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스터김> 덕분에 어수선한 연말이 따사롭다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KBS2 <힘내요 미스터김>은 겉으로는 우리에게 익숙한 KBS 일일극의 공식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가난하지만 서로를 아끼며 보듬어 줄줄 아는 가족, 그리고 부유하지만 왠지 모를 암울한 기운이 감도는 또 다른 가족, 이 둘을 대비시켜가며 부가 곧 행복만은 아님을 시시때때 강조하고 있으니 말이다. 돈 걱정이 없는 우경(왕지혜)이네나 건우(양진우)네는 그 돈으로 인해 재산 다툼이다 자리싸움이다 허구한 날 옥신각신이지만 반면 태평(김동완)이네 가족은 어떻게든 서로에게 도움이 되고자 애들을 쓰니까. 거기에다 핏줄에 얽힌 비밀까지 적당히 섞여있는 터라 갈등 고조를 위한 장치는 충분하다고 하겠다.

그러나 아무리 태산 같은 어려움이 닥친다 해도 꿋꿋하게 이겨나가리란 마음이 절로 드는 노래라고 할까? 'only love, 맘을 열어요. 해맑은 미소를 안겨 줄 빛이 되죠. only love, never give it up. 이 세상 이 모든 행복의 넌 주인공, 항상 그대에게, only love' 태평이네 가족(김동완, 연준석, 서지희, 노정의, 오재무)이 입을 모아 함께 부른 밝고 경쾌한 오프닝 곡 덕에 시작부터 따뜻한 느낌의 이 드라마.

겉모양새만 보고 기존의 KBS 일일극과 같다고 여겼다면 그건 큰 오산이다. 가장 큰 차이점을 꼽아보자면 가족은 가족이되 혈연으로 얽힌 사이가 아니라는 사실. 주인공 태평이와 한 식구가 되어 살아가는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아이들은 조카인 희래(서지희) 외에는 모두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았지만 태평이를 가장으로 서로를 의지하며 오순도순 살아간다.

태평이 같은 사람이 정말 존재할까? 조카 희래야 그렇다고 쳐도, 또 송아(노정의)야 제 엄마가 하도 통사정을 하니 어쩔 수 없었다고 쳐도, 탈북 청년 철용(연준석)이며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는 주성(오재무)이까지 기꺼이 맡아 돌봐주다니. 뜻하지 않은 자동차 사고로 거액의 수리비를 감당하게 된 태평은 대리운전을 해가며 비용 마련에 나서는데 그 사실을 눈치 챈 아이들의 마음 씀씀이가 참 예쁘다. 필요가 없어졌다며 다들 태평이에게 받은 돈을 돌려주지 뭔가.



그와는 달리 밖에서 외도로 낳은 아들을 입양아로 속여 집에 들인 건욱이 아버지(이정길), 건욱이가 남편의 친 자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 복수를 결심하게 된 홍해숙(김혜선) 사장. 이들은 가족이라는 틀 안에 살고 있지만 이미 가족이 아니다. 그런가하면 온기가 없기로는 우경이네 가족도 만만치 않다. 우경이의 아버지(최일화)는 속마음과는 달리 늘 냉랭하기 그지없고 호경(강성민)이가 겪게 된 장애가 안쓰러운 할머니(정재순)는 손자 호경을 감싸고도느라 손녀 우경이가 받을 상처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풍족한 여건에도 불구하고 여간해선 웃지 않는 가족들. 그와 달리 태평이네 가족에게는 콩 한 쪽도 나누어 먹는 훈훈함이 있다.

따라서 이 드라마를 자꾸 보게 만드는 건 흥미진진한 막장 코드가 아닌 새로운 형태의 가족 관계인 것이다. 건욱과 어머니 홍사장이 대립할 적마다, 또 우경이 아버지가 소외된 계층을 가까이 했다가 날벼락을 맞은 아들의 사고가 원인이라고는 해도 가사도우미 태평이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퍼부을 적마다 유난히 거북살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도 강퍅해진 세상 탓인지 우리가 마음 따뜻한 이야기를 바라고 있어서이지 싶다.

착하고 정의롭기로는 지금까지의 일일극 주인공들과 다를 바 없으나 조용한 카리스마가 돋보이는 강단 있는 청년 김태평, 그가 있어 어수선했던 연말이 따사롭다. 부디 사랑으로 인해 마음 고생하는 일은 없었으면.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freechal.com

[사진=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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