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스트 투 노멀> 이정열 “배우는 절벽에서 러닝머신 뛰는 존재”[인터뷰]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돌직구 인터뷰] “10일 동안 아무것도 못 먹고 누워있으면서, ‘산다’의 반대말은 뭘까. ‘안 산다’ ‘못 산다’가 아닌 ‘죽는다’겠구나. ‘죽음이 멀리 있는 게 아니구나’에 까지 생각이 이르렀어요. 모든 종합병원엔 장례식장이 있듯이 말이죠.

아프기 전엔 ‘삶과 죽음을 고민한다는 것’ 자체가 거짓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고민했던 건 삶과 죽음이 아니라 ‘더 잘사는 삶’ 이었던 것 같아요.

또 아프기 싫다. 병원에 가지 말자 이런 생각도 들어요. 나 혼자 몸이라면 아쉬움이 없겠는데, 아내가 있고 아이가 있잖아요. 저 아이들이 클 때까진 도움을 주고 싶어요. 또 어머니보다 일찍 가는 그런 아들은 되지 말아야죠. 뮤지컬 <그날들>이 끝나면 시골에 가서 아무것도 안하고 책만 보고 놀고 싶어요. 그렇게 3~4개월 실컷 요양하고 올 겁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의 굿맨 패밀리 이정열을 만났다. 공연이 끝난 후 알싸한 홍어찜을 앞에 놓고 이뤄진 인터뷰는 새벽이 돼서야 끝났다.

■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2004년 뮤지컬 <와이키키 브라더스>에서 주인공 성우 역으로 출연한 거 잘 봤다. ‘당신의 인생에 힘찬 박수를’ 이란 제목으로 당시 리뷰를 썼다. 직접 이정열 배우에게 말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10년 가까이 지나서야 말하게 됐다.
“감사해요. 오늘 뭔가 이야기가 나올 것 같네요.(웃음)

-<그날들>에 함께 나오는 배우 유준상, 지창욱 오종혁과 MBC <황금어장-라디오 스타>에 출연하면서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는데. 입담이 좋아 방송 제의도 받았을 것 같다.
“아주 잠깐 관심 받았어요. 언론이든 대중이든 장사가 안 되는 것엔 관심 없죠. 그래서 천만다행입니다. 매스컴에 노출된 배우의 생활이 쉽지 않잖아요. 본인의 의도와는 다르게 늘 웃어야 하고, 결국 ‘나’는 없고, 누군가가 만들어준 ‘나’만 있는 건데.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뛰어난 입담이 왜 이제야 화제에 오르는가
“제가 라디오 교통방송과 불교방송만 10년을 했어요. 입담이 단련 될 수밖에 없었겠죠.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이 안 보고 안 들은 건 없는 건 줄 알아요. 결국 (라디오)잘 듣고 (공연)잘 본 사람이 복인거죠.”

-그간 인터뷰 몇 건을 봤는데 간단한 것도 있고 긴 것도 있더라.
“인터뷰를 하는 사람의 태도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상대가 사무적으로 대하면 저 역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듯이. 마음의 문을 열 때가 있고 아닐 때도 있죠. 대개 배우들이 그럴거예요. 작품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하고 싶은 인터뷰가 있는가 하면 빨리 마무리 하고 싶은 인터뷰도 있구요. 그리고 이야기라는 것이 얼굴을 맞대고 직접 말 할 때와 지면에 글로 적히는 것과는 또 다른 거니까요. 이번 인터뷰 기대해 볼게요.(웃음)”



■ “배우로서 갈증을 해결하게 만든 <넥스트 투 노멀>은 결국 내 이야기”

이정열은 방송에 알려진 것처럼 위암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중이다. <아이다> 공연 중에 병원에 갔다가 다음날 위암 수술을 받았다. 아직 완쾌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럼에도 현재 뮤지컬 <넥스트 투 노멀>,<그날들>,<아이다> 등 세 작품에 캐스팅 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2013 <넥스트 투 노멀>엔 배우 박칼린 남경주 이정열 한지상 오소연 이상민 초연 패밀리에 태국희 서경수 박인배 김유영 최종선 뉴 캐스트까지 합세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정열이 남경주와 함께 맡은 ‘댄’ 역은 참을성이 많고 성실한 아버지이자 책임감이 강한 남편이다.

