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지영, 여기저기서 헷깔리는 ‘큰손’ 역할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돋보기] 지난 주말 저녁을 먹고 TV를 켰더니 중견 연기자 김지영 씨가 웬 남자를 앞에 두고 “돈을 빌리고 싶으면 건물이든 땅이든 담보를 가져오라.”며 호통을 치고 있었다. 얼마 전 SBS <마이더스>에서 인진 그룹의 차남 유성준(윤제문)이 사채시장의 큰손 우금지(김지영) 여사를 찾아와 거액의 자금을 빌려 달라며 통사정을 하는 장면을 목격했던 터라 또 누가 돈을 빌리러 왔나 보다 하며 무심히 보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일요일 저녁에 웬 <마이더스>지? SBS <마이더스>는 분명 월・화 드라마가 아닌가. 재방송인가 싶어 채널을 확인하려는 순간 마침 뒤를 이어 김석훈이 등장했다. 그제야 비로소 이 드라마가 <마이더스>가 아니라 바로 MBC 주말극 <반짝반짝 빛나는>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순댓국밥집 주인으로만 여겼던 송승준(김석훈) 편집장의 어머니가 실은 <마이더스>의 우여사 못지않은 큰손이시란다. 우여사도 처음엔 그저 인진병원 VIP 병동의 돈 꽤나 있는 환자려니 했다가 유성준을 비롯하여 김도현(장혁)까지 도와달라고 찾아오는 바람에 돈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인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었는데 승준의 모친 역시 자금을 빌리러 오는 사람들이 밤이면 밤마다 줄을 잇고 있었다. 오죽하면 경호원까지 두고 금고가 셋씩이나 되겠나.

그런데 이건 좀 너무하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중견 배우 층이 두텁지 못하다지만 일주일에 나흘을 똑 같은 ‘큰손’ 역할이라니, 두 캐릭터가 어마어마한 재력을 지닌 사채업자라는 점 말고도 성격도, 머리 모양이나 옷매무새도 같고 심지어 안경 모양조차 별 다르지 않다. 한쪽에서는 함경도, 한쪽에서는 경상도 사투리를 구가하고 있지만 솔직히 한 장면만 놓고 보면 우여사인지 승준이 모친인지 구별이 어려울 정도다.




사실 비중 있는 조연급 중견 연기자들의 이 같은 겹치기 출연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다. 이순재, 정보석, 김갑수 씨 등등 손으로 꼽기 어려울 정도로 무수히 많지만 그중 최근의 예를 들어 보자면 정애리 씨만 해도 KBS <근초고왕>에도 ‘소서노’로 등장한 바 있고 KBS 일일극 <웃어라 동해야>와 MBC 아침드라마 <당신 참 예쁘다>에 현재 동시에 출연 중이다. 극중 성격도 많이 다르고 의상이나 머리 모양으로 변화를 주고 있어 다행히 김지영 씨의 경우처럼 헛갈리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일주일 내내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비추는 셈이 아닌가.

물론 드라마 방영 시기나 요일이 방송사와 제작사의 사정에 따라 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들었다. 따라서 예기치 못한 편성으로 본의 아닌 겹치기 출연이 될 때도 있겠지만 김지영 씨처럼 너무 흡사한 인물이라든지 아니면 반대로 지나치게 달라 몰입을 방해할 정도의 캐릭터를 연기하게 될 시, 제작진과 협의를 거쳐 어떻게든 완급조절을 해야 옳지 않을까? 솔직히 젊은 연기자가 이런 식의 활동을 했다가는 한동안 입 도마에 오르고 남을 일이지 싶다.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그림 정덕주


[사진=MBC, 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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