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지난 3월 29일부터 31일까지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오른 수지오페라단 <투란도트> 공연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초호화 캐스팅의 한계를 드러낸 무대’였다.

마린스키극장 프리마돈나로 2002년 이후 10여 년간 서구무대에서 투란도트 전문가수로 활약해온 소프라노 이리나 고르데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칼라프를 노래한 테너 발터 프라카로를 비롯해 주역부터 조역까지 세계적인 투란도트 전문 배우들이 열연을 펼친다고 자신만만했던 호기는 어디로 가고, 막상 뚜껑을 여니 주역 및 앙상블들은 완전히 일치된 호흡을 보여주지 못했다

영국 런던 코벤트가든 로열오페라하우스 등지에서 투란도트 역을 맡아온 소프라노 안나 샤파진스카이아는 팔색조처럼 다양한 음색을 보여줘야 하는 역할임에도 표독스럽고 냉정한 이미지만 강하게 부각됐다. 가장 큰 문제는 칼라프 역을 맡은 테너 안토니노 인테리자노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다. 테너 프란체스코 아닐레 대타로 급하게 투입된 신진 테너는 기본적인 발성부터 고음까지 만족스러운 부분을 찾기 힘든 성악가였다. 그 결과 내심 불안한 상태로 극을 지켜봐야 하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 그나마 ‘핑’역을 맡은 바리톤 마르코 니스티코의 안정된 음성이 귀를 열게 만들었다.

중국 공주 투란도트와 타타르국의 왕자 칼라프의 사랑 이야기를 다룬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는 작가 카를로 고치의 우화 ‘투란도테’를 원작으로 한다. 푸치니는 3막 칼라프 왕자를 연모하던 여자 노예 류가 ‘왕자의 이름을 밝히라’는 고문 앞에 자결하는 일부까지만 작곡한 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의 제자 프랑코 알파노가 3막의 이중창과 피날레를 작곡해 유작을 완성시키며 1926년 밀라노의 스칼라극장에서 초연 무대를 가졌다.

2013년은 푸치니가 사망한지 벌써 89년이 지났지만(저작권은 사망 후 70년까지 보호됨) 현대 오페라창작품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저작권이 살아있는 작품이다. 3막의 완성을 의뢰한 리코르디 출판사가 악보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 이러한 사정으로 인해 오케스트라 파트 보(각 악기별의 악보)를 직접 이탈리아 리코르디 출판사에서 대여하는 형식으로만 공연에 사용할 수 있다. 그 때문에 막대한 저작료를 지불해야만 무대에 올릴 수 있는 오페라가 된 것.



연출가 프란체스코 벨로또(협력연출 홍민정)는 푸치니가 이 작품을 완성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 “냉혹하고 무자비한 공주(투란도트)를 어떤 정해진 수순이 있는 것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진 여성으로 묘사하는 것을 푸치니가 원치 않았을거라 믿는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투란도트>와 색다른 연출가만의 해석은 없었다. 다만, 중국 관리 핑 퐁 팡이 극중에서 고문관 및 교육관의 역할을 하며 관중을 웃게 하는 동시에 진실을 알리는 위치에 있는 것이 눈에 띄는 정도다.

성악가, 합창단 주연, 조연을 비롯해 합창단 연기자 오케스트라까지 250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원, 전통 곡예와 마임이 어우러져 관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거대한 스케일의 오페라다. 그럼에도 2011년 국립오페라단이 중국국가대극원(NCPA)과 함께 무대에 올린 <투란도트>의 대륙적 스케일을 따라잡기엔 무대 장치 및 조명등이 밋밋한 감이 없지 않았다.

류 역의 소프라노 오미선은 지금까지의 ‘투란도트’ 경험을 살려 헌신하는 ‘류’ 캐릭터를 잘 살려냈다. 티무르 역 베이스 김요한은 장중한 목소리로 무게 중심을 실어줬지만 최상의 컨디션은 아닌 듯 보였다. 이외 베이스 김민석(티무르),테너 양일모 권희준(알툼), 바리톤 장승식 김대식(만다리노) 등이 출연했다.

잠파올로 비잔티 지휘자가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수지오페라합창단(지휘 윤의중), ‘푸틴파오’로 열연한 노미정 단장과 노미정댄스컴퍼니, CTS 서울소년소녀합창단(지휘 신수진)이 힘을 보탰다.

유명 오페라가 올려진다는 소식이 전해지면, 해외 성악가들에게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는 게 사실이다. 이번 <투란도트>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라 스칼라 오페라극장,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 코벤트 가든 로열 오페라하우스를 점령한 초호화 성악가 캐스팅이란 수식어, 물론 좋다. 다만 국내 성악가들도 그에 못지 않은 실력을 지녔다는 사실을 소홀히 하는 게 문제다.

해외 성악가들에 대한 찬사는 차고 넘칠 정도로 전하면서 국내 성악가들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는 게 현실이다. 보도자료 자체에 출연성악가들의 이름이 없는 경우도 많이 봤다. 국내 오페라가 대중과 더 가깝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이 점부터 고쳐져야 하지 않을까.

한편, <투란도트>는 하반기에 다시 만날 수 있다.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 투란도트 > (8월), 베세토 오페라단 < 투란도트 > (10월)가 연달아 공연될 예정.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정다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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