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디 앨런 감독 영화의 국내 흥행이 의미하는 것

[엔터미디어=오동진의 이 영화는] 국내에서 우디 앨런의 인기가 꾸준히 이어질 수 있을까. 극장가의 관심은 이번 영화 역시 전작인 <미드나잇 인 파리>처럼 25만 가까운 관객을 모을 수 있느냐의 여부다. 우디 앨런의 영화가 25만명을 모으는 것은 흔히들 <아이언 맨3>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500만명을 모으는 것과 같은 맥락으로 비교된다. 현 상황으로는 그에는 조금 못 미칠 것으로 보이지만 중장년층 관객들이 꾸준히 들어오고 있어 낙관적인 분위기도 형성되고 있다.

무엇보다 <로마 위드 러브>의 흥행에 관심이 쏠리는 것은 이런 류의 영화 곧, 중장년층 심지어 우디 앨런과 동세대 급의 노년층까지 겨냥하고 있는 작품이 우리 영화시장에도 지속적으로 공급되고 소비될 수 있는 가를 판단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중장년층 관객은 현재 한국의 영화문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시작했으며 이는 곧 우리나라 영화문화의 다양성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영화문화의 다양성은 20대에서 3,40대 그리고 5,60대의 다양한 연령층의 관객들이 시장 내에 골고루 포진하고 있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대개는 20대 젊은 층이 전체 관객 수를 주도하는 경향을 보인다.

우디 앨런의 영화는 게다가 대부분이 상당히 지적인 작품이라는 점, 또 철저하게 저예산 영화로서 비주얼보다는 스토리에 치중하는 전통과 정통의 영화에 가깝다는 점, 제작비의 대부분이 공적 자본으로 채워져 있다는 점도 주목하게 하는 이유다. 우디 앨런은 특히 최근 유럽 국가 혹은 도시로부터 ‘공공기금=관광자본’을 지원받아 특정 공간을 소재로 하는 영화를 찍고 있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는 바르셀로나를, <환상의 그대>는 런던, <미드나잇 인 파리>는 프랑스 파리를, 그리고 이번 작품은 로마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런 식의 영화 제작을 벤치 마킹할 수 있지 않느냐 것이 요즘 일각에서 일고 있는 분위기다.

실제로 국내에서도 그 같은 시도가 진행돼 왔다. 배창호 감독의 <여행>, 전계수 감독의 <뭘 또 그렇게까지>, 김성호 감독의 <그녀에게>, 진광교 감독의 <여수> 등등 일련의 독립영화들이 그 같은 점에 착안해 정부의 관광기금을 지원받아 제작된 작품이었지만 배급 과정이 여의치 않아 일반관객들에게는 극소수에게만 소개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디 앨런의 최근 작품이 흥미로운 것은 자칫 이런 류의 영화가 빠지기 쉬운 ‘공간의 함정’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우디 앨런의 영화에서는 절대로 공간이 앞으로 나가는 적이 없다. 공간은 철저하게 뒤로 숨는다. 우디 앨런에게 있어 공간이란 영화제작의 사이드 변수일 뿐이다. 영화 미학의 측면에서도 중요한 조력자일 뿐이다. 특정 국가의 관광기금을 지원받는다 해서 우디 앨런이 홍보영화를 찍지는 않는다. 그러면 우디 앨런이 아니다. 우디 앨런은 우디 앨런일 뿐이다. 위대한 작가로서의 우디 앨런은 그 같은 우를 범하지 않는, 노회함을 엿보인다. 관광자금으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오히려 흥행 수치의 압박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요소일 뿐이다.

<로마 위드 러브>는 세편의 전작에 이어 여전히 우디 앨런 식의 수다스러움과 엉뚱함, 우스꽝스러움, 비정상의 일탈, 한바탕의 소동으로 꽉 차 있다. 그의 영화를 보면 세상은 늘 요지경이라는 생각이 들며 인생은 예상처럼, 혹은 계획대로, 아니면 자본의 시스템에 맞춰 딱딱 이루어지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점을 새삼 깨닫게 한다.

