은 결혼만이 아니다. 결혼해서 살던 남녀가 이혼을 하기까지의 과정은 더더욱 지난하고 고되다. 바닥을 드러낼 정도로 서로 치사하고 뻔뻔해져야 한다. 혜윤(정소민)과 혜진(정애연), 두 자매의 결혼과 이혼은 마치 돈으로 시작해서 돈으로 끝나는 결혼의 일생을 보여주는 듯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평생을 같이 한다는 명목은 경제적 결속과 계급재생산이라는 결혼의 본래적 목적에 비하면 얼마나 한가한 소린지 드라마는 생생히 보여준다. 이것은 일종의 생존을 위한 전투이다.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가 재미있는 것은 결혼과 이혼, 만남과 헤어짐이 동시에 진행되는 인생사의 아이러니를 뚜렷이 드러내준다는 것이다. 여기 네 쌍의 남녀가 있다. 이제 막 연애를 시작하는 한 쌍이 있고, 막 연애를 끝낸 한 쌍이 있으며, 연애를 결혼으로 이어가고자 하는 한 쌍이 있고, 결혼생활을 끝내려는 한 쌍이 있다.

혜윤과 정훈(성준)이 연애라는 달콤한 아웅다웅에서 결혼이라는 실질적 전투로 떠밀려가고 있다면, 혜진과 도현(김성민)은 이혼소송과 양육권다툼, 재산분쟁으로 결혼에 대한, 그리고 인간에 대한 쓰라린 환멸을 맛보고 있다. 혜윤과 정훈이 결혼 준비에 여념이 없는 동안, 친구 동비(한그루)는 결혼으로 이어지지 않는 기중(김영광)과의 5년간의 연애를 마지못해 끝냈다. 그런가 하면 혜윤의 이모인 오십살 먹은 처녀 들래(최화정)와 두 번 이혼경력의 연하남 민호(김진수)는 바이크를 매개로 새로운 연애에 돌입한다.

이렇게 엇갈리는 결혼과 이혼, 만남과 헤어짐이 인생의 희비로 명확히 나뉘는 것이 아니라는 데에 이 드라마의 매력이 있다. 결혼을 하건 이혼을 하건, 새로운 사랑을 하건 이별의 아픔을 겪건, 이들은 모두 자기 몫의 인생의 아이러니와 비애를 맛보야야만 한다.

자신들이 사랑하기 때문에 어떤 조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믿어 왔던 혜윤과 정훈은 막상 결혼준비에 들어가자 기대에 못 미치는 형편과 처지로 인해 서로에게서 상처를 받고 자존심을 다친다. 간호사 시절 다른 여자의 남편이었던 의사 도현을 차지해 결혼한 혜진은 이제 또 다른 어린 여자에게 자신의 남편을 빼앗길 상황에 처한다. 그토록 결혼을 거부하던 기중이 동비와 헤어지자마자 바로 정략결혼을 진행하는 상황이나,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는다는 민호가 엉뚱하게 들래에게 마음이 끌려갈 때, 뒤통수를 치는 인생의 아이러니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법임이 명확해진다.



말하자면 이건 속물들이 맞닥뜨리는 아이러니와 비애이다. 여기서 속물이란 유별난 족속이 아니다. 따지고 재고 계산하는, 머리 달린 동물, 모든 인간들의 속성이다. 혜윤 엄마 들자(이미숙)처럼 노골적 속물이건, 정훈 엄마 은경(선우은숙)처럼 은근한 속물이건, 혹은 속물이 아니고 싶은 혜윤이나 정훈, 동비 같은 때가 덜 묻은 젊은 친구들이건, 모두 다 속물이긴 마찬가지다.

이건 단지 경제적인 것만도 아니다. 사랑이건, 섹스건, 이들은 대체로 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으려고 한다. 자신을 상대방에게 어필할 수 있는 최적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 자신의 가치를 최고치로 끌어올리는 것이 사랑과 섹스에서의 셈법이 된다. 이것이 여우같은 혜윤이 어리숙한 정훈을 요리하는 방식이며, 결혼이 사랑의 끝이라는 걸 아는 기중이 매달리는 동비와 헤어진 이유이다.

이 속물적인 인물들이 매력적인 건, 이들이 자신들이 속물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며, 또 자신의 속물성을 기꺼이 인정하기 때문이다. 바람둥이 도현은 자신 안에 짐승이 한 마리 들어앉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혜진은 남들한테 남편 잘 만났다는 얘기 듣는 게 이 허울뿐인 결혼을 지탱하는 힘이라고 애써 소리친다. 서로의 패를 보여주고 벌이는 게임은 우스꽝스럽지만 그래서 더 애처롭고 서글프다.

그러나 다시 아이러니는 이혼이나 이별 같은 쓰라린 실패 이후에야 새로운 깨달음이나 성숙이 온다는 사실이다. “너도 이제 남자한테 기대고 사는 인생 외에 다른 삶이 있다는 걸 알게 되는구나. 나쁘지만은 않아. 좋지도 않지만.” 들자가 큰딸 혜진을 향해 하는 혼잣말은 그런 삶의 아이러니를 잘 말해준다. 아마도 기중은 동비와 헤어지고 나서야 뒤늦게 그녀에 대한 자신의 사랑의 깊이를 깨닫게 될 것이다. 혜윤과 정훈 역시 전쟁 같은 결혼의 한복판을 통과하고 나면 좀 더 성숙해지지 않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칼럼니스트 신주진 joojin913@entermedia.co.kr


[사진=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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