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몽타주>, 그저 그런 유괴영화 아닌 이유 셋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몽타주>는 아동유괴를 소재로 한 스릴러이다. 엄정화와 김상경이 각각 피해자의 엄마와 형사로 분해 호연을 펼치는 가운데,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노련미 넘치는 정근섭 감독의 연출로 인해 팽팽한 긴장과 독특한 반전이 살아있는 매력적인 스릴러가 탄생했다.

15년 전 서진이 유괴사건을 담당했던 춘천경찰서 오형사(김상경)는 서진 엄마(엄정화)를 찾아와 곧 공소시효가 만료됨을 알린다. 여전히 15년 전 사건에 붙들려있는 서진 엄마의 원망 섞인 목소리를 뒤로하고 나오던 오형사는 마지막으로 사건현장에 들렀다가 범인이 그 자리에 다녀갔음을 알아챈다. CCTV와 차량블랙박스를 뒤져 차량을 추적하던 오형사는 장터 국밥집에서 놈과 극적으로 마주치지만 또다시 눈앞에서 놓치고 만다. 서진 엄마는 범인이 국밥집에 놓고 간 우산을 단서로 탐문에 나서지만, 공소시효는 만료되고 사건은 끝이 난다.

회의감에 빠져 형사 일도 그만두고 집에 처박힌 오형사에게 얼마 후 서울의 형사가 찾아온다. 서진이 사건과 유사한 아동유괴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할아버지가 잠깐 한 눈을 판 사이 손녀가 없어지고, 범인은 서진이사건 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용산역에서 돈 가방을 전달할 것을 요구한다. 서울의 형사들이 쫙 깔린 용산역에서 돈 가방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오형사는 선로를 향해 달린다. 과연 오형사는 이번에는 범인을 잡을 수 있을 것인가.

비슷비슷한 아동유괴 범죄물이 많지만, <몽타주>는 세 가지 측면에서 매우 볼만한 영화이다.

첫째, 연기, 연출, 편집 등 영화의 만듦새가 뛰어나다. <오로라 공주>에서 피해자의 엄마 역할을 했던 엄정화는 <몽타주>에서도 피해자의 엄마 역할을 맡아 깊이 있는 감정 연기로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인다. 클로즈 업 화면으로 잡은 엄정화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지고 경련이 일 듯 한 격한 감정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는 듯 한 집중된 표정을 보여준다.



또한 <살인의 추억>에서 범인을 놓친 자괴감으로 망가져가던 형사를 연기하던 김상경은 <몽타주>를 통해 통한의 감정을 풀어놓는다. 자신이 놓친 범죄자가 또 다른 희생자를 낳고 있지만, 이를 막지 못하는 무력감과 분노가 화면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조연을 맡은 송영창, 조희봉, 유승목의 연기도 매우 생생하고 잘 어울린다.

비오는 장터 추격 장면이나 군인들로 붐비는 용산역 추격 장면은 치밀한 사전 계획과 현장 통제가 있어야만 촬영이 가능한 장면들로, 감독의 연출력을 가늠케 한다. 영화의 스릴러적인 쾌감은 독특한 반전에 달려있는데, 탄탄한 플롯과 이를 매끈하게 전달한 편집도 상당히 세련되다. 초반의 과거 장면 등을 짧게 몽타주 방식으로 처리한 것이나, 오형사의 추적과 서진 엄마의 탐문이 갖는 시간적 격차를 편집의 기술로 메워나가는 방식 역시 매우 노련하다.

둘째, 피해자, 가해자, 형사 등 등장인물의 입장과 심정을 깊이 있게 파고든다. <몽타주>는 아동유괴라는 극악한 범죄를 다루고 있지만, 가해자를 이해할 수 없는 사이코패스로 치부해버리지 않는다. 또한 피해자도 단순히 수동적이고 도움을 요청하는 존재로 머물지 않는다. 첫 시퀀스에서 보여주듯, 서진 엄마는 15년간 빼곡히 자료를 모아놓았을 뿐 아니라, 형사의 부주의한 행동으로 고통스럽게 사건이 환기되는 순간에도 자제력을 잃지 않는 강한 면모를 보여준다. 서진 엄마는 독자적으로 탐문을 벌일 뿐 아니라, 범인을 잡아 처벌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준다.



형사의 심정 역시 평면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15년 전 자신이 놓친 범인으로 인해 새로운 범죄가 벌어지는 상황에 대한 좌절과 이를 만회하고자 하는 의지가 잘 묘사되어 있다. 흔히 스릴러가 빠지기 쉬운 함정 중의 하나는 반전 등 구조적인 기교에 집중한 나머지 인물들을 피상적으로 그리는 것이다. 즉 가해자는 인간의 마음이 없는 사이코패스로, 피해자는 무고하고 가련한 백지장 같은 존재로, 형사는 모든 플롯을 짊어진 채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존재로 그려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몽타주>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와 형사는 모두 선악의 자장 내에서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는 인간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는 전혀 동떨어진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며, 관객들은 이들에게 공감하거나 거리를 두고 생각 할 수 있다.

셋째, 공소시효, 용서, 형벌 등에 대한 성찰할 거리를 던진다. 영화는 첫 시퀀스에서 “시간의 경과로 인하여 증거보존이 어렵고 기억의 왜곡으로 인해 증거능력이 떨어지며, 오랜 기간 동안 범인도 고통을 받았기 때문에 참회와 처벌의 시간이 주어진 것으로 본다”는 공소시효의 근거를 들려준다.

그러나 서진 엄마는 “자료와 기억은 여기 다 보존되어 있고, 범인이 참회했다고 누가 말 할 수 있느냐”고 반문한다.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세월이 아무리 지나도 사건을 잊을 수도 범인을 용서할 수도 없기 때문에, 공소시효는 더 이상 수사를 하지 않겠다는 구실에 불과하다는 항변이다.



영화는 15년 전 아이의 목숨보다 위조지폐를 챙기는 것에 더 급급했던 경찰조직의 모습을 병치시키며 공소시효 역시 피해자의 입장을 우선하지 않는 관료주의적이고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 아니냐고 꼬집는다. 또한 영화는 공소시효가 끝나자 같은 방식의 사건이 일어나는 플롯을 통해 공소시효로 인해 처벌되지 않은 범죄자가 더욱 완벽한 범죄를 저지를 수 있음을 경고한다.

또한 공소시효로 인해 진범을 알고도 처벌할 수 없게 된 피해자들은 이를 응징하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할 수 있을지 반문한다. “범인이 참회하는 줄 알았지만, 자축한 것”이라는 오형사의 말은 참회와 용서에 대한 섣부른 판단을 유보케 하며, 범인이 “나도 죽일 마음은 없었다”고 변명하면서 ‘자식 목숨 앞의 부모 심정’을 운운하는 대목에선 기묘한 역지사지의 아이러니를 느끼게 한다.

스포일러 때문에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영화 속의 응징이 매우 성공적이라는 것이다. 범인에게 역지사지의 지옥을 경험케 한 것은 물론이고, 범죄를 저지르면서까지 지키고 싶었던 자식과의 관계를 완전히 파탄시켰기 때문이다.

<몽타주>는 구조적인 묘미가 살아있는 시나리오에 최고의 연기력이 만나 완성된 범죄물로, 스릴러적인 쾌감은 물론이고 도덕의 아이러니와 법의 한계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흥미로운 영화이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몽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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