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똑똑한 '아빠들', <일밤>의 고질병 치료하나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다소 주춤했던 2012년을 벗어나자마자 연초부터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들이 쏟아지고 있다. 한계에 다다른 기존의 방송을 넘어선 예능 패러다임을 찾기 위한 노력과 고민의 산물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일밤-아빠 어디가> 또한 이런 경향을 충실히 보여준다. 리얼 버라이어티의 틀을 갖추곤 있지만 최근의 흐름과 방법론을 가미했다. 그래서인지 ‘공간과 성장’이란 기존 리얼 버라이어티보단 <정글의 법칙> <짝> <인간의 조건> 등의 다큐멘터리의 요소가 더욱 강해진 ‘관찰과 힐링’의 예능에 가깝다.

MBC 새 예능 <일밤-아빠 어디가>는 문명의 이기를 누릴 수 없는 시골이나 오지로 엄마 없이 처음으로 아빠와 자녀 단둘이 가족 여행을 떠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들을 담는 프로그램이다. 제작발표회에서 김유곤 PD는 “아버지와 자녀가 48시간 엄마 없이 떠나는 오지여행을 담은 가족버라이어티”라며 “자연 속에서 어떤 감정을 나누는지를 지켜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쉽게 말하면 스튜디오를 벗어난 <전파견문록>, <붕어빵>의 <1박 2일> 버전인 셈이다.

그런데 사실, 이런 프로그램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린이 채널에 대한 관심과 사업성이 높아지면서 <붕어빵>같은 쇼 외에 본격 어린이 리얼리티쇼 또한 존재해왔다. 2009년 국내 최초 어린이 리얼리티쇼로 출발한 EBS의 <유아독존>은 재미나 인기 측면에서 실제로 독보적이었다. 어린이 무작정 탐험대 대원 여섯 명이 1박2일로 여행을 떠나 함께 미션을 수행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는 투니버스의 <막이래쇼>도 벌써 세 번째 시즌에 접어들었다. 그 또래 시청자들 사이에서는 확실한 지지를 받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어린이 채널 프로그램들의 시선이 아이에게 맞춰져 있다면 <일밤>은 여기에 ‘가족’이란 만능 소금을 뿌린다.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아빠와 아이와의 관계에 집중하면서 인류가 종속하는 한 언제나 통할 수밖에 없는 육아에 대한 공감대를 자극한다. 잘만 한다면 매우 충성도 높은 타겟층을 사로잡는 이른바 육아 버라이어티라는 신종 장르의 탄생이 예고되는 것이다.

실제 다섯 가족은 각기 다른 상황을 연출한다. 경제적인 것은 어느 정도 마련했지만 불우했던 가정환경의 영향으로 아들에게 방법론적으로 사랑을 표시하지 못하는 어색한 아빠 성동일, 아들 놀리는 재미에 푹 빠진 친구 같은 아빠 윤민수, 자상한 딸 바보 송종국, 스스로 삼촌 같은 아빠라는 철부지 아빠 이종혁 등 가족들마다 다양한 관계와 사례가 다양하다.



특히 김성주와 그의 아들 민국 군의 에피소드에서는 육아 버라이어티의 가능성이 더욱 두드러진다. 엄마 없이 밖에 나온다는 게 조금 불안하다는 아이와 아들을 무척 사랑하고 온화한 교육관을 갖고 있지만 막상 현실에선 잘 적용하지 못하는 아빠의 모습은 많은 한국의 가장들이 공감하는 지점이다. 게다가 ‘결핍’을 모르는 아들을 늘 걱정하면서도 울고불고 때를 쓰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었던 아버지 김성주가 이 여행을 계기로 육아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을 수도, 해결 가능성을 모색해볼 수도 있는 것처럼 보는 이들도 한번 생각해볼 기회인 것이다.

물론, 의미를 찾기 이전에 <아빠 어디가>는 일단 귀엽다. 아이들만 모아놓고 카메라를 설치해두면 그게 바로 그림이 된다. 예능은 선수가 필요하지만 아이들은 누구나 모두 예능 선수다. 세상을 바라보는 어린이들의 맑고 솔직한 시선과 생각은 언제나 생각지도 못한 흥미로운 장면을 만들어낸다.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어른들이 흉내 내는 게 바로 버라이어티의 캐릭터쇼다. 박명수처럼 노골적인 욕망을 드러내도 밉지 않은 것도 여기서 나오는 것이다.

유일한 홍일점을 향한 남자 아이들의 마음이 드러나는 대목에서는 오그라들면서도 귀엽고, 김성주의 아들 민국이 뽑기로 걸린 숙소가 마음에 안 든다며 통곡을 하자 자기와 바꿔달라고 아버지께 말하는 윤민수의 아들 윤후의 대견함에 흐뭇해하고, 미션을 수행해야 함에도 강아지를 보고 30분 째 발걸음을 떼었다 돌기를 무한 반복하는 7세 전후의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출산의 욕구나 아빠미소를 짓게 한다.



산에 들어간다니 제작진에게 호랑이를 무찌를 수 있는 칼 가진 사람 있냐고 질문하고, 유재석, 강호동보다 카메라 앞에서 제작진에게 갖은 요구를 하는 예측불허의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이 보는 이들의 마음 속 한편에 가라앉아 있었던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자극한다. 모두가 힐링을 외치는 세상에서 아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이다.

단 1회 방송됐을 뿐이지만 <일밤>의 새 프로그램에 모처럼 기대를 하게 되는 건 나름 똑똑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아빠 어디가>는 힐링(<힐링캠프>), 아웃도어(<1박2일>) 등의 트렌드를 캐치해서 아이, 강아지, 육아(<붕어빵>) 등 먹히는 요소를 다 넣고 만들었음에도 체하지 않고 잘 소화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또한 6시대와 달리 비교적 절대 강자가 없는 일요일 5시대인지라 어느 정도 승부를 걸 여지도 있으니, <일밤>의 흑역사에 종지부를 찍을 강력한 후보의 출현인 셈이다.

물론, 걱정되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찾아보게 만들 흡입력은 캐스팅에서부터 부족하다. 소재 자체가 새로운 타겟을 형성할 무기가 되겠지만 확장성 면에서 한계는 <붕어빵>처럼 명확하다. 아이들이 그것을 어느 정도 만회해주겠지만, <짝>처럼 노골적인 심리가 배어 있지 않는 상황에서 매번 다른 장소에서 색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관찰할 수 있게 만들지, 매주 찾아보도록 스토리의 영속성을 갖출 수 있을지 앞으로의 진행에 대한 의문이 남는다.

역시나 <일밤>의 고질병인 유지가능성의 문제는 두고 봐야 할 일로 남는다. 어쨌든 아이들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이제 그 뒷일은 윤후의 말대로 어른들이 앞장서야 할 차례다. 아이를, 가족을, 프로그램을 이끌어나갈 진짜 어른이 필요하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MBC]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