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오페라 <운명의 힘>주역 테너 이정원 바리톤 강형규

[엔터미디어=공연전문 기자 정다훈] <가면무도회>,<돈 카를로>와 더불어 ‘베르디의 3대 격정의 휴머니즘 오페라’로 불리는 < 운명의 힘 >(La forza del destino)은 신의 의도에 따라 ‘운명이라는 힘’에 농락당하는 나약한 인간들의 고뇌를 심리적으로 잘 묘사한 작품이다.

러시아 궁정의 의뢰로 1862년 상트 페테르부르크 황실 오페라 극장에서 초연된 <운명의 힘>은 이후 1869년 밀라노 스칼라 극장에서 개정판으로 공연 됐다. 초연판에선 ‘비겁자’란 말에 격분한 알바로가 카를로를 죽이고, 카를로 역시 동생인 레오노라를 죽인 뒤 알바로가 자신의 운명을 저주하며 절벽에 몸을 던져 죽는 것으로 마무리 됐다. 수정본에서는 알바로가 죽지 않고 평생을 회한의 세월을 보내는 것으로 막이 내린다. 서울오페라앙상블은 기슬란초니가 대본을 작성한 개정판에 맞춰 작품을 선 보인다.

서울오페라 앙상블(예술감독 장수동)이 17일부터 19일까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오페라 < 운명의 힘 >을 선 보인다. 2013 대한민국 오페라페스티벌 선정작 이자 베르디 탄생 200주년 기념공연으로 무대에 오르는 작품이다. 16일 리허설 현장에서 알바로 역 테너 이정원과 카를로 역 바리톤 강형규를 만났다.

■ 마리아 칼라스 콩쿨에 이어 <운명의 힘>에서 다시 만난 성악가 이정원 강형규

오페라 갈라 공연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베르디의 오페라< 운명의 힘 > 서곡은 영화 ‘마농의 샘’ 배경 음악으로 쓰여 더욱 친숙하다. 하지만 장중한 스케일과 드라마틱한 테너 소프라노 바리톤을 모두 갖춰야 해서 국내에서 자주 공연되지 않았던 오페라 중 하나이다. 2009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서울시오페라단이 공연하기도 했지만, 25주년을 맞는 예술의 전당에서는 처음으로 공연되는 오페라이다.

테너 이정원은 서울시오페라단 <운명의 힘>공연에 이어 다시 한번 ‘알바로’로 변신한다. 강형규는 국내 무대에선 처음으로 ‘카를로’로 나선다.

“이태리 등 외국에서 정말 자주 했던 작품이에요. 하지만 국내에선 처음 하게 됩니다. 예술의전당 개관 25년 만에 처음 올라간다고 하니 더욱 뜻 깊은 작품이네요. 다만 아직까지 흥행이 되는 유명 레퍼토리인 ‘아이다’, ‘투란도트’, ‘라 트라비아타’, ‘토스카’, ‘리골레토’ 등만 공연해야 하는 현실은 안타깝네요.”(강형규)

2009년 이후 4년 만에 <운명의 힘>과 만난 이정원은 “당시엔 고성현 김남두 선생님 등 당대 최고의 가수들이 나섰지요. 저 보다 나이 드신 성악가분들도 많았구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고참 나이가 되어 작품에 참여하고 있어요. 보다 젊은 성악가들과 함께 초심으로 돌아가서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운명의 힘>은 제목부터 장중한 서사극 느낌을 줘 일반인들에겐 아직 낯선 느낌이다. 이에 대해 강씨는 “결코 쉬운 오페라도 아니고 흥행이 잘 되는 오페라도 아닙니다. 그럼에도 오페라를 정말 사랑하시는 장수동 선생님이 ‘운명의 힘’이란 작품을 선택한 이유가 분명 있다고 봐요. 그리고 가수 입장에서도 단지 관객이 객석을 많이 채웠다고 해서 좋은 게 아니라 소수일지라도 정말 오페라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관람하는 게 좋습니다. 이 작품을 꼭 보고 싶다고 개인적으로 연락 해 오시는 분도 계세요.”

그렇다면, 각자가 보는 <운명의 힘> 매력은 뭘까. 가문에 대한 명예와 복수의 집념으로 운명을 거슬러 올라가고자 했던 ‘카를로’ 역 강씨는 음악적 완성도를 강점으로 꼽았다.

“‘카를로’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에 휘말린 ‘알바로’ 때문에 결국 아버지가 죽임을 당하게 된 걸 알고 복수심에 차오르게 돼요. 가문의 명예가 더럽혀진 것에 대한 복수심이 더 큰 거죠. 나중에 서로의 실체를 모른 체 친구가 되기도 하지만, 다시 상대가 누구인지를 알게 돼요. 그 때 알바로를 죽일 수도 있었지만 죽이지 않아요. 가문의 명예를 먼저 생각하는 카를로는 정정당당하게 죽이는 방법을 선택하게 되거든요.

이런 드라마적 요소 뿐 아니라 베르디의 음악이 정말 좋아요. 개인적으론 베르디의 ‘리골레토’보다 이 작품이 더 음악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무거운 인생의 수레바퀴 밑에서 불명예로 저주받은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던 잉카 출신의 귀족 청년 `돈 알바로` 역 이씨는 ‘긴박한 드라마가 매력적이다‘고 말했다. “

‘운명의 힘’은 베르디의 음악이 긴박한 드라마적 요소와 어울려 무슨 내용인지 모르고 볼 지라도 절대 심심하지 않을 작품입니다.”

