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교향악단과 한국바그너협회의 <바그너 콘체르탄테>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지난 22일 정교한 스케일과 풍만한 볼륨감을 자랑하는 소프라노 캐서린 네이글 스태드(지글린데), 부드러운 감성의 바그너 테너 마르코 옌취(지그문트), 중량감 있는 소리 안에 알찬 저력과 아카데믹한 표현을 세심하게 담아낸 베이스 하성헌(훈딩)이 1997년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던 ‘바그너축제’의 감동을 재현했다.

당시엔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수석 주자들과 금관 연주자들이 KBS교향악단과 연합해 본고장의 바그너 악극을 선사했다. 이번 연주회에선 16년 전 KBS교향악단 악장이었던 김민 현 서울바로크합주단 음악감독이 객원 악장으로 참여했다. 김민 서울대 음대 교수는 과거 바이로이트 극장 오케스트라의 유일한 한국인 단원으로 활약한 장본인이다.

16년 만에 다시 열린 ‘발퀴레’ 공연이 이전과 달라진 점이라면 외국에서 온 객원 수석주자 없이 KBS교향악단 단원들만으로 연주했다는 점이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과거 ‘훈딩’을 노래한 베이스 강병운의 바통을 이어 받아 베이스 하성헌이 무대에 섰다는 점.

하성헌은 마르코 옌취와 함께 콘서트홀 무대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부터 무대를 압도하는 장신으로 관객을 집중시켰다. 콘서트홀 무대의 사이드 양쪽 문 천장을 뚫고 나올 듯한 기세였다. 이어 가슴 깊은 곳에서 끌어올리는 심원한 소리로 귓가를 천천히 덥혀왔다. 적의 족속임을 안 지그문트를 향한 유창한 심리적 표현 역시 돋보였다.

국립오페라단이 올 10월에 공연 할 한국 초연 <파르지팔>에 이어 2014년부터 선보일 예정인 <니벨룽의 반지> 4부작에서도 꼭 만나고 싶은 베이스 중 한 명이었다. 무대 세트와 의상을 갖추지 않고 공연하는 오페라 ‘콘체르탄테’가 아닌 전막 오페라에서 그가 보여 줄 입체적 감동이 더욱 기대됐기 때문이다.



연세대와 독일 함부르크 국립음대를 졸업한 하성헌은 2011/2012 시즌부터 독일 만하임 국립극장 전속 가수로 발탁되어 주역 베이스로 활동 중이다. 최근 슈투트가르트, 뮌헨, 빈, 스트라스부르 극장 등에서 솔리스트로 활동하며 오페라 비평가들에게 주목할 만한 차세대 베이스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2013/2014 시즌에는 베르디 오페라 <시몬 보카네그라>의 ‘피에스코’로 만하임 국립극장 무대에 설 예정이다.

KBS교향악단과 한국바그너협회는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 200회 생일을 맞아 잘츠부르크 주립극장 지휘자를 역임한 카이 뢰리히의 지휘로 <바그너 콘체르탄테>를 선 보였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오른 <바그너 콘체르탄테>는 바그너의 처녀작인 <리엔치> 서곡, 비교적 대중에서 잘 알려져 있는 <탄호이저> 서곡, <신들의 황혼> 3막 중 영웅 지그프리트의 영혼을 위로하는 ‘지그프리트의 장송행진곡’으로 1부를 채웠다.

2부에선 ‘라인의 황금', '발퀴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으로 이어지는 4부작 음악극 <니벨룽의 반지> 2부 ‘발퀴레’ 1막 을 “콘체르탄테” 형식으로 공연했다.

지휘자 카이 뢰리히는 지휘봉 없이 맨손으로 음악을 조율해 나갔다. 1부 초반 금관 파트가 힘차게 빛나지 못해 바그너 음악의 생기를 살리지 못하는 듯 했으나 곧 지휘자의 탁월한 해석과 KBS교향악단의 엄청난 에너지로 거대하고 웅장한 바그너 음악의 향연이 펼쳐졌다.

한국바그너협회 회장 조순철씨는 “오늘 공연은 1997년 그 날의 의미와 감동을 계승하는 무대이다. 또한 협회 20주년의 발자취를 기록하고 기념하기 위해 문집 <바그너와 우리>를 출판했다. 이는 지난 2003년 협회 창립 10주년 기념 문집 <바그너와 나>의 확장이라는 의미에서 채택한 것”임을 전했다.

한편, 이날은 바그너 생일을 기념해 공연 프로그램을 무료로 배포하기도 했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정다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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