-배우에겐 모든 작품이 다 특별하겠지만 유독 <넥스트 투 노멀>은 더 특별할 것 같다.
“15세기 중세 이야기도 아니고 현실과 동떨어진 SF도 아니고 오늘을 사는 우리들 이야기입니다. 10년 전이든 후든 ‘오늘을 이야기하는 작품’에 목말라 하고 있었어요. 그만큼 필요했던 작품이죠. 그동안 배우로서 느꼈던 갈증이 말끔히 해소되는 기분이었어요.”

-배우로서 갈증이라면?
“배우는 캐릭터에 복종해야 돼요. 100% 봉사해야 한다고 하죠. 캐릭터가 힘이 센 사람이라면 센소리를 내야 하고, 약한 사람이면 약한 소리를 내야죠. 그런데 모든 공연 속 캐릭터가 온전히 이해되고 복종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점에서 <넥스트 투 노멀>이 특별했어요.”

-초연에 이어 재공연 하면서 개인적으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병원에 입원했다 나오니 초연 때 충분히 느끼지 못했던 장면들이 새롭게 다가오기도 합니다. 특히 다이애나가 락 스타와 함께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전기치료 받는 장면이 그래요. 수술 후 회복실에서 있으면서 다이애나의 기분을 느꼈어요. 반 마취 상태에서 여기저기서 환자들의 ‘살려 줘’ 소리가 들리는데. 막 웅웅거리는 것 처럼 들렸어요. 다이애나의 딱 그 기분입니다. 배는 아픈데 막 깔깔거리며 웃게 되더라구요.”

-2막에서 들을 수 있는 대사 (아들 게이브가 떠나 던) ‘그 날을 어찌 잊어’가 배우 개인적으로 더 와 닿을 것 같다
“<넥스트 투 노멀>은 배우로서 연습하면서 가졌던 고민, 이정열이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민 등 모두가 해소되는 작품입니다. 제 몸이 아픈 걸 떠나 제 아픈 자식의 이야기가 들어있으니까요. 사실, 제3남매 중 둘째가 뇌병변 장애를 지니고 있어요. 첫째 아이가 육아 매뉴얼처럼 건강하게 자라줘 별 걱정 없이 연년생으로 아이를 가졌어요. 그러다 와이프가 임신 6개월 때 집안일을 무리하게 하다 양수가 먼저 터져버린거에요. 새벽에 앰뷸런스를 타고 가서 겨우 분만유도 수술을 해서 1.2kg으로 태어났어요. 아이를 거의 강제로 끄집어내다시피 한 거죠. 그 때 뇌신경계에 손상이 왔나봐요.

덩치는 크지만 행동은 돌쟁이 아이와 다를 바 없죠. 항상 웃는데 제 가슴은 미어터져요. 현재 열여섯인데 근육병 환자처럼 퇴화되면서 건강하게 오래 살지는 못한다고 하더라구요. 내 기억 속의 아픔이자 내가 짊어져야 할 짐이죠. 그런 가족이 있으면 생활이 힘들거라고 짐작하시겠지만 생활은 생활입니다. 약간 불편한 것 뿐이죠.”

-아픈 아이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자세한 것 까지는 몰랐다. 그래서 더 작품과 통하는 지점이 많았을 것 같다.
“아이가 세 돌 될 때까진 작은 희망을 가지며 매일 병원을 다녔어요. 그렇게 힘들게 살면서 차라리 먼저 갔으면... 하는 생각도 안 했다면 거짓말이겠죠. 주위 시선, 장애 아이에 대한 배려 때문에 이민도 심각하게 고려한 적 있어요. ‘댄’ 처럼 평범한 생활, 평범한 가족이라 믿었는데 상처가 덤덤해 진 건 아니죠. <넥스트 투 노멀>의 이야기가 결국 제 이야기입니다.”

-병원 퇴원하자마자 이 작품 무대에 서게 된 이유가 이제야 납득이 간다.
“제가 <넥스트 투 노멀>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는 누구보다 집사람이 잘 알죠. 그래서 아무 말 없이 믿고 지켜봐 주는 사람입니다. 초연 때 가장 큰 고민이 ‘집 사람한테 이 작품을 어떻게 보여줄까’ 였어요. 연기하지 않고 기술 부리지 않고 그렇게 무대에 올랐어요. 아내도 작품을 보고 ‘치유’됐다고 하더라구요. 작품 연습하는 동안 집에서 제가 울고 했던 거 다 이해한다고 하면서요.”

