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립오페라단이 선보이는 혁신적인 현대오페라 ‘처용’

[엔터미디어=공연전문기자 정다훈] “‘황금의 나라’로 불렸던 신라를 공허한 황금의 감옥에 갇혀 멸망으로 치닫는 불쌍한 사람들로 해석했어요. 신의 형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와 악마의 유혹을 받는 파우스트의 모습을 닮은 고뇌하는 처용, 혼탁한 사회에 내던져진 나약한 인간 가실, 메피스토 처럼 어두운 인간 본성을 부추기는 역신의 드라마죠. 결국 오페라 ‘처용’은 우리의 역사가 신라의 전철을 되풀이 하지 않길 바라는 처용의 아리아이며, 파멸의 뒤안길로 가지 말자는 기도의 합창입니다.”

22일 열린 국립오페라단 <처용> 기자간담회 현장에서 연출가 양정웅은 “향락과 부패로 망해가는 신라를 구하러 온 ‘처용’은 배금주의에 허덕이며 휴머니티를 잃어가는 우리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고 밝혔다.

1987년 초연 이후 2013년 새로이 태어나는 창작 오페라 <처용>은 천 년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처용설화’를 드라마틱하게 담고 있는 작품. 오페라 <황진이> <목화> <손탁호텔>, 칸타타 <용비어천가>, 관현악곡 <도깨비춤>등을 작곡한 이영조씨가 한국 전통음악과 세계 음악언어의 조화로운 만남을 시도했다.

오는 6월 8일과 9일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르는 <처용>(극본 김의경, 가사 고연옥)은 9세기말 통일신라 헌강왕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하늘의 옥황상제는 부패와 타락으로 물든 통일신라의 패망을 선언하지만 그의 아들 처용은 자신을 신라 땅에 보내어 그들을 죄로부터 구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한다. 처용은 신라의 본성을 회복하겠다는 희망으로 옥황상제의 뜻을 어기고 지상으로 내려가기에 이른다.

국립오페라단은 한국의 전통적인 이야기를 담은 ‘처용설화’를 현대적인 음악과 연출로 재해석한다. 음악적 특징은 각각의 등장인물을 상징하는 음악적 주제가 반복되는 바그너의 유도동기(Leitmotif) 기법으로 작곡된 점이다.



바그너의 드라마틱한 관현악을 연상시키는 무게감 있는 서곡과 남성적 카리스마가 넘치는 웅장한 합창의 선율이 인물을 보다 입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게 한다. 물질적 풍요 속의 쾌락과 혼돈, 공허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무대(임일진), 의상(김영지), 조명(여국군) 역시 현대적으로 꾸몄다.

깊은 통찰력의 명징한 해석의 지휘자 정치용, 젊은 혁신의 연출가 양정웅, 작품의 핵심을 절제미로 표현하는 무대미술가 임일진, 이렇게 세 예술가의 협업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세 사람의 협업은 이미 국립오페라단과 함께 한 두 작품, <천생연분>(2006, 독일 프랑크푸르트 초연)과 <보체크>(2007, 한국 초연)를 통해 검증된 바 있다.

시적 연극으로 ‘오페라’를 바라보는 감각적인 연출가 양정웅은 연극▪ 오페라▪ 발레를 넘나들며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연출가 중 한 명이다. 현재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연극 <라오지앙후 최막심>에 이어 국립오페라단 작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드라마틱하고 풍부한 성량을 지닌 솔리스트들이 함께한다. 타락한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인간 세계로 하늘의 아들, ‘처용’역엔 테너 신동원이 캐스팅 됐다. 팜므 파탈의 여성상이지만 처용의 순수한 영혼을 만나 구원을 꿈꾸었으나 끝내 역신의 유혹 속에 죽음을 맞이하는 ‘가실’역엔 소프라노 임세경이 열연한다. 신동원과 임세경은 지난 4월 서울시오페라단 <아이다>에 이어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춘다.



특히 임세경은 2010년 국립오페라단 <메피스토펠레> <카르멜회 수녀들의 대화> <가면무도회>에서 풍부한 음색과 성량, 탁월한 연기력으로 국내 오페라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성악가다. 신동원 역시 실력을 인정받아 국립오페라단의 하반기 작품 <파르지팔>에서 다시 한번 관객과 만날 예정이다.

이영조 작곡가는 “‘임금님’에게 아리아 하나 밖에 못 드린 게 죄송할 정도로 실력 있는 성악가들이 함께 한다”며 주 조역 출연진 모두에게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서로를 사랑하는 처용과 가실 사이에 갈등과 고뇌의 상황을 연출하는 역신 역으로는 바리톤 우주호가 나선다. 베이스 전준한(옥황상제), 바리톤 오승용(임금), 바리톤 박경종(노승), 소프라노 김지현(붉은마녀), 고승희(검은마녀), 메조 소프라노 홍유리(흰마녀) 등이 출연한다. 2013 대한민국오페라 페스티벌 마지막 작품인 <처용>에선 지휘자 정치용이 프라임필하모니오케스트라를 지휘하고, 그란데오페라합창단이 함께한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국립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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