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이상 토크쇼 진행자들을 채찍질하지 마라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피 말리는 예능 프로그램들의 시청률 전쟁, 이젠 주말 저녁 시간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 월요일 밤의 최강자로 군림해오던 <공감토크쇼 놀러와>가 후발주자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와 KBS2 <대국민 토크쇼 안녕하세요>의 약진으로 맥없이 무너져버린 마당에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의 야심찬 재가동으로 인해 목요일 밤의 상황도 녹록치 않아졌다. 지금까지는 터줏대감 KBS2 <해피투게더3>와 지난 해 금요일 밤에서 자리를 옮겨온 <스타부부쇼 자기야>가 사이좋게 시청률을 양분하고 있었으나 강호동이라는 다크호스가 등장하는 바람에 이 두 프로그램의 입지 또한 상당히 불안해진 것이다.

사실 이 셋은 토크쇼라는 틀은 같아도 각기 지향점도, 주 시청층도 다르기에 경쟁 자체가 무의미하지 싶다. 하지만 늘 그러하듯이 그 놈의 시청률, 즉 성적표가 사단이지 뭔가. 게다가 싸움 구경을 즐기는 일부 매체들이 추락이라느니 탈환이라느니 앞 다퉈 자극적인 표현으로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해대는 통에 졸지에 전쟁판이 된 목요일 밤. 아마 MC를 비롯한 제작진들은 매일매일이 좌불안석, 소화가 안 될 지경이리라.

그러나 시청자로서는 뭘 봐야 좋을지 리모컨을 들고 고민하게 됐으니 즐거운 비명이라고 해야 하나? 이번 주만 해도 그렇다. <스타부부쇼 자기야>에는 모처럼 아시아의 인어 최윤희가 초대됐다고 하고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에는 14년 만의 첫 단독 토크쇼 나들이라는 배우 김상경이, 또 <해피투게더3>에는 MBC <무한도전> ‘못친소’ 특집 때 눈부신 활약을 보인 바 있는 윤종신, 김범수, 조정치, 삼인방이 나온다고 하니 어디에 채널을 고정할지 갈등이 될 밖에.

마치 중국집에 가서 짜장면, 짬뽕, 볶음밥을 놓고 고민하는 것 모양 심사숙고한 끝에 결국 내가 선택한 건 <해피투게더3>. 그만큼 ‘못친소’ 특집이 남긴 여운이 길었다는 얘기가 되겠는데 자연스러운 토크 분위기도 좋았고 ‘야간매점’도 그 어느 때보다 실속 있는 메뉴들이 등장해준지라 만족, 또 만족이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다시보기로 <황금어장 무릎팍도사>를 보니 아뿔싸, 이 또한 놓쳐서는 아니 될 수작이었던 것이다. 김상경이라는 연기자가 이렇게 색다른 매력을 지닌 인물이었을 줄이야. 다섯째 중 막내라더니 귀염성 있게 또 끈끈하게 부모님을 향해 애정을 드러내는 장면도 인상 깊었고, 영화 <화려한 휴가> 출연 당시의 생생한 경험담이며 특전사 대원으로 복무하던 시절의 얘기들도 색달랐고, 배우자와의 첫 만남을 떠올리는 눈빛은 그 연령대의 남자에게서는 보기 드물게 순수한 느낌이어서 좋았다. 그야말로 눈물과 웃음, 감동이 공존했고 완급 조절 또한 잘 이루어진, 최고라는 수식어가 전혀 아깝지 않은 토크쇼였던 것.

그런가하면 <스타부부쇼 자기야>도 최윤희의 등장 외에도 아기자기한 아이템들과 알찬 정보로 역시나 놓쳐서는 아까운 시간이었다. 제작진이 얼마나 심기일전 공을 들이고 있는지 고민한 흔적들이 피부로 와 닿았는데 수다 삼매경을 즐기기보다는 유용한 생활 정보를 얻고 자 하는 시청자라면 <스타부부쇼 자기야> 쪽이 훨씬 현명한 선택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 이러니 누가 우위라고 감히 순위를 정할 수 있겠으며 누가 부족하다고, 한층 더 노력을 기울이라고 채찍질을 할 수 있겠나. MBC의 경우 시청률 1위가 아니면 퇴출시키겠다는 어이없는 소리가 들려오고 그 본보기로 한참 상승세를 타고 있었던 <공감토크쇼 놀러와>를 폐지하는 졸속행정의 진수를 보여주었으니 기막힌 노릇이다. 부디 애써 만들고 있는 이들에게 칭찬과 격려는 해주지 못할지언정 싸늘한 칼날을 들이대며 협박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다시는 <공감토크쇼 놀러와>의 비운이 어느 방송사에서도 재연되지 않기를 바라며.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사진=MBC, KBS2,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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