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늙은 뱃사람의 노래>, 괴상하지만 자꾸 듣고 싶은 음악극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미국 뉴욕에 세계 최고의 메트 오페라(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있다면 영국엔 타이거 음악극(타이거 릴리스 밴드 음악극)이 있다.”

지난 12일 LG아트센터에서 막을 내린 타이거 릴리스 밴드의 멀티미디어 음악극 <늙은 뱃사람의 노래>를 보며 든 생각이다. 음악 또는 사운드가 극 전개와 이해 상, 필수불가결한 창작 요소로 쓰인 모든 극을 ‘음악극’이라고 할 때, 이번 작품은 음악극의 신세계를 창조했다고 할 수 있겠다.

<늙은 뱃사람의 노래>는 영국의 시인 사무엘 테일러 콜리지의 초현실적인 시에 타이거 릴리스가 음악을 붙이고, 미국의 사진작가 마크 홀투센이 특유의 몽환적인 영상을 입힌 흥미로운 프로젝트이다.

초현실적인 시 ‘늙은 뱃사람의 노래’는 어느 늙은 뱃사람이 남태평양 빙산지대에서 삭막하고 위태로운 항해를 하다가 뱃사람들에게 신성시 여겨지는 새인 알바트로스를 활로 쏘아 죽이면서 온갖 기이하고 섬뜩 일들을 겪고 난 후 결국에는 고국으로 돌아와 자신이 겪은 일과 깨달음을 만나는 사람들에게 전달한다는 내용.

서곡을 포함 총 19곡의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7대양을 지나 폭풍우를 만나고 어둠의 땅을 거쳐 알바트로스와 죽음의 소녀, 바닷가 궁전, 바다의 왕 넵튠, 망자의 배, 희망봉에 도달한 뒤 마지막으로 생지옥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초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음악으로 들을 수 있다.

생지옥을 경험한 ‘늙은 뱃사람’은 밴드에서 보컬을 담당하고 있는 마틴 자크였다. 관객은 배에 탄 선원들이자 위선자, 오만이라는 죄를 짊어진 악인, 썩어가는 살 냄새를 맡으며 부패의 현장을 지켜보고 있는 망자였다.

이 작품이 강렬하게 관객을 끌어들인 점은 음악이 피와 살을 입고 살아 숨 쉬게 만든 영상에 있었다. 눈과 귀가 완전 열리는 새로운 경험이었다. 마크 홀투센은 막 안에 여러 반투명 막을 설치 해 자유자재로 공간을 이동하고 있다는 환상을 불러일으켰다. 눈이 내리고 비가 오고,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이기도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바닷가 위에 둥둥 떠 있던 뱃사람들이 순식간에 바닷 속으로 가라앉기도 했으며, 상상속의 인어공주도 만날 수 있었다. 단순히 3D 영상을 입힌 무대와는 다른 인상을 주며 초 현실 공간을 오고갔다. ‘보컬의 보이스가 여자도 남자도 아닌 것처럼,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건 실체인가? 꿈인가’란 질문도 떠올려졌다.

뱃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관객들은 한 없이 고독해지기도 했지만 눈과 귀는 물론 육체가 새로 태어난 기분도 들었다. 이만하면 성공이다.

타이거 릴리스 밴드의 창시자인 마틴 자크(Martyn Jacques)는 런던 소호의 사창가에서 젊은 시절을 보내며 사창가의 여자들, 포주들, 마약에 중독된 사람들, 사회의 경쟁에 낙오된 사람들 등 현대 사회의 어두운 면들과 그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노래한다. 200년 전의 원작에서 가져왔지만 현대인의 밑바닥 삶을 노래한다는 점에서 이번 작품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틴 자크의 팔세토(가성) 창법은 타이거 릴리스 밴드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악당 카스트라토’(여성의 음역을 가진 악동 남성 가수)로 불리기도 한다. 악동에 대한 찬사는 기립 박수로 이어졌다.

밴드 이름 '타이거 릴리스(Tiger Lilies)'는 호피무늬 옷을 즐겨 입던 매춘부의 별명에서 따왔다. 강한 ‘호랑이’와 죽음을 의미하는 ‘백합’의 만남이다. 이 이름 그대로 이들의 음악은 어둠에 대해 강렬하게 노래하고 있다.

한편, 마틴 자크에게 가장 커다란 음악적 영감을 준 작품은 브레이트의 희곡에 쿠르트 바일이 곡을 붙인 ‘서푼짜리 오페라’이다. 그래서 그랬을까. 그는 2001년 ‘2penny opera'(서푼보다 1페니 싼 두푼짜리 오페라)를 내놓았다. 다음 번엔 ’타이거 릴리스‘ 밴드의 ’두푼짜리 오페라‘에 도전하고 싶어진다.



공연전문 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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