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페라 ‘손양원’ 주역 테너 정의근

[엔터미디어=공연전문 기자 정다훈] “창작오페라는 가수들의 역량에 달려 있어요. 도전할 만한 작품이니까 창작 작품을 만들었을 것 아니에요. 그런데 가수들이 우리말로 된 아리아를 부를 때 어색하게 느껴지고, 부자연스런 액팅이 계속 눈에 들어오면 문제가 되는 거죠. 우리에게 익숙한 유명 오페라 보듯 단어 하나 하나의 프레이징은 물론 자연스런 액팅에 신경 쓰고 있어요. 이 작품을 잘 해내면 정말 좋은 오페라 가수, 업그레이드 된 가수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창작오페라 <손양원>이 5월 31일 부터 6월 2일까지 3일간에 걸쳐 예술의전당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된다. 2013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네 번째 참가작 <손양원>은 민족지도자 ‘손양원’이 몸소 보여준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양자 삼은 용서와 사랑 및 대통합의 메시지를 담은 작품. 이번 오페라는 로마 국립 예술원 연출과를 최고점수로 졸업하고 국내 무대에서 감각적인 연출가로 인정 받은 이회수(예감 오페라앙상블 예술감독)가 연출을 맡았다.

작곡은 창작 오페라 <에스더>, <유관순>뿐 아니라 ‘어머님의 은혜’, ‘산골짝의 다람쥐’, ‘송이송이 눈 꽃송이’ 등 동요 작곡가로 유명한 박재훈(캐나다 토론토 큰빛교회 목사), 지휘는 경성대학교 예술대학 음악학부 교수인 이기균(고려 오페라단 단장, CMK 교향악단 상임지휘자)씨가 참여한다. 사랑의 원자탄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민족지도자 손양원 목사 역으론 테너 정의근▪이동현▪윤병길이 트리플 캐스팅 됐다.

■ 진정한 인간애와 용서와 사랑을 담은 오페라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 기념 초연의 호평에 힘입어 다시 돌아온 오페라 <손양원>은 총 2막 20장으로 구성됐다. 오페라의 1막은 손양원 목사가 나병환자촌 애양원에서 목회했던 내용을, 2막은 여수순천사건에서 손양원의 두 아들인 손동인(테너 김동원 정재환 양인준), 손동신(바리톤 공병우 박찬일 조상현)이 좌익청년들에 의해 총살당했으나 아들을 죽인 원수 안재선(바리톤 곽상훈 한정현)을 양자로 삼은 용서의 장면으로 구성된다.

고려 오페라단은 지난 공연을 수정 보완해 손 목사의 신앙적인 측면 외에도 인간적인 측면을 보다 설득력 있게 담아낼 예정이다.



-‘손양원’ 역에 캐스팅 된 뒤 어떤 생각이 들었나
“처음엔 부담이 많이 됐어요. 기독교인에게 ‘목사님’ 역할 자체가 부담이 안 될 수가 없거든요. 또 다른 한 편으론 욕심이 생기기도 했어요. 다른 창작 작품과 다르게 다가오는 면도 무시할 수 없었죠.”

-창작오페라에 처음 도전한다
“유명 오페라일지라도 처음 도전하는 작품은 힘들기 마련인데, 여기에 창작오페라라고 하니 더 많은 고민이 됐어요. 처음에 악보를 받고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건 가사들이었어요. 가사 하나 하나가 클라이막스처럼 눈에 들어오니 덜컥 겁이 났거든요. 그런데 모든 음절에 액센트를 넣어서 부르면 오히려 관객에겐 안 들리게 되는거잖아요. 창작 오페라에선 한국어 발음이 잘 안 들린다는 말을 많이 듣는 데, 저 역시 그런 두려움이 생기더군요. 발음과 발성, 성악적 테크닉이 다 연관성이 있는데 이태리어에 비해 우리말 단어는 좀 더 복잡하죠.”
-창작오페라에서 가사가 안 들리는 건 감안하라는 의미인가
“창작오페라 작품을 잘 하고 못 하고를 떠나, 가수들의 공을 무시할 수 없다고 봐요. 성악 발성을 한국말로 하면 성악가들 스스로도 불편하다고 하지만, 이 점은 성악가들이 고민해야 할 부분입니다. 안 들린다고 무조건 자막을 넣을 게 아니라 성악가 스스로 보다 발성적인 고민을 해야죠. 이번에 저는 자막을 넣지 않길 바랐는데, 그렇게 되면 이해 못하는 관객들이 많기 때문에 넣는다고 들었어요. 이 점에 대해서도 점차 이해하고 고민하는 가수들이 많아질 거라 생각해요.”

