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신>, ‘수요일의 신’ <라스>에게 배울 점

[엔터미디어=김교석의 어쩌다 네가] 토크쇼는 많다. 틀은 각자 다를지라도 추구하는 바는 같다. 하나마나한 이야기, 다른 데서 들을 수 있는 이야기, 연예인들의 신변잡기를 지양하고 보다 내밀한, 그래서 우리가 미처 몰랐던 게스트의 매력적인 모습을 ‘재밌게’ 전해주는 것. <힐링캠프>와 부활한 <무릎팍도사>를 필두로 모두가 나를 드러내는 시대의 토크쇼의 공통분모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윤종신이 진행을 맡고 있는 <라디오스타>와 <강심장>의 자리에 들어온 올드스쿨 버전의 토크쇼 <화신>은 이런 경향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정확히 말하면 전자는 감정의 과잉과 정색하고 게스트 띄워주는 것을 참지 못해서 그렇고 후자는 <서세원쇼>부터 이어진 에피소드 식 토크의 틀을 승계해서 그렇다.

새롭게 시작한 토크쇼 <화신-마음을 지배하는 자>의 화두는 '당신은 오늘 누구와 대화했습니까'이다. 바쁘게 앞만 보고 달리는 각박한 삶에 지쳐버린 지금, 소중한 것을 뒤돌아보고자 하는 새로운 파도 위에 제대로 올라탔다. 세대 차이와 소통이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시청자들의 설문조사를 토대로 응답순위를 매긴 ‘랭킹토크쇼’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해소해 가고자 한다. 그래서 ‘시청자의 참여’의 의미는 이 쇼에서 중요한 후크다. 누구나 한번쯤 가져봤을 생활밀착형 궁금증에 대해 ‘10만 명의 시청자들이 직접 참여’해 응답했다는 홍보는 그래서 중요하다.

그런데 설정과 이름만 바꾸면 우리가 잘 아는 그 프로그램이다. 세대를 초월한 만 명에게 질문을 던져 그들의 속마음을 파헤치는 콘셉트의 랭킹토크쇼 <야심만만>에 신동엽이 지난날 김원희와 콤비를 이뤄 콩트를 펼쳤던 <헤이헤이헤이>를 양념으로 얹은 것과 같다. 김원희가 김희선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실제로도 기술의 발달로 인한 시청자 참여 인원수가 10배로 늘었다는 점과 50대까지 세대의 외연을 넓힌 것 외에 벌칙까지 달라진 설정은 없다.

<야심만만>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성공적으로 장수한 토크쇼이다. 하지만 문을 닫을 때 즈음에는 에피소드식 토크 방식 자체가 식상해졌고 대화의 주제가 너무 작아져서 때에 따라 지엽적인 주제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다보니 공감대는 점점 옅어졌었다. 오늘날 토크쇼가 다시 각광받는 건 대중들이 이야기 자체보다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누군가에게 열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느 때보다 예능 선수가 아닌 이들이 예능에 난입 수준으로 등장한다. 마침 이수근이 패러디한 혜민 스님이 대표적이다. 지금 시대는 한 사람의 누군가에게서 따뜻한 희망을 보고 싶어 하고 예능과 토크쇼는 이런 바람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그런 이때 세대별 소통 부재라는 정서적 문제를 랭킹토크쇼로 풀어간다는 가벼운 접근은 아직 마무리가 2% 부족한 진행 정리의 문제보다 더 느슨한 매듭처럼 느껴진다. 그럴듯한 해법과 신선한 접근이 있을 것 같지만 랭킹토크쇼는 기본적으로 시청자들의 참여보다는 게스트의 입담에 따라 좌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첫 회가 재밌었던 것도 이수근, 은지원, 김종민, 전현무 등의 선수들의 기본을 해줬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돋보이게 만들거나 빠져들 수 있게 만드는 요즘 토크쇼식 대화보다 상황극이나 에피소드 전달에 치중하는 형식으로 승부를 볼 것이라면 굳이 요즘의 경향을 입히는 것보다 틀에 걸맞은 톤으로 조정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마침, 윤종신이 터줏대감으로 활약하는 또 다른 프로그램인 <라디오스타>는 <화신>을 비롯한 토크쇼들이 참조할만한 하나의 가능성이다. 그 틀은 개성이 강하지만 내용은 요즘 모든 토크쇼들이 지향하는 바가 대부분 녹아 있다. 우선 게스트에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게스트의 존재감과 매력을 시청자들에게 전달하고,(이는 방송 후 포털 사이트에 들어가 보면 알 수 있다) 하나마나한 이야기는 자제한다. 보다 개인적인 내밀한 이야기를 하되 웃음부터 눈물까지 강박적으로 보여주지 않으면서도 웃음과 인생에 관한 생각, 감성적 충족을 만들어낸다.

이번 주 게스트 중 한 명이였던 김성경은 한선교 선배한테 들은 말이라며 교양 100개 해봐야 예능 1개에 못 미친다고 했는데 맞는 말인 듯하다. 모두 베테랑 방송인이라고는 하지만 예능은 초보이고, 인지도도 낮았다. 많은 시청자들은 김경란 아나운서가 프리 선언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고, 김성경 아나운서가 배우 김성령의 동생이라는 사실, 다시 말해 김성령의 동생이 있었는데 아나운서라는 사실을 10년이 훌쩍 넘은 지금에서야 알게 됐다.



한 방송국의 간판 아나운서가 봉사를 위해 퇴사를 하게 된 사연을 말한다. 그 어떤 눈물이나 고조된 분위기가 없이 담담하게 말하니 반짝반짝 빛나는 눈이 진정성을 대신한다. 또 김성경은 시종일관 가식 없고 센 여자의 매력을 보여주다가 아들과 관련한 질문에 울음을 터트린다. 그러나 그 눈물에 젖는 장치를 넣거나 기계적으로 감상적인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웃음이란 살코기를 다소 부드럽게 해주는 정도지, 담백함을 해치지 않는다.

김성경은 "환각제 같다. 이렇게 흥분해 방송한 적이 없었다. 에너지가 샘솟다가 잠깐 다운 됐을 때는 내 모든 감정 가장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고 말했다. <라디오 스타>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말이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시종 일관 낄낄거릴 수 있는 톤을 유지하는 것이다. 이는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말이자 시청자들과 학습된 일종의 연대이자 학습이다.

이런 고유의 톤은 재료만큼은 너무나 훌륭한 <화신>이 앞으로 꼭 가져갔으면 덕목이다. 이것을 갖춘다면 형식의 여하에 상관없이 <라디오 스타>처럼 담을 그릇이 커질 것이다. ‘화요일의 신’ 자리를 차지하는 건 상대들을 생각하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다만, <야심만만>의 2013판이 될지, 그냥 그런 웃고 지나가는 토크쇼가 될지, 마음에 남는 한 편의 쇼가 될지는 바로 어떤 톤과 매너를 갖느냐에 달렸다. 웃음은 이미 충분하고 토크쇼 또한 너무나 많다.

칼럼니스트 김교석 mcwivern@naver.com

[사진=SBS,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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