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빛>,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강호동의 진가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KBS2 <달빛 프린스> 이번 주 선정 도서 ‘샬롯의 거미줄’에서 늙은 양이 돼지 윌버에게 ‘너는 곧 크리스마스 때 햄과 베이컨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듯이 새로 시작된 <달빛 프린스>를 두고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지금껏 단순무식을 콘셉트로 밀어온 강호동이 난데없이 책을 주제로 판을 벌였다는 자체가 패인이라느니, 무모한 도전이었다느니, 쓸데없는 벌칙들이 몰입을 방해한다느니, MC들이 어색하니 앉아서 병풍 노릇이나 한다느니, 모두가 전문가가 되어 한마디씩 거들었다.

나 또한 다르지 않아서 매회 트집 잡을 것 없나 며느리를 감시하는 시어머니 모양 세모눈을 한 채 지켜봤던 것 같다. 애당초 ‘어디 잘 하나 보자’ 하는 삐딱한 시선이었으니 무슨 말을 한들, 뭘 보여준들 마음을 열고 받아들였겠나.

그런데 어제 <달빛 프린스>가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웃었다. 그것도 몇 차례나. 나도 모르게 실실 웃다가 끝내 파안대소할 수밖에 없었던 건 문제 출제를 위해 출연한 아이들 때문이었다. 예측하지 못한 공격이었다고 할까? 별 의미 없는 MC들 간의 말장난이 확연히 줄어든 대신 빤하지 않은 아이들의 재치며 연장자의 의견 수렴까지 필요했던 옥신각신 승부욕들이 색다른 재미를 가져다주었는데 문제를 틀려 아이를 좌절케 한 최강창민의 무릎 꿇은 모습이라든가 아이를 둔 MC며 초대 손님들이 아빠의 마음으로 자식 대하듯 아이를 달래주는 장면도 보기 흐뭇했다. 그 모든 것이 MC와 초대 손님, 또 일반인 출연자들의 각자의 자리에서 제몫을 다해준 덕분이고 배려를 잃지 않는 자세 덕이지 싶다.

뿐만 아니라 이보영이 초대 손님이었던 3회가 이보영 개인에게 국한된 호감이었다면 이번엔 초대 손님은 물론 MC들에게도 호감을 느끼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각기 편을 나누어 책 내용을 가르치고 가르침을 받는 과외 수업이 시작되자 초대 손님 이재룡과 막내 MC 최강창민 사이에는 삼촌과 조카 같은 친밀함이 생겼고, 용형(용감한 형제)과 정재형 사이에도 공감대가 생겨났다. 용형과 5회에 이른 이제야 비로소 눈을 맞춰본다는 정재형. 확실히 사람은 서로 눈빛을 마주해야 마음이 오가는 법이라는 걸 새삼 깨달을 수 있었는데 더구나 밀폐된 작은 방은 눈과 눈을 마주한 토크에 누구보다 강한 강호동에게는 최적의 공간이 아니겠나.







무엇보다 좋았던 건, 최고의 수확은 방송을 보는 사이 ‘샬롯의 거미줄’이라는 동화책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마무리 즈음에는 과외와 퀴즈를 통해 이미 세세한 부분까지 내용이 다 숙지된 상태였지만 “나는 널 도와줌으로써 내 삶을 조금이나마 승격시키려고 했던 건지도 모르겠어.”, “너는 내 친구였어. 그것만으로도 굉장한 일이야.”라는 거미 샬롯의 대사를 직접 내 눈으로 보고 싶어졌으니까.

5회 만에 넘을 수 없는 산처럼 느껴졌던 문제점을 해결해낸 제작진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강호동이 ‘우린 매일 첫 방송’이라고 표현했듯이 매회 변화를 거듭해오지 않았나. 수많은 가시 돋친 신랄한 지적들을 받아들이고 고민하고, 개선하고, 새로운 시도로 안정을 찾기 위해 꾸준히 노력을 해온 <달빛 프린스>. 그리하여 사소하더라도 꾸준한 실천만이 삶을 달라지게 한다는 사실을 증명해냈으니 이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차차 계륵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던 ‘책’이라는 소재를 끝내 지켜냈다는 점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첫 회부터 이랬다면 좋았겠지만 볼만한, 누군가에게 권하고 싶은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말이다. 아침 일찍 시청률을 찾아봤더니 0.1 퍼센트, 아주 소폭 상승했으나 그럼에도 꼴찌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실망은 절대 금물, 시청률이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을 찾았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미로를 헤매던 끝에 제 길을 찾았고 초심을 잃지 않을 믿음직한 제작진들이 버티고 있으니 이제 무에 걱정이 있으리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사진=KBS2]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