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백우진의 잡학시대] 串 한자는 우리나라에서 중국과 다르게 쓰였다. 중국식 한자음은 ‘관’ ‘천’ 등이었고 뜻은 ‘익다’ ‘습관’ 등이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곶’으로 읽었다. 꼬챙이, 뾰족한 물건, 바다나 강을 향해 길게 뻗은 땅을 가리켰다.

현대 중국어에서는 이 글자의 음이 ‘촨’으로 많이 쓰인다. ‘꿰다’는 뜻이 확장되면서 ‘익다’ 습관’ 등 용례가 쇠퇴한 결과다.

곶은 이제 우리나라에서는 지명에 주로 쓰인다. 장산곶, 호미곶, 갑곶, 장기곶, 호미곶 등이다. 곶은 영어로는 cape라고 한다. 영어 지명에서 cape인 곳을 ‘~곶’이라고 옮긴다. 트라팔가르곶, 혼곶, 배로곶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동네 이름 가운데 串이 쓰인 곳이 석관동(石串洞)이다. 곶(串)을 중국식 한자음에 따라 ‘관’으로 읽은 것이다. 이 지명은 인근 천장산의 지맥이 검은 돌을 꿰어놓은 듯하다고 해서 생겼다. 돌곶이라고 부르고 石串이라고 쓰던 것이, 串을 ‘곶’이 아니라 중국식인 ‘관’으로 읽고 石을 ‘돌’ 대신 ‘석’이라고 읽으면서 ‘돌곶이’가 ‘석관동’이 됐다. 지하철 6호선의 이 동네 역 이름은 ‘돌곶이’라고 해서, 원래 명칭이 되살아났다.

‘곶’은 과거에는 지명 외에도 끝이 뾰족한 쇠나 나무의 명칭에 두루 쓰였고, 주로 ‘곳’으로 표기됐다. 곶은 곳치, 곳챵이로 변화를 겪었고, 여기에서 꼬챙이가 나왔다. 곳치에서 꼬치가 갈라졌는데, 꼬치는 꼬챙이에 꿴 음식물이다. 이 음식은 조리하는 방식에 따라 꼬치구이, 꼬치전 등으로 나뉜다. 곶은 동사도 낳았다. 곶으로 뚫는 동작을 ‘곶다’라고 했고, 이 말은 ‘꽂다’로 바뀌었다.

송곳은 설이 여럿으로 갈리지만, ‘곳’이 ‘곶’에서 왔음에는 이론이 없다. 동곳은 상투를 튼 뒤에 그것이 다시 풀어지지 않도록 꽂는 물건이다. 곶감은 꼬챙이에 꽂아서 말린 감이다. 책꽂이, 붓꽂이는 책과 붓을 꽂아두는 사물을 뜻하고, 꽃꽂이는 꽃을 꽂아 장식하는 일이며, 꺾꽂이는 가지를 꺾어서 땅에 꽂아 자라게 하는 일을 가리킨다.

고깔은 ‘곶갇’에서 나온 말이다. 꼬챙이처럼 길고 뾰족한 모습이라는 뜻에서 이름을 얻었다. 곡괭이의 옛말은 ‘곳광이’다. 원뜻이 ‘뾰족한 괭이’임을 짐작할 수 있다.

오늘날 꽃게라고 불리는 갑각류 동물의 원래 이름은 곳게, 즉 곶게였다. 꽃게는 17세기에 串蟹라고 쓰고 곶게로 읽었다. 게를 뜻하는 蟹는 한자음은 ‘해’이지만 뜻으로 읽은 것. 곶게라는 이름의 유래는 ‘성호사설’에 나온다. 성호사설은 ‘속칭 곶게라고 하는데, 등딱지에 꼬챙이 같이 생긴 두 뿔이 있어서’라고 설명했다. 정약전이 19세기 초에 펴낸 ‘자산어보’도 곶게라는 이름이 ‘두 눈 위에 한치 남짓한 송곳 모양의 것이 있어서 이런 이름이 주어졌다’고 전했다. 꽃게를 위에서 보면 등딱지 왼쪽과 오른쪽에 정말 뾰족한 뿔이 솟아 있다.

꽃게의 이름은 20세기 전반에만 해도 오해의 소지가 되지 않았다. 1938년에 편찬된 ‘조선어사전’은 이 갑각류를 ‘가슴이 퍼지고 그 양쪽 끝이 불쑥 나온 모습’이라고 풀이했으니 말이다.

곶게가 꽃게로 바뀌면서 한자 이름도 串蟹에서 花蟹로 변경됐다. 花蟹는 국어사전에도 올랐다. 이제 꽃게는 ‘삶으면 껍데기가 꽃처럼 붉어져서’ 그렇게 불리게 됐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칼럼니스트 백우진 <안티이코노믹스><글은 논리다> 저자 smitten@naver.com

[자료]
박영철, 문자 ‘串’에 관한 연구, 국어학64(2012.8)
조항범, ‘곶(串)’ 계열 어휘의 형성과 의미에 대하여, 국어학63(2012.4)
한국민족문화대백과 encykorea.aks.ac.kr

[사진=평화네 꽃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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