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지난 12일부터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무대에 오른 연극 <칼잡이>(연출 위성신)는 재래시장 횟집을 배경으로 신·구 세대의 갈등을 유쾌하게 풀어낸 풍속극이다. 주인공은 횟집사장이자 칼잡이 장인 오익달(이창직)과 고시촌 쪽방에 살면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익달을 찾아온 젊은이 채병욱(이병권)이다. 그 속엔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시장 상인들의 이야기가 골고루 녹아있다.

연극은 재래시장인 ‘서운시장’을 영상으로 보여 준 뒤 자연스럽게 관객들을 친근한 시장 속으로 초대했다. 음악극의 형식을 차용해 기본 분위기는 왁자지껄 신난다. 무게 잡지 않으면서도 그 안에 담긴 메시지의 결이 하나 하나 살아있는 점이 강점.

원작「칼잡이」는 지난 2012년 제2회 자랑스러운 한국인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받으며 작품의 우수성을 검증받았다. 서울시극단은 강철수의 시나리오를 연극으로 각색(장경섭)했다. 강철수의 작품이 연극으로 소개되는 것은 지난 1991년 「돈아 돈아 돈아」 이후 20여 년 만이다.

‘쌍칼을 들다-칼잡이로 거듭나다-진짜 칼잡이-칼을 얻다’란 소주제 아래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순환을 연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짠돌이 횟집 사장 밑에서 그렇게 서른이 코앞인 젊은이 채병욱은 인생을 배운다.

작가가 서부 영화에서 영감을 받아 쓴 만큼 21세기 서부활극으로 불러도 좋을 듯 하다. 서부 영화의 고독한 총잡이가 복잡한 시대를 사는 고독한 칼잡이로 부활한다. 대학 졸업장도 무용지물로 만드는 엄청난 취업난과 대기업이 만든 대형마트 등장으로 인한 재래시장 상권 압박이 칼잡이가 이겨내야 할 ‘절대 악’이다.



신세대와 구세대의 대립과 융화, 생활고, 가족간의 소통의 부재, 다문화에 대한 편견까지 아우르고 있는 연극이다. 비밀을 간직한 재수생 종업원 지니, 칠순이 넘도록 자식 뒷바라지 하느라 투잡을 뛰는 할머니, 벙어리인 척 살아가는 파트타임 조선족 밍티엔, 폐지할머니의 유모차를 조용히 밀어주는 청년등이 극을 풍성하게 이해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아날로그 꼰대로 불리던 ‘익달’은 진검 같은 원조회칼을 청년에게 물려주고 떠난다. 아직까지 세상은 살만하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순간이기도 했다.

강철수 작가는 젊은이를 꾸짖어 바른 길로 이끄는 어른다운 어른이 없다고 어른들이 탄식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세상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상을 받을 만한 어른이 있다. 음지에서 묵묵히 내공을 쌓으며 열정을 불태우는 젊은이도 많다. 이것은 그들의 이야기다.“라고 작의를 밝혔다.

지금까지 서울시극단이 선 보인 정극의 분위기와는 다소 달라 반응이 양쪽으로 갈릴 수도 있을 듯 하다. 조용하고 어려운 연극의 무게감이 부담스러워 연극 보기를 꺼려했다면 한번 쯤 도전해볼만하다.



박소연 작곡가가 만든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아가네’라는 시장 상인들의 노래, 후렴구를 자꾸 따라 부르게 만든 ‘좋다 좋아’ 등 귀를 사로잡는 음악이 매혹적이다.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주인공으로 발탁된 배우 이병권의 진정성 있는 연기가 좋다.
푸근한 KFC 할아버지란 별명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배우 이창직이 ‘익달’역을 맡아 무게감을 잡아준다. 마지막 커튼콜에서 만날 수 있는 앙증맞은 율동도 놓치지 말길.

껍데기 집 사장으로 나온 배우 강신구, 커피 아줌마로 나온 배우 김현, 투잡 뛰는 할머니로 나온 배우 양말복, 소극장 무대 위에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하는 것에 이어 남자다운 프로포즈까지 선보인 배우 주성환, 통닭집 주인으로 나온 배우 전영, 헤어스타일부터 부르조아 사장스런 분위기를 물씬 풍겼던 배우 차청화, 미워할 수 없는 다방아가씨 배우 구옥분등 사랑스런 배우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배우 이창직, 강지은, 강신구, 김신기, 주성환, 이재훤, 김현, 양말복, 전영, 양현석,
박원진, 최나라, 차청화, 이병권, 구옥분, 조현식, 유승락 출연. 4월 28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 씨어터에서 공연된다.

‘칼잡이’의 주제는 익달의 대사에서 은유적으로 빛난다. 사람이든 물고기든 결이 있다는 점에서 똑같다. 그 결을 알아야 하는 게 칼잡이의 기본적인 자세이다. 칼잡이가 게을러서 날이 무뎌지면 본인도 힘들고 상대도 힘들 듯 말이다. 결국 ‘내가 칼이 되고 칼이 내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서울시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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