-‘용서와 사랑’이 주제인 이번 작품에 어떻게 접근해 가고 있는가
“과한 액팅이나 지나친 감정 노출은 역효과가 날 수 있다고 봤어요. 특히 이번 작품에선 그런 연기는 배제하자고 먼저 생각했어요. 관객들이 우리말로 된 아리아를 들으면서 ‘오글 오글’ 거리는 느낌을 받지 않게 하는 게 목적입니다. 성악가인 제가 들어도 그런 느낌을 받는 경우가 간혹 있었거든요. 그런 부자연스러움을 주려면 아예 창작 오페라에 도전하지 않는 게 낫겠죠. 이번 작품에서 자연스러운 액팅을 선보일 수 있도록 신경 쓰고 있어요. 제가 가수로서 업그레이드 되는 모습을 지켜 봐 주세요.”



■ “자리를 채워준 관객에게 감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음의 감동을 주고 싶다”

-‘손양원’ 목사는 자신의 두 아들을 죽인 원수를 용서하고 양자로 삼았다. 직접 손 목사로 분하면서 이 점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손 목사님은 조금 더 완전하게 예수님을 닮으려고 하신 분이세요. ‘이해’요? 전 아직까지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저도 자식이 있는 아비지만 몇 번 생각해도 온전히 이해할 순 없다고 봐요. 단, 그런 ‘손양원’ 목사 같은 분이 있었다는 점은 사실이고, 그 인물이 되는 것 자체의 노력을 하는 거죠.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의 말씀’ 속 용서 자체가 중요한 거죠. 전 오페라 가수로서 그걸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중요하구요.”

-캐릭터를 만드는 데 있어 도움 받은 분이 있나
“저는 그런 사람이 아니지만, 제 부인을 보면서 많이 느껴요. 상대가 아픈 걸 보면 마치 자신이 아픈 것처럼 느끼는 분이 있다고 하는데, 제 와이프가 그래요. 와이프는 제가 아프면 진짜 자신이 아픈 것처럼 눈물을 흘릴 정도입니다. 신경정신과 의사이신 장인어른에게도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이기적이 아닌 이타심’이 극대화된 분들이 있대요. 또 한 가지를 생각하면 절대 타협이 없는 분이 있죠. 신앙이든 스포츠든 한번 빠지기 시작하면 그것만 생각하는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많은 도움이 됐어요.”

-<손양원> 작품을 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사람들의 심리를 더 잘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특히 손양원 목사가 신앙만을 생각하는 것을 보며, 저희 스승이신 박인수 교수님의 ‘노래 밖에 모르는 열정’이 떠오르기도 했어요. 저는 다른 사람들한테 미움 받는 거 싫어해서 이것 저것 많은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손 목사님이든 저희 스승님이든 오로지 한 가지만 생각하는 분이세요. 얼마 전에 스승님이 책을 내기도 했는데, 그걸 읽으면서 더 많이 생각났어요.”

-기독교인이 아닌 일반인이 보기엔 드라마에 동화되는 게 쉽지 않을 수도 있겠다
“손 목사님은 원수를 양자로 삼은 일화 외에도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애양원에서 나병환자들을 돌보는데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았던 분입니다.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이웃을 위해 헌신하였던 분이죠. 이런 손 목사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는 분은 쉽게 다가갈 수 있지만, 모르는 분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봐요. 연기하는 분들이 이해시켜 줘야 하는 부분이죠.”

-‘기독교인을 위해 만든 오페라 아닌가’ 라는 반문도 나올 수 있다
“기독교인들이 너그러이 봐 주시는 부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어요. 하지만 기존 오페라보다 재미나 극적인 감동이 떨어지면 오히려 그 분들에게 더 미안할 것 같아요. 완성도가 떨어진다면 앞으로 이런 작품이 다시는 나오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까요. ‘목사에 관한 이야기’를 오페라로 만든 작품이 다 그렇지‘ 이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또 오페라 가수라면, 자리를 채워주는 관객에게 감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마음의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저 뿐 아니라 많은 가수와 스태프들이 오페라의 발전 측면에서도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2013년 <손양원>은 어떻게 변화 됐나
“아리아가 추가되고 드라마도 손을 봐 2012년 공연에 비해 약 40% 정도 수정됐다고 보면 됩니다. 크게 달라진 점이라면 손 목사의 신앙적인 면 뿐 아니라 인간적인 모습에도 신경을 썼어요. ‘안재선’의 비중도 좀 더 높아지면서 ‘나는 살인자’란 아리아가 새로 들어갔어요. 또 아들을 잃고 힘들어하는 아비로서 손 목사의 고뇌를 담아내기 위해 아리아가 추가 됐어요. 손 목사의 ‘아홉가지 감사 기도’ 같은 주요 아리아도 좋지만, 부인과 아들 둘, 딸의 아리아들도 각각 음악적 완성도가 높아요.”

