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녀시대로 본 아이돌 음악의 급격한 피로감

[엔터미디어=조원희의 로스트 하이웨이] 소녀시대가 야심차게 2013년 1월 1일 발표한 신보의 프로모션 트랙 'I Got A Boy'에 대한 논란이 많다. SM의 간판 작품자인 유영진을 비롯해 예전에 '소원을 말해봐'로 성공적인 하청을 보여줬던 노르웨이 작곡팀 Dsign Music이 함께 참여한 곡이다. 보도자료 스스로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과연 새로운 음악일까? 소녀시대가 지금까지 들려주지 않았던 악곡적 플롯을 지녔을 뿐, 이것이 새로운 장르적 변신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누군가 f(x)의 노래를 빼앗아 소녀시대에 줬다는 농담도 한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수많은 아이돌 지망생들이 불렀던 더피의 'Mercy'를 리메이크한 'Dancing Queen'의 안일함은 지적하기가 민망할 정도다. 기획자 스스로 표현하는 야심에 비해 음반은 소박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녀시대의 이번 음반이 크게 실패할 확률은 적다. 사실 일정 이상의 품질을 지닌 멜로디라인을 지속적으로 방송에 노출시킬 수 있다면 대중이 중독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또 그렇게 기획된 히트곡이 만들어지고 생산자의 고과는 올라갈 것이다. 이것은 단지 소녀시대에만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물론 21세기, 특히 2007년 원더걸스의 히트 이후 만들어진 아이돌 전성시대의 전체적인 음악 수준은 그 이전의 아이돌 그룹들의 노래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극소수의 작품자들이 시장 전체를 장악하고 있었던 그 시절, 아이돌 그룹 멤버들의 전체적 가창력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이 떨어졌던 그 시절과 비교해 보면 놀라울 정도의 발전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아이돌 그룹에 곡을 주는 작품자들은 조금 늘어나긴 했지만 소수인 것이 사실이고 특히 장르적인 다양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10대와 20대 초반을 타겟 오디언스로 하고 소위 '삼촌팬'들을 안배하는 정도의 마케팅 전략을 지닌 걸그룹의 노래들은 앞서 말한대로 20세기의 아이돌 그룹의 노래들에 비해 전체적으로는 수준이 높아졌지만 한계는 명확하다. 일단 한정된 장르를 예로 들 수 있다. 지난 연말 각 방송사의 가요 시상식에서는 여러 아이돌 그룹들의 콜라보레이션이 있었다. 다른 그룹의 멤버들이 팀을 짜거나 화음을 맞췄는데,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하나가 되는 경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천편일률적인 창법과 몰개성한 장르 음악이 대한민국 아이돌 그룹 전체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스타의 노래를 시크릿이 불러도, 소녀시대의 노래를 레인보우가 불러도 그 결과물은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물론 팬들은 들고 일어날 이야기다. 팬들은 그 그룹들의 아주 미묘하고 세밀한 차이까지 모두 인식하고 있을 테니까. 중요한 것은 이렇게 편중된 장르적 특성과 지나친 백화점식 '유명 작곡가 노래 모으기'가 대한민국 아이돌 그룹의 노래들을 비슷비슷하게 만들고 있으며, 나름 그것을 탈피하려는 노력조차 듣는 이들에게 피로감을 선사한다는 점이다.

일단 해외 KPOP 팬들이 가장 먼저 흥미를 보인 '댄스'를 기본으로 하고 가창력 담당 멤버의 매력, 미모 담당 멤버의 도발, 그리고 댄스 멤버의 어필과 랩을 담당하는 멤버의 안배까지 한 곡에 담겨야 하니 일정한 레이아웃을 지닐 수밖에 없다는 업계의 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그런 천편일률적인 디자인이 정말 오랜만에 얻어낸 한국 대중 음악의 해외 진출의 라이프 사이클을 짧게 만들어버린다는 것을 기획자들은 잘 알아야 한다.

나름 돌파구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기획도 보인다. 소위 인디 뮤지션들과의 콜라보레이션이라던가 새로운 작품자를 영입하기 위해 애쓰는 부분들이다. 때로는 기존 시장에서 안락한 행보를 보이던 작품자가 대오각성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2012년에만 50팀 이상 등장한 아이돌 그룹의 노래들 중 장르적으로 차별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새로운 장르적 시도를 한 그룹이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차별되는 장르로 승부한 '주류 그룹'이 없었다는 이야기다.



한국에서 가장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아이돌 그룹의 신곡에 피로감을 느끼는 대중이 많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다. 혹은 이것이 지난 5년간 끝없이 성장했던 아이돌 음악 시장의 괴멸의 신호탄일지도 모른다는 섣부른 생각마저 스친다. '아이돌 VS 인디'라는 허망한 대결구도를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아이돌 그룹의 노래들이 아닌 다른 한국 대중음악 시장은 더욱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대중적 히트를 목적으로 하며 아이돌 그룹이라는 형식에 짜맞추지 않는' 음악을 해도 충분히 대중적 히트를 기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케이스들이 많다. 아이돌 음악의 이런 급격한 피로감은 어떻게 보면 새로운 한국 대중음악의 패러다임이 열리는 긍정적인 신호일지도 모른다.

칼럼니스트 조원희 owen_joe@entermedia.co.kr

[사진=CJ E&M, SM]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