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나문방구>, 숱한 단점 덮은 최강희의 매력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미나문방구>는 초등학교 앞 문방구를 무대로 소소한 추억과 감동에 젖게 만드는 ‘전체 관람가’ 영화이다. 영화는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어,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에 따라 평가가 엇갈릴 수 있다. 영화의 장점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최강희의 천진난만한 얼굴이 배역에 매우 잘 아울리고, 연기도 나무랄 데 없다는 점. 둘째, ‘토토의 오래된 물건’ 전시장 같은 문방구에서 추억의 소품들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점. 셋째, 아역들도 무척 사랑스럽다는 점 등이다.

그러나 단점도 눈에 띈다. 첫째, 시나리오의 독창성이 떨어진다는 점. 둘째, 인물의 감정이나 갈등을 섬세하게 그리지 못했다는 점. 셋째, 에피소드의 배열이 유기적이지 못하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요컨대 문방구의 추억에 기댄 따뜻한 영화이긴 하지만, 안일한 서사와 얕은 인물묘사로 수작이 되기는 어렵다는 것이 냉정한 평가이다.

시나리오의 독창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은 비단 웹툰 <미스 문방구 매니저>와의 표절시비를 염두에 둔 말이 아니다. <미나문방구>의 줄거리는 이렇다. 아버지와 고향을 지긋지긋하게 여기던 미나(최강희)는 외지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다가 아버지가 입원을 하고 자신도 마침 정직을 당하자 적자만 내는 문방구를 처분하러 고향에 온다. 처음엔 문방구를 팔아치울 생각에 ‘초딩’ 손님들을 홀대하지만, 손님이 많아야 문방구를 처분할 수 있다는 말에 ‘초딩’들을 긁어모으려 열을 올린다. 재고정리를 위해 할인행사를 하고, 오래된 물건들을 팔아치우기 위해 옛날 놀이도 가르친다. 문방구 앞 평상은 아이들의 사랑방이 되고, 미나는 아이들과 친해진다. 미나의 초등학교 동창으로 왕따였던 강호(봉태규)가 교사로 부임해 오고, 두 사람은 추억을 회상하며 아이들 사이의 왕따를 도우려 노력한다. 미나는 차츰 문방구에 집착하였던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되는데....

문방구를 없애려는 미나의 ‘악의적’ 행동이 오히려 ‘선의’로 해석되고, 자신과 아이들의 관계를 변화시켜 눌러 앉게 된다는 서사는 익숙하다. <선생 김봉두>는 산골을 배경으로 화끈한 웃음과 곡진한 눈물을 선사하였고, <맨발의 꿈>은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팀의 실화라는 이색적인 소재로 깊은 감동을 안긴 바 있다. <미나문방구>는 중소도시의 학교 앞 문방구가 배경이다. ‘스트리트 파이터’ 오락기가 놓여있고, 정체불명의 불량식품과 싸구려 장신구를 파는 허름한 문방구는 시간이 정지된 듯한 공간이다. 어른들은 무심코 지나치지만, 아이들에게는 멋진 백화점처럼 보이는 이곳은 80-90년대에 대도시의 변두리나 지방중소도시에서 유년기를 보낸 절대다수의 30대 인구들이 공통으로 추억할 만한 심상의 장소이다.



즉 <미나문방구>는 <선생 김봉두>나 <맨발의 꿈>에 비해 밋밋한 설정이지만, 보편성에 호소하며 관객 각자의 개인적 기억을 환기시키는 영화이다. 아이들의 고민과 갈등도 <선생 김봉두>나 <맨발의 꿈>에 비해 진폭이 얕지만, 영화의 목적이 눈물을 빼려는데 있지 않고, 잔잔한 회상과 빙긋한 미소를 안기는 것이기에 실패로 볼 수 없다. 즉 <미나문방구>의 재미는 독창적인 서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문방구의 오래된 물건들을 보며 향수에 젖고, 최강희와 아역 배우들의 귀여움을 감상하는데 있기 때문에 시나리오의 독창성이 크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인물의 갈등이 피상적으로 그려진 것은 지적할 만하다. 개성이 강한 주인공이 부모와 티격태격하다가 화해하는 서사는 최강희의 전작 <애자>를 연상시키지만, <미나문방구>는 <애자>에 비해 인물과 감정의 묘사가 떨어진다. 무엇보다 전형적인 ‘딸 바보’인 아버지를 미나가 왜 그리 싫어하게 되었는지 납득되지 않는다. 문방구를 하는 탓에 ‘방구’라고 놀림 받았고, 아빠가 아이들에게 퍼주는 탓에 더 괴롭힘을 받았다는 것도 그리 와 닿지 않는다.

아빠에게 화풀이를 할 정도로 성격이 강하고, 똑똑한데다 상장도 여러 개 받을 수 있었던 미나가 아이들의 놀림에서 자력으로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다. 미나는 아이들의 괴롭힘을 받았다기보다는 오히려 아이들과 고향이 유치하고 자신의 수준에 맞지 않는다고 느껴서 전학을 보내달라고 졸랐던 것으로 보이는데, 그런 미나가 ‘꿈의 직장’인 공무원을 때려치우고 고향집에 눌러 앉게 된다는 결말을 납득시키려면 감정과 에피소드의 배열이 더 정교했어야 한다.



물건을 훔친 왕따 소녀가 장황하게 사연을 풀어내며 수첩을 보여주는 장면이나 아이들의 장점을 조목조목 읊는 장면은 느닷없이 느껴지고, 미나가 아이들의 부모와 싸우면서 “아이가 동생이 많아서 힘들어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은 ‘과잉오지랖’처럼 보인다. 마지막에 미나가 기차역에서 발길을 돌릴 때, 과연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만한 감정이 쌓였는지도 의문스럽다. 미나가 아이들에게 정이 들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는 정해진 결말에 도달하기 위해, 영화는 마치 사방치기처럼 바닥에 깔아놓은 몇 개의 에피소드를 듬성듬성 밟고 오지만, 그 과정에서 자연스러운 몰입이 생기지는 않는다.

허술한 얼개와 피상적인 인물묘사가 흠이지만, <미나문방구>는 장점도 분명한 영화이다. 영화는 이제는 부모가 된 30대들에게 추억의 소품들을 통해 자신들의 유년을 일깨우며,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시간과 공간을 갖고 더 많이 놀고 싶어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일러준다. 아울러 우리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행복 한 조각은 학교 앞 문방구 어디쯤에 놓고 왔다고 넌지시 전한다. 어느 시인은 시골출신들이 우거지된장국 맛을 못 잊듯, 도시 변두리출신들은 라면국물의 맛을 잊지 못한다고 말하였다. ‘미나문방구’의 평상에서 먹는 라면 맛은 어떠했을까. 뼛속 깊이 나의 근본을 일깨우는 맛이 아니었을까.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미나문방구>]
저작권자 © 엔터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