-김광석이 부른 유명 곡들로 만든 뮤지컬 <그날들> 무대는 언제부터 서는가
“4월 말에 <아이다>가 끝납니다. 그 이후에 <그날들> 무대에 올라요. 지금은 <아이다>공연장인 디큐브아트센터와 <넥스트 투 노멀>공연장인 두산아트센터를 번갈아 출근하고 있어요. <그날들> 작품도 참 좋죠. 지창욱은 볼 때마다 내 마음이 설레요. 왜 그럴까요?(갑자기 장난스런 여성스런 말투와 포즈를 취하신다) 오종혁은 역할과 잘 어울리고, 최재웅은 원체 잘 하는 배우니 말 할 것도 없고. 배우들이 다 예뻐요.”



■ 알고 보면 더 흥미로운 <넥스트 투 노멀>

이정열은 <넥스트 투 노멀>은 ‘관객이 웃어줘야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는 하이코미디’라고 했다. 이어 관객들에 대한 당부도 빼놓지 않았다. “제발 갓 군대 온 이등병처럼 각을 잡고 근엄하게 공연을 보지 말았음 해요. 공연 중에 떠들거나 핸드폰을 열어 전화하는 것은 안 되겠지만 편한 자세로 공연을 봤으면 좋겠어요. 웃긴 장면에서 같이 웃고 공감 가는 장면에서 함께 느낀다면 더 흥미로운 작품입니다.”

-지난 간담회에서 <넥스트 투 노멀>은 ‘어둠’으로 시작해 ‘여명’을 지나 ‘빛’으로 끝난다”고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작품을 만든 사람이 조명까지 산술적으로 다 계산해서 만든 작품이 분명해요. 수백, 수천 개의 조명이 다 켜지면 객석 2층 맨 뒤까지 다 보여요. 결국 관객도 배우로서 참여하고 있는 거죠.”

-<넥스트 투 노멀>을 만든 작가 브라이언 요키와 작곡가 톰 킷이 대단 한 것 같다.
“브로드웨이에서 조나단 라슨의 <렌트>(1996년) 이후 파격적인 뮤지컬이 없었죠. 에이즈, 동성애, 마약 같은 소재만으론 새로울 게 없으니까요. ‘이제 끝났구나’라고 사람들이 평 하고 있을 때 정신나간 천재들은 이 작품을 만들고 있었던거죠. <렌트>가 2층 무대를 사용해서 유명해진 뒤 한참 2층 무대가 유행했는데, 그들의 후배는 한층을 더 올려 3층 무대를 만든거죠. 아래층과 위층에서 다이애나(엄마)와 나탈리(딸)가 똑같이 행동하고 댄(아빠)과 헨리(딸의 남자친구)도 마찬가지구요. 그리고 톰킷에겐 아시아의 불교 마인드가 있는 것 같아요. 자기네들 문화 안에서 답을 찾지 못한 음악적인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동양의 ‘윤회’사상을 끌고 온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작품 안에서 헨리와 댄의 관계를 더 자세히 말한다면
“‘헨리’는 젊은 날의 ‘댄’인 거죠. ‘헨리’에서 ‘댄’으로 바뀌는 장면을 보면 의상도 비슷해요. 우리 엄마 아빠가 했던 그대로 ‘댄’과 ‘다이애나’가 살아가고, 자식들도 또 똑같이 살아가고, 그러면서 세월은 흘러가는 거죠. 학교를 졸업 한 뒤 오랜만에 학교에 가면 그런 생각 들지 않아요? ‘자리는 그대로인데 주인이 바뀐 기분. 그런 느낌입니다. 초반엔 다이애나가 밀었던 식탁을 후반엔 나탈리와 헨리가 밀어요. 그들 부모는 바라보고 지켜보고 있는거죠.

