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랙퀸>, 백만분의 일의 여자 하리수가 던지는 화두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리얼버라이어티 쇼 뮤지컬 <드랙퀸>은 ‘드랙퀸’이라는 이색 소재와 트렌스젠더 연예인 하리수가 ‘배우 이경은’이란 이름을 내걸고 첫 뮤지컬에 도전하여 화제를 모은 작품.

가볍고 신나게 볼 수 있는 쇼 뮤지컬이라고 알고 갔는데, 막상 만나보니 적나라한 풍자 쇼에 고개를 끄덕이고 왔다.

작품의 제목이기도 한 ‘드랙퀸(Drag Queen)’이란 단어는 화려한 여성복장을 하고 음악과 댄스, 립싱크 등 다양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남성 혹은 성전환 이전의 남자 성소수자들을 지칭한다. 보다 쉽게 말해 뮤지컬 <헤드윅>의 ‘이츠학’을 떠올리면 된다.

작품은 클럽이 불황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자 거물급 폭력조직의 NO.2인 홍사장이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배우 이경은은 극 중 드랙퀸 쇼 클럽 ‘블랙로즈’의 사장이자 우아하고 지적인 프로 쇼걸 ‘오마담’으로 나온다.

캐릭터 구성이 흥미롭다. 여장남자로 살아가는 드랙퀸 시스터즈와 그들을 바라보는 일반인의 시각으로 양분된 인물들이 나온다. 우선 군인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 성 정체성에 혼란을 겪었던 드랙퀸 오마담, 자신의 성 정체성을 이해해주는 부모 밑에서 자라 보다 쾌활한 드랙퀸 지화자, 절반은 트랜스인 상태로 마지막 수술을 앞두고 있는 드랙퀸 소희가 등장한다.

이들과 대척점에 있는 인물이 호모포비아(동성애나 동성애자에 대해 비이성적인 막연한 두려움을 지닌 사람) 홍사장이다. 마지막으로 ‘러버’(트랜스 젠더는 아니지만 트랜스 젠더를 좋아하는 사람)인 클럽의 남자댄서와 새내기 드랙퀸 에밀리가 나온다.

이상곤 연출은 ‘남자가 여자 옷 입고 뭐하고 노는지 궁금해 하는 관객들의 지극히 일차적인 욕망’을 간파했다. 실제 무대와 객석의 구분 없이 극은 전개된다. 당신은 뮤지컬을 보러 온 관객이자, 드랙퀸 쇼를 구경하러 온 손님이 되는 것.



화려한 ‘드랙퀸 쇼’를 만날 수 있다. ‘드랙퀸 쇼’는 인공적이고 과장된 여성의 이미지를 연기함으로써 성의 자연스러움을 전복하는 하나의 문화로, 동성애자, 트랜스젠더 등 다양한 성적 소수자 그룹에서 유행하는 쇼 문화다.

뮤지컬 <드랙퀸>은 ‘드랙퀸쇼’를 하는 성소수자들의 외면과 내면, 이들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각을 함께 담아내며 “정상과 비정상의 기준”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작품이다. 호모포비아 홍사장과 드랙퀸 오마담은 서로 조금 양보하고 의견 차를 좁혀가며 결국 친구가 된다. 그 사이에 흐르는 우정이 따뜻하다.

하리수는 전직 드랙퀸 가수였다. 다른 가수의 노래로 빌린 인생을 살지만 세상 밖으로 나가면 클럽에서 느꼈던 작은 소속감 마저 경험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럴까. 그녀가 극 속에서 장난스럽게 던지는 ‘지랄이 풍년’, ‘변태소굴’ 같은 한마디 한마디에서 뼈아픈 농담을 발견할 수 있다.

존재하는 것 하나로 폐를 끼쳐 온 인생을 살아온 그녀들이 이야기한다. “네 엄마는 너 낳고 미역국 먹었냐고. 거시기 달고 변태짓거리 하냐고. 호모새끼. 변태새끼. 그 놈의 남자새끼가...”

사석에서 연예인 하리수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대개 ‘여자도 남자도 아니다’, 라고 말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 하리수는 자신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여자이다. ‘백만분의 일의 여자’로 더욱 소중한 여자 말이다. 그래서 무대에서 만날 수 있는 그녀의 인생과 눈물이 더욱 값지다.

창작뮤지컬이고 공연 초반이라 줄거리 전개 및 출연진들의 합이 다소 어수선하고 매끄럽지 못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쇼와 드라마의 기본 구성은 잘 갖춰져 있으니 어느 정도만 가지를 쳐 내는 작업을 거쳐, 성 소수자 뿐 아닌 오만과 편견을 가진 일반인들에게 계속 사랑받을 수 있는 뮤지컬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작가 겸 연출가 이상곤이 배우 이경은과 함께 오마담 역에 더블 캐스팅 됐다. 두 배우의 표현 방식이 달라 신선한 재미를 선사한다.

배우 이경은(하리수), 이상곤, 강석호, 이정국, 문민형, 박세웅, 박재우, 김종남, 지인규, 노현, 차세빈이 출연한다. 6월 2일까지 대학로 SH아트홀에서 만날 수 있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정다훈 기자, 콘 엔터테인먼트, 아담스페이스]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