테너 이정원은 2008년 세계적인 극장인 라 스칼라에서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오페라 <멕베드>의 주역을 맡아 한국을 빛낸 성악가로 이름을 알렸다. 바리톤 강형규는 2003년 이태리 부세또 극장에서 이태리 연출의 거장 피에르 루이지 피치가 함께한 베르디 오페라 <시칠리아의 저녁기도>에 출연해 호평을 받으며 유럽 무대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두 성악가는 2000년 이태리 파르마에서 열린 마리아 칼라스 국제 성악 콩쿨에서 운명적으로 만났다. 당시 테너부분 1위는 이정원, 바리톤 부분 1위는 강형규였다.

<운명의 힘>에선 테너와 바리톤의 이중창을 자주 만날 수 있다. 소프라노 뿐 아니라 두 남성 성악가가 이야기 중심을 잡아가기 때문이다. 카를로 역 강형규는 알바로 역 테너 이정원과의 중창이 더욱 흥미를 자극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리아 칼라스 콩쿨에서 이정원 선생님을 처음 봤어요. 그 뒤 여러 콘서트 공연을 함께했지만 오페라 작품으로 만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저와 색깔이 다른 테너신데, 그만큼 캐릭터상의 앙상블이 좋아요. 특히 이번 작품에선 서로의 색깔이 달라야 더욱 재미있는 캐릭터가 그려지거든요. 또 이미 여러 차례 공연을 하셔서 여유가 있으세요. 그 점이 이번 작품에서 에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 기본에 충실한 스태프와 성악가의 열정이 만들어낸 오페라 <운명의 힘>

18세기 말의 스페인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오페라 <.운명의 힘>엔 인간이 겪은 매 순간의 선택과 오해가 낳은 운명의 힘에 이끌려 신분을 숨긴 채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4막 내내 세 젊은이는 죽음과 저주의 수레바퀴 밑으로 처절하게 굴러 들어간다. 베르디는 이러한 비극적 드라마를 살리기 위해 지금껏 쓴 오페라보다도 한층 극적이고 박력 넘치는 통일된 음악을 사용했다.

연세대 성악과를 거쳐 이태리 베로나 국립음악원, 로비고 국립음악원, 밀라노 “Teatro Europea“아카데미 연출자과정을 수학한 최지형 연출이 나선다. 최지형은 성악가들 사이에서 신뢰가 높은 연출자 중 한 명이다. 강씨와 이씨 모두 연출가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정원씨의 선배이기도 한 최지형 연출은 성악을 전공해 성악가들과 접촉점도 넓다. 강씨는 ‘최지형 연출은 가수들이 편안하게 노래할 수 있게 해주는 연출가’라고 밝혔다. “우선 최 연출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작품에 대한 방향) 변하지 않는 분이세요. 작품의 모든 걸 다 알고 있어서 가수들이 편안하게 노래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연출이죠. 또한 ‘이렇게 해. 저렇게 해’ 라고 지시하기 보다 가수들 스스로가 뭔가를 찾아낼 수 있도록 해서 가수를 굉장히 부각시켜 주세요. 장수동 연출님과 마인드가 비슷하세요.”

서울오페라앙상블 대표 장수동 예술감독은 “<운명의 힘>은 죽고 죽이는 현실에 대한 메타포가 담겨있는 작품입니다”며 “이러한 동양적 사고의 ‘윤회’와 ‘운명’의 메타포를 담기 위해 예술의전당 무대에 맞는 두 개의 회전 판이 연동 돼 돌아가는 무대를 만나보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한 편의 오페라가 제대로 만들어지기 위해선 단체의 대표 뿐 아니라 출연 스태프와 성악가들이 작품에 대한 기본적인 마인드를 제대로 잡고 있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운명의 힘>은 충분히 기대감을 갖게 한다.

강씨는 “함께 출연하는 가수나 스태프들끼리 친하냐 친하지 않느냐를 떠나, 한 편의 오페라가 잘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작품에 대한 애정, 기본적인 마인드가 제대로 됐느냐 여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런 점에서 장수동 선생님은 오페라 페스티벌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잘 제시해 주고 있다고 봅니다. 사립단체의 대표 혼자 짊어지기엔 어려움이 많다는 점도 잘 압니다. 장윤성 지휘자님과 가수들도 함께 힘을 모아서 작품을 만들어 가고 있어요. 이런 마인드가 모여졌을 때 관객들이 제대로 된 오페라를 만나보게 되지 않을까요.”

다이나믹한 베르디의 음악을 지휘할 지휘자는 비엔나에서 활동하고 있는 실력파 지휘자 장윤성(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이다. 장씨는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작곡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지휘 석사과정을 이수했다. 이어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림스키-코르사코프 음악원에서 지휘를 배웠다. 러시아 유학 중이던 1993년에 프로코피에프 국제 지휘자 콩쿨에 2위로 입상했고, 입상 특전으로 1년간 마린스키 극장에서 지휘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발레리 게르기에프에게 배웠다. 2011년까지 대전시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

총 22명의 성악가들이 <운명의 힘>에 힘을 불어 넣는다. 테너 이정원 한윤석(돈 알바로), 바리톤 강형규 최진학(돈 카를로), 소프라노 이화영 조경화(레오노라), 메조소프라노 김선정 최승현(프레지오질라),베이스 박준혁 임철민(구아르디아노), 베이스 심기복 윤성우(칼라트라바). 바리톤 성승민 양진원(멜리토네), 메조소프라노 원경란 소프라노 박선정(쿠라),테너 임정혁 최상배(트라부코), 베이스 이준봉 김현민(알카데),바리톤 정준교 홍현준(군의관),그란데 합창단이 출연한다. 무대디자인은 오윤균이 맡았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정다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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