젊은 ‘댄’ 역을 할 때 저만의 표시가 있는데 혹시 느끼셨나요?(그리고선 기자의 나이를 물었다. 약간의 나이차는 났지만 충분히 90년대 유행을 이해할 수 있는 나이라고 가늠한 뒤 이야기를 풀어냈다.)제가 폴로티를 입고 나오는데 티셔츠 깃을 세우고 나와요. 한참 카라(깃) 세우는 게 유행했잖아요. 티셔츠도 앞은 바지 안에 넣고 뒤는 빼고 나오죠. 소소한 부분인데 작은 재미를 주고 싶었어요.(웃음)”

-초연 때 미국식 유머가 들어있어 작품이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우리나라 식 유머와 미국식 유머가 다르다고 하는데 크게 다른 건 없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다이애나가 ‘난 아빠랑 섹스나 하러 가야겠다’란 대사를 하는데, 조금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도 표현은 약간 다를지 몰라도 그런 식의 유머를 써요. ‘엄마와 아빠가 꼭 안고 있는 것에 대해 아이가 질문하면, 아빠가 그러죠. 엄마가 배가 아프다고 해서 안아주고 있는거야”라고 말했듯 말이죠.

나탈 리가 다니엘 키이즈의 소설 '알제논을 위한 꽃‘(IQ 70 인 정신박약아 찰리가 실험용 쥐에게 실험했던 방식 그대로 뇌수술을 받으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을 읽고 감상을 그림으로 그려야 하는 말도 안 돼는 숙제를 내 줬다고 투덜대는 대사도 작품 전체를 놓고 볼 때 얼마나 유머스러운데요. 우리나라 식으로 이야기하면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3분짜리 춤으로 만들어 오라는 것과 다를 바 없죠. 전 이 장면에서 같은 원작을 모티브로 한 뮤지컬 <미스터마우스>이야기도 나올 줄 알았는데 그렇진 않았어요.

평범해 보이는 ‘댄’의 집안을 자세히 봐 보세요. 새벽 3시가 넘은 시간인데 환하게 불이 켜져있는 집안이에요. 입으로는 모든 게 잘 돌아가는 평화로운 집이라고 하지만 그렇게 에너지 음료를 먹고, 그 이른 새벽 시간에 움직이죠. 이런 가족이 평범한 집안일까요. 이 집안은 문제가 있음을 이렇게 유머러스하게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죠“



■ “배우는 아찔한 절벽 뒤에서 죽어라 러닝머신을 뛰는 존재”

'그대 고운 내 사랑'을 부른 유명 가수 이정열은 1992년 포크그룹 '노래마을' 출신이다. 1994년 민족가극 <금강>의 배우로 무대에 서며 배우의 길에 접어든 뒤 학전 김민기 연출의 <개똥이>,<와이키키 브라더스>,<하드락 까페>,<모차르트!>,<백야>,<맘마미아>, <캐치 미 이프 유 캔> 등으로 계속 이름을 알렸다. <금강>에 함께 출연 했던 딸 이지민 역시 뮤지컬 배우로 활동 중이다.

한편, 인터뷰 내내 이름이 거론된 배우가 한 명 있다. 바로 현재 뮤지컬 <아르센 루팡>에 출연중인 양준모 배우다. 이정열이 매우 아끼는 후배라는 게 단번에 느껴졌다. 선배 이정열은 후배에게 가극 <금강>과 뮤지컬 <서편제>와 인연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밤 늦은 시간까지 이어진 인터뷰를 마무리 할 때 쯤 이 배우는 자연스럽게 <서편제>에 얽힌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대학 졸업 후 한참 진로를 고민할 때 본 영화가 <서편제>입니다. 영화를 보면서 계속 울었어요. ‘길’에 대한 깨달음이 컸어요. 제가 갈 길에 대해 마음을 정한 뒤 당시 여자친구(현재 부인)에게 선언했어요. ‘무대 위에 서는 게 내 꿈이다’고. 그리고 ‘소리 길’이란 곡을 썼죠. 예명은 ‘음로’라고 정했는데 어감이 이상해서 ‘예로’로 바꿨어요. ‘예로’는 ‘예술의 길’이란 의미예요. 요새도 싸인 할 때면 '예로‘로 적어요. 제 팬클럽 이름도 '예로’구요.”

-<서편제>의 깨달음 이후 ‘소리 길’과 ‘예술의 길’을 찾았는가
“소리 만드는 것에 관심에 많아 그 쪽으로 공부를 많이 했어요. 성대에도 성대근이 있어 단련시키는 게 운동이랑 비슷해요. 그걸 하려고 6년간 공부했어요. 3음 내지 4음의 배음을 잘 내면 일명 ‘땜핑’이 좋다고 하죠. 그런 배우들이 노래를 하면 보정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음향 주파수가 직사각형으로 일정해요. 밸런스가 맞도록 소리 길을 만든 거죠.

