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급 공무원>, 황찬성 없었으면 어쩔 뻔 했나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MBC <7급 공무원>이 5회 만에 당당히 수목극 1위에 올랐다. 그러나 제작진으로서는 기뻐할 틈도 없이 좌불안석, 피를 말리는 심정일 게다. 얼마 안 있어 KBS2 <아이리스 2>와 SBS <그 겨울, 바람이 분다>라는 기대작들의 숨 막히는 추격이 시작될 예정이니 말이다. 그러나 시청자 입장에서야 뭘 봐야 좋을지 갈등 깨나 하게 생겼으니 그야말로 즐거운 비명인 셈이다.

그런데 사실 방송 전 제작 발표회 기사를 접했을 때만 해도 두 가지 걱정이 있었다. 가뜩이나 ‘국정원’이라는 단어 자체가 민감해진 상황. 조국과 국가를 과하게 강조했다가는 홍보물 찍느냐는 소리를 들을 테고 반대로 가벼운 터치로 자칫 잘못 풀었다가는 죽도 밥도 아니 될 터, 진지함과 유쾌함 사이에서 얼마나 균형을 잘 유지할 수 있을지 그게 걱정이었다. 그러나 6회까지 지켜본 결과 겉포장은 첩보물이지만 실은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인 모양이다. 물론 확고한 국가관과 개인의 행복을 앞에 둔 갈등과 고민이 극의 흐름을 주도하긴 하겠지만.

그리고 또 다른 걱정거리 하나는 한 장의 사진에서 비롯됐다. 제작 발표회장에 걸린 배우들의 얼굴이 인쇄된 대형 휘장이었는데 최강희와 주원을 지나 황찬성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 내 머릿속은 의문 부호로 가득해졌다. 믿고 보는 최강희와 주원 더하기 아이돌이라고? 보아하니 셋이 삼각관계인가 본데 과연 잘 해낼까? 아무리 수출이 관건이라고는 해도 이건 모험이잖아? 평소 아이돌에 대한 편견 따위는 없었지만 앞으로 펼쳐질 수목극의 구도가 워낙 한 치 앞을 짐작할 수 없는 혼전 상태다 보니 자꾸만 악수라는 생각이 드는 거다.

황찬성이 처음 눈도장을 찍은 MBC <거침없이 하이킥>이며 KBS2 <드림하이>에 잠깐 등장했을 당시의 연기를 떠올려 보니 우려는 한층 더 깊어졌다. 감초 역할이라면 또 몰라도 이미 검증받은 두 배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비중, 이건 아니지 싶었던 것. 게다가 아이돌들이 넘쳐나는 스케줄 탓에 본의 아니게 현장 분위기를 해친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던지라 삐딱한 시선을 보내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런데 이게 웬 일. 첫 회 첫 등장부터 기우였음을 확인시켜준 황찬성, 그의 변화를 위한 노력에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든든한 중견 연기자들의 뒷받침과 더불어 소탈하고 씩씩하면서 속 깊은 면모의 김서원(최강희), 순수하고 유쾌하지만 내재된 고민이 순간순간 엿보이는 한길로(주원), 그리고 카리스마와 허당기를 동시에 지닌 공도하(황찬성). 세 인물이 치우침 없이 잘 어우러지니 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만에 하나 황찬성이 구멍 노릇이라도 했으면 어쩔 뻔 했을꼬. 진지할 때는 사뭇 진지하게, 웃음이 필요할 때는 적절한 코믹 연기로 극의 재미를 더하고 있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아이돌의 연기 도전이 비난을 사는 건 아마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었기 때문일 게다. 부단한 노력으로 차곡차곡 경력을 쌓아가야 옳을진대 발걸음 막 떼기 시작한 아이를 큰 길로 내모는 양상이니 넘어지고 다치는 건 당연지사가 아닐는지. 주변의 과욕으로 결국 괜스레 오점만 남기고 마는 아이돌들, 딱하기 그지없다. ‘발연기’라는 비난을 딛고 일어서는 과정도 필요하겠지만 그보다는 충분히 소화할 수 있는 배역과 분량을 택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황찬성과 제작진의 이번 선택은 적절했다. 초반의 비밀요원 훈련과정과 과거 회상 장면에서는 2PM 무대를 통해 선보인 냉철한 카리스마를 뿜어냈고 그 후엔 슬슬 장난기어린 허술함을 드러내며 공도하라는 캐릭터를 완성시키고 있으니까. 그리고 금상첨화라고 차차 동료 신선미(김민서)와 묘한 감정이 싹틀 조짐도 보이고 있다. 공도하에게서 느껴지는 진지함과 허술함을 넘나드는 조화, 이것이 바로 이 드라마의 묘미이지 싶다.

“긴장하자!” 극중 김원석(안내상)이 입버릇처럼 달고 사는 말이다. 제작진은 부디 긴장의 끈을 놓지 말고 끝까지 기획의도를 챙기기를, 그리고 모처럼 좋은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 황찬성 그가 자신의 역할에 몰두 할 수 있도록, 그리하여 앞으로 연기자로서 마음껏 나래를 펼칠 수 있게 기획사를 포함한 모두가 도와줬으면 좋겠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사진=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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