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소리·연기·진정성 3박자의 조합 보여준 소프라노 박미자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는 국내에서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오페라이지만 가장 만족하기 쉽지 않은 오페라 중 하나이다. 고난이도의 콜로라투라에서 가냘픈 소프라노 솔로까지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성악적 기교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주인공 역을 맡은 소프라노는 고급 창부에서 진정한 사랑을 깨달은 후 폐병으로 죽어가기까지 드라마틱한 연기력을 요한다.

이런 점에서 지난 10일과 11일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른 비올렛타 역 소프라노 박미자는 최고의 공연을 선보였다. 비올렛타의 비참한 죽음을 그 누가 이렇게 안타까워 할 수 있을까. 소리 연기 진정성의 3박자에 더해 외모까지 영락없는 가련한 길 위에 선 비올렛타였다. 우리 모두가 버린 여인이 아닌 ‘모두가 사랑한 여인’이란 점에선 더욱 의미 깊었다.

올해로 제4회째를 맞는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이 지난 10일 개막했다. 첫 스타트를 끊은 작품은 조선오페라단(단장 최승우)의 <라 트라비아타>였다.

‘가련한 여인 비올렛타의 사랑의 행로를 관심있게 지켜 봐 달라’고 말한 오페라 칼럼니스트 손수연의 사회로 막을 연 <라 트라비아타>는 클래식한 연출을 기본으로 조명의 변화를 더해 색다른 무대를 연출했다. 조명디자인은 공홍표가 담당했다.

여러 차례 <라 트라비아타> 연출을 맡은 바 있는 방정욱 연출은 이번 작품에서 초반 전주곡과 후반 피날레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비올렛타의 ‘사랑의 동기’ 음악이 조용하게 흐르면 알프레도와 제르몽이 비올렛타의 무덤가에서 흐느끼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곧 이어질 본 작품에서 만날 수 있는 부자의 경솔함과 슬픈 사랑의 결말을 효과적으로 암시하고 있는 부분이다.

또한 마지막 장면에서는 영원 불멸의 ‘비올레타’를 상기시킬 수 있게, 객석으로 강렬하게 조명을 비췄다. 비올렛타가 알프레도에게 던져준 빛이자 비올렛타를 버린 우리 모두에게 던져준 고통과 기쁨의 빛이었다.



알프레도가 장막 뒤에서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 역시 보다 적극적인 감정선을 드러낸 점이 눈에 띈다. 대개 오페라에선 알프레드가 멀리 있다는 설정하에 이 장면을 보여줬다면, 이번 작품에선 문 뒤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구애를 펼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했다. 그림자를 활용한 이 장면은 오페라가 보다 대중과 가깝게 다가서려는 의도로 읽혀졌다.

베르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1800년대를 배경으로 프랑스 파리 사교계의 꽃 비올레타와 그를 흠모해온 청년 알프레도의 비극적인 사랑을 그린 작품이다. 프랑스 작가 알렉상드르 뒤마 2세의 자전적 소설 ‘동백꽃의 여인(La Dame aux Camelias)’을 토대로 했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주역으론 소프라노 박미자 오은경 최인영(비올렛타), 테너 나승서 유게니 나고비친(알프레도), 바리톤 미하일 디아코브, 노대산, 송형빈(제르몽)이 나섰다.

알프레도 역의 테너 나승서는 부드러우면서도 청량감 있는 보이스는 물론 혈기 왕성한 젊은 청년의 모습은 물론 로맨스 남의 면모까지 유감없이 발휘하며 공감을 이끌어냈다. 제르몽 역 바리톤 송형빈, 듀폴 남작의 바리톤 한진만, 메신저 역의 바리톤 황혁의 존재감도 돋보였다. 가스통 역 테너 정성철은 훤칠한 외모로 시선을 끌었다.

알베르또 또니니가 서울필하모닉(단장 안당)을 지휘하고, 메트합창단(단장 이우진), 롤라플라멩코무용단(안무가 롤라 장)이 함께했다. 작품의 제목을 바로 떠올리게 만드는 동백꽃이 그려진 깔끔한 프로그램 북도 인상적이었다.

한편, 대한민국오페라 페스티벌은 서울오페라앙상블의 <운명의 힘>(5월17일~19일), 노블아트오페라단의 <리골레토>(5월24일~26일)', 고려오페라단의 창작오페라<손양원>(5월31일~6월2일), 국립오페라단의 <처용>(6.8~9일)으로 이어진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조선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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