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무 인상적인 윤은혜의 꼼꼼한 연기 지도
- 비전문 감독들의 영화 제작을 지지하는 이유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최근 MBC 미니시리즈 <보고 싶다>에 출연하느라 바쁜 배우 윤은혜는 얼마 전에 <뜨개질>이라는 제목의 짧은 단편을 만들었다. 이 작품은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처음 소개되었고 이번 주까지 했던 올해 서울 독립 영화제에서도 상영되었다. 어쩌다보니 목요일 날 시간이 나서 이 영화의 마지막 상영을 볼 수 있었다. 이 영화를 보려고 스케줄을 짠 건 아니지만 일단 시간이 맞는 걸 보니 보고 싶었다. 윤은혜가 영화 찍었다는 뉴스는 읽었지만 정작 영화가 어떻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내용을 아시는지? 이삿짐을 싸다가 우연히 옛날에 짜다 만 뜨개질감을 발견하고 거기에 몰두하는 여자 이야기이다. 여자는 그러는 동안 전화로 친구의 연애 넋두리를 들어주기도 하고 흩어진 짐 속에서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다른 물건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예상 외로 꽤 괜찮은 작품이었다. 종종 소재의 상징적 의미에 지나치게 몰입해서 흐름이 깨지고 리듬이 덜컹거리는 부분이 있기는 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나 같았다면 후반부의 전화 통화 장면을 그렇게 길게 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적으로 풀 수 있는 창의적이고 영리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고, 이를 풀어가는 배우 이상희의 연기와 감독의 꼼꼼한 연기 지도는 인상적이었다.

윤은혜처럼 완벽한 연기 테크닉으로 칭찬 받은 적 없는 (모르겠다. 지금 <보고 싶다>에서는 어떤가?) 배우가 감독작에서 이런 섬세한 연기를 연출했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게다가 나는 배우의 캐스팅에서 감독의 내면을 읽을 수 있다는 순진한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 이 영화를 보면서 기분이 조금 미묘해졌다. 아마 자연인 윤은혜는 내가 알고 있는 연예인 윤은혜의 이미지와 조금은 다른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하진 내가 가진 윤은혜의 이미지는 대부분 <엑스 맨>에서 온 것이니...



사실 내가 목요일에 서독제를 찾은 것은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이 메가폰을 잡은 중편영화 'JURY'를 보기 위해서였다. 이 작품은 저번 아시아나 단편 영화제 때 처음으로 상영되었는데, 그 때는 시간을 내기가 어려웠다.

대학원 과제였던 소품인 <뜨개질>과는 달리, 'JURY'는 나름 대작이다. 강수연, 안성기, 토니 레인즈와 같은 거물들이 주연을 맡았고, 실제로 실명으로 출연한다. 각본은 장률과 윤성호가 같이 썼고, 조감독은 김태용, 편집은 강우석이 맡았다. 흩어지면 따로 영화 대여섯 편은 만들 것 같은 사람들이 김동호를 위해 뭉친 것이다. 여전히 김동호의 첫 감독작이라고 소개되는 영화지만, 참여한 사람들 모두의 협력이 더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이 영화도 재미있었다. 이 영화의 부분부분 시점이 정확히 누구의 의견을 반영하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종종 각본을 쓴 윤성호 감독의 전작 <은하해방전선>의 흔적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아시아나 단편 영화제의 심사위원들이 벌이는 소동을 그린 이 영화는 영화제가 어떤 행사이고 그 안에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일들을 벌이고 있는지 잘 아는 사람들이 그린 신나는 코미디였다. 김동호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하지만 김동호가 충분히 여유를 갖고 신나게 만들 수 있는 영화이긴 했다. 누구에게 책임이 있건, 결과가 이렇게 흥겹고 귀엽다면 불평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최근 들어 비전문 감독들의 영화들을 접할 기회가 늘어난다. 지금은 주로 배우들이다. 구혜선, 유지태는 이미 장편영화를 내놓았다. 하정우도 장편을 준비 중이다. 류현경, 윤은혜처럼 재미있는 단편들을 만드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모두 자신의 스타성을 통해 영화를 비교적 수월하게 만들고 수월하게 소개한다. 그 때문에 이들의 감독 데뷔에 부정적인 시선을 던지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진 켈리, 론 하워드, 로브 라이너, 클린트 이스트우드, 로버트 레드포드, 케네스 브래나, 조지 클루니와 같은 사람들을 보라. 여러분은 그들이 자신의 배우 경력을 감독 데뷔를 위해 이용했다고 비난할 생각이 있는가? 과연 그들이 배우 일에만 충실한 영화계는 지금보다 더 공평하고 재미있는 곳일까? 아마 지금 영화를 시작하는 배우들이 만드는 영화들은 대부분 평범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전문감독들의 작품들도 마찬가지다. 시작하기 전에는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는 건 여기나 저기나 마찬가지다.

김동호의 경우는 뭐라고 말하기 어렵다. 'JURY'는 일종의 이벤트성 영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록 전문 영화감독은 아니더라도 자신의 영역에서 단단한 경력을 쌓았고 들려줄 이야기도 많은 김동호와 같은 사람이 감독의 위치에서 영화를 만드는 일이 잦아진다면 영화계는 더 재미있는 곳이 되지 않을까? 물론 영화는 영화학교를 졸업한 전문영화감독들이 더 잘 만들 것이다. 하지만 여러분은 언제까지 영화광들과 영화학교 졸업생들의 시선으로 본 세계만을 볼 것인가? 영화가 온전한 인생을 담으려면 이보다 넓은 곳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뜨개질', 'JURY',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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