-테너 김동원 윤병길 양인준, 소프라노 오미선, 바리톤 공병우 김재섭 등 다른 작품에선 주역으로 무대에 서는 분들이 주 조역 가리지 않고 대거 참여했다.
“정말 다 주역가수들이죠. 김동원 선생님은 제 맏아들 손동인으로 나오고, 오미선 선생님은 딸 손동희로 나와요. 단장님의 노력과 가수들의 의지가 합쳐진 거라고 봐요. 처음엔 이렇게 많은 가수가 함께 하는지 저도 알지 못했어요.”



■ 성장하는 음악가 정의근

서울예고를 거쳐 서울대 성악과와 이탈리아 베르디 국립음악원을 졸업한 테너 정의근은 2001/02 시즌에 푸치니 <라 보엠>의 루돌프 역으로 열연하여 독일 오페라 매거진 오펀벨트(Opernwelt)로부터 "올해의 테너"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4년엔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지휘하는 오페라 <카르멘>의 ‘돈 호세’ 역으로 일본 동경 신국립극장에 데뷔한 후 서울 세종문화회관 재개관 기념 공연에 이어 2013년 누오바오페라단 <카르멘>에 출연해 좋은 평을 받았다. 2005년 예술의전당 기획 오페라 베르디 <가면무도회>, 2011년 국립오페라단 <가면무도회>의 국왕 ‘리카르도’로 활약하며 관객을 만나왔다. 유럽 무대에서 20년이 넘게 주역 가수로 활동해 오다 2012년 귀국해 지난 3월부터 상명대 음대의 교수로 재직 중 이다.

-오페라 가수로 생활하다 2012년부터 교수의 삶을 같이 살고 있다.
“흔히 교수 일을 하면 연주 횟수는 줄고 노하우만 늘어간다고 하죠. 전 연주 할 때보다 더 힘들면서도 아이들 실력이 하나 둘 늘어가는 것 보면 기분이 좋네요. 성대 뿐 아니라 정신적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직업이긴 하지만 아이들 인생이 달린 일인데 소홀히 할 수 없죠. 연주는 저 하나 잘 하면 박수 받고, 못하면 저 하나 끝인데,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은 다르죠.”

-가르치는 일이 잘 맞는가 보다
“교수직이 좋은 점 하나가 연구 활동을 하는 거죠. 그런데 전 제가 좋아하는 노래를 연구 할 수 있으니 좋은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제가 연구한 걸 전달하는 과정에서 기쁨도 느껴지고요. 아들이 아빠 닮아가듯 저 역시 자식들을 사랑했던 아빠(박인수 교수)를 닮아 가고 있구나 하는 점도 느끼고 있어요.”

-재직한 이후론 오페라 무대에서 자주 볼 수 없다
"오페라 가수로 유럽에서 활동한 지 만 20년이 넘어서 국내에 정착했어요. 당시는 가수로서의 삶이 점점 힘들다고 느껴지는 절정의 시기였어요. 노래 부르는 것도 불편해졌구요. 그런데 국내에 들어 온 뒤로 고음을 내는 것도 그렇고 훨씬 편해 졌어요. 학교 일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한 1년에 2작품 정도가 적절한 것 같아요. 그 정도 횟수로 오페라 작품에 참여하고 싶어요.”

인터뷰를 한 참 하던 중 정씨가 “이 인터뷰 기자님이 공연 본 다음에 더 깊이 있게 나가면 안돼요”라고 말을 건넸다. “이번 작품은 연습 할 때마다 느낌이 달라요. 공연이 막이 내린다고 끝이 아니에요. 끝나고 나서 더 발전 될 수 있는 게 오페라이고, 창작 작품입니다. 수 백번을 해서 익숙한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도 100번째 무대에 설 때와 101번째 무대에 설 때가 느낌이 달라요. 그런데 머리 털 나고 처음으로 하는 창작 오페라가 매번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되죠. 오페라 <손양원>의 완성은 현재 진행형입니다. 토요일과 일요일 2회 무대에 서는데, 토요일 공연과 일요일 공연의 느낌이 분명 다를 겁니다. 관객과 그 시간을 함께 보낸 뒤 다시 이야기 하고 싶어요.”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고려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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