그런데 관객들은 록을 공부 하면서 얻은 허스키 소리를 다르게 이해하시기도 하더라구요. 자기가 원하는 소리로만 듣길 원하니까요. 캐릭터로 받아들이는 게 아닌 가수로 받아들이는 거죠. 하지만 감정이 북받치는 장면인데 배우가 노래를 부드럽게 부르길 바라는 게 가짜 아닐까요. 그리고 뮤지컬 배우는 가수가 아니기 때문에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닌, 음을 실어 이야기를 전달 한 건데 ‘노래 잘한다’고 하면 섭섭하더죠.”

-그럼 뮤지컬 <서편제>도 꼭 하고 싶었겠다. 왜 인연이 닿질 않았나
“저도 뮤지컬 <서편제> 꼭 하고 싶었죠. 그런데 <넥스트 투 노멀> 초연과 겹쳐서 못했어요. 그래서 준모한테 연락해서 하라고 했죠. 저도 언젠간 <서편제>와 인연이 닿을 수 있겠죠.”

-이젠 선배로 불리는 경우가 많을 것 같다. 오랜 시간 무대에 서면서 ‘배우’란 어떤 존재란 생각이 들었는가.
“배우가 자기를 드러내는 직업이긴 하지만, 무대 위에 캐릭터가 서야지 사람이 서버리면 뭘 해도 똑같을 수 밖에 없죠. 보시는 팬들은 좋아할지 몰라도 공동으로 창작하는 배우나 스태프 입장에선 섭섭하고 아쉬울 수 밖에 없어요. 팬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단장하며 퇴근 준비하는 후배들을 가끔 보게 되는데, 그 아이들이 나쁘진 않지만 좋아 보이진 않았어요. 작품에 대한 존중보다는 본인에 대한 존중이 더 커지는 게 문제죠.

공연은 판타지도 중요하다고 보는데, 불과 10분 전에 무대 위에서 만난 배우를 무대 밖에서 다시 만나면 작품이 호흡 할 공간이 없어지지 않을까요.“

-제작에도 관심이 있는가
“‘연출’은 내가 할 수 없는 분야라 생각 되는데, 도움을 주는 위치에 있는 제작은 관심이 없을 수가 없죠. 새로운 창작물도 만들어 보고 싶어요. 물론 좋은 배우가 되는 게 가장 큰 꿈입니다.”

-‘좋은 배우’에 대한 본인의 정의를 말한다면
“우선 자기 주제를 아는 거죠. 대본과 무대, 음악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가슴으로 아는 배우가 좋은 배우죠. 넘치지 않고 그렇다고 부족하지 않게 해 내는 배우 있잖아요. 배우가 넘치게 연기하면 얼마나 토 나와요? 반면에 부족하게 연기하면 진짜 바보 같잖아요. 오버하지 않으면서 그 선을 찾아가는 게 쉽지 않아요. 그런데 또 주위에 보면 정말 기가 막히게 찾아가는 배우가 있어요. 누군지는 말 안할래요.”

-노래와 연기 빼고 뭘 좋아하는가
“‘다이빙’을 좋아해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아 정신수양에 좋죠. 천천히 숨 쉬고 깊고 멀리 볼 수 있는 운동이죠. 절 돌아볼 수 있는. 공중부양 한다고 하죠. 초보 땐 힘들지 몰라도 익숙해지면 그게 가능합니다. 잠수부도 만들어 친목도 도모 할 겁니다. ”



인터뷰 말미 이정열은 배우란 “매 순간 집중해서 목숨 걸고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라고 말했다.

“나와 함께 욕 먹고 혼나고 술 먹으면서 작업했던 배우들이 부디 오래 오래 좋은 배우로 남아주길 바래요. 저도 선배들한테 그렇게 배웠고, 그게 제가 해야 할 일이죠. 세상에 배우들이 얼마나 많아요? 지망생까지 합치면 셀 수 없죠. 결국 배우란 절벽에 올라 뒤돌아 선 뒤, 러닝머신 위를 죽어라 뛰어야 하는 존재입니다. 단, 멈추면 떨어지는 거죠. 결국 최선을 다 할 수밖에 없어요. ”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MBC, 정다훈 기자, 뮤지컬 헤븐]

저작권자 ⓒ '대중문화컨텐츠 전문가그룹' 엔터미디어(www.entermedia.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