작고 보잘 것 없는 외모에 전형적인 지식인 형 불만분자처럼 보이는 이 ‘늙다리’ 남자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잔소리를 해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그가 사사하려는 것은 세상 만물은 늘 변화하는 것이며 그 변화에 맞서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말아야 하는데 때론 그 역도 성립한다는 것이다. 곧 변화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느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는 식이다. 다들 시류에 따라 산다 한들 다 그래야 하는 법은 없는 것이며 어쩌면 변하지 않으려는 고집을 지키기가 더욱 어려운 법이다.

<로마 위드 러브>는 그래서, 70대 노인의 후반 노인답게 세상에 대한 순응의 논리가 많이 개입돼 있다. 우디 앨런답지 않게 첫 등장에서 기내 장면으로 시작하는 것부터가 그렇다. 영화 속에서 그는 장차 사위가 될 이탈리아 남자에 대해 이런 식으로 얘기한다. “이왕이면 좀 잘 사는 집안의 아들이면 좋을텐데 말야. (묘하게 쳐다보는 아내인 주디 데이비를 향해) 아 물론 나도 한때는 좌파였다고!” 우디 앨런은 한때 좌파였을 뿐만 아니라 고소 공포증에다가 밀실 공포증 등등 때문에 비행기라면 질색을 하던 사람이었다. 이번 영화의 첫 장면은 우디 앨런이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제시 아이젠버그와 엘렌 페이지, 그레타 거윅이 벌이는 삼각관계 연애담에서도 우디 앨런은 자신의 영화 속 분신인 알렉 볼드윈을 통해 끊임없이 궁시렁대기 시작한다. 제시 아이젠버그는 자신의 연인인 그레타 거윅 몰래 그녀의 친구인 엘렌 페이지와 정분이 난다. 그는 여자의 자유분방한 가치관에 흠뻑 빠져 든다. 제시 아이젠버그의 뒤를 좇아 다니는 중년남자 알렉 볼드윈은 그를 제어하려 애쓴다.

알렉 볼드윈의 존재는 실재일 수도 있지만 단순히 제시 아이젠버그의 머릿 속 환상이자 자신의 이성적 목소리의 환영일 수도 있다. 어쨌든 이때 알렉 볼드윈이 하는 얘기는 늘 이런 식이다. “옛날에 다 내가 해 본 일이야. 그러니 하지마. 다 거짓이야. 다 쓸데없는 일이라구.” 예전의 우디 앨런은 제시 아이젠버그처럼 욕망의 흔들림에 주목한 작가이며 실제로도 스스로 욕망할 수 있는 존재임을 증명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의붓 입양 딸인 순이 프레빈과 결혼을 해 진실로 세상을 떠들석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네 편에 이르는 이번 ‘시리즈 여행 영화’를 통해 우디 앨런도 서서히 다른 각도에서 인생을 되돌아 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여전히 도발적이고 그래서 여전히 어떤 때는 파렴치 해 보이기까지 하지만 그 모두가 ‘한 때’의 일임에 불과함을 얘기해 주고 싶어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모든 것이 ‘한 때’의 일이 되면 서로 이해하기가 쉽다. 용서하기가 쉬워진다. 필요 이상으로 서로에게 까칠해지지 않는다.

<로마 위드 러브>는 여전히 귀여운 ‘늙은 감독’이 펼치는 이상야릇한 섹스담이자 소동극이다. 그의 영화가 극장가에서 꾸준히 버텨 나가는 것은 중장년층 세대에게 좋은 일이다. 무엇보다 젊은 관객들에게 더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그의 영화가 국내 극장가에서 일정한 몫을 해내기를 기대하는 시선이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영화평론가 오동진 ohdji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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