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헤레베헤 & 샹젤리제 오케스트라 &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의 투명한 합창이 터져나오자 경건한 명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우아하게 올라가는 입꼬리가 인상적인 소프라노 임선혜의 맑고 깨끗한 고음, 테너 벤자민 훌렛의 찬란한 미성은 잔인한 삶 앞에 놓인 인간들을 천천히 위로했다. 필립 헤레베헤가 지휘하는 샹젤리제 오케스트라는 명상과 극적인 부분을 살리면서 감성과 순발력이 조화된 순수한 연주를 이끌어냈다.

필립 헤레베헤 지휘, 샹젤리제 오케스트라 & 콜레기움 보칼레겐트과 함께하는 모차르트 <레퀴엠> 공연이 지난 1일과 2일 LG아트센터 무대에 올랐다.

2006년 첫 내한공연에서 명불허전의 바흐 “b단조 미사”를 선보이며 국내 애호가들에게 대단히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던 필립 헤레베헤는 바흐의 종교 합창음악을 탁월하게 해석하면서 ‘바흐 스페셜리스트’로 세계적인 명성과 신망을 얻고 있는 지휘자 중 한 명이다.

1991년 필립 헤레베헤가 파리에서 창단한 ‘샹젤리제 오케스트라’는 낭만주의 및 낭만주의 이전 시대의 음악을 시대악기로 연주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모차르트, 베토벤에서 브루크너, 말러에 이르는 교향곡 연주는 물론,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와 함께하는 브람스, 포레 등의 합창곡 연주에 이르기까지 레퍼토리가 다양하다. 필립 헤레베헤가 예술 감독과 상임 지휘를 맡고 있지만 그 외에도 다니엘 하딩, 크리스티안 자카리아스, 루이 랑그레, 크리스토프 코인, 르네 야콥스가 객원 지휘자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도 했다.

필립 헤레베헤는 이번 두 번째 내한에서 모차르트의 후기 작품인 ‘주피터’ 교향곡과 <레퀴엠>을 들고 왔다.

모차르트의 마지막 교향곡 41번인 ‘주피터’는 위풍당당한 1악장, 멜랑콜릭한 서정미를 지닌 2악장, 이전의 미뉴엣에 대한 선입견을 버릴 것을 요구하는 3악장, 그리고 푸가 형식을 기반으로 다섯 가지 주제가 장엄하게 펼쳐지는 4악장 등이 천재 모차르트의 마지막 교향곡에 어울리는 음악성을 보여주고 있다. 헤레베헤는 집중력을 유지하며 생기 있는 리듬, 성부 간의 균형을 이끌어냈다. 조화롭고 흐트러짐 없는 연주라기 보다는 뜨겁고도 순수한 사운드라 평할 만했다.



<레퀴엠>은 헤레베헤의 핵심 레퍼토리의 하나로 계속적으로 무대에 올려지면서 시간과 함께 진화하는 곡이기도 하다. 특별히 이번 내한에는 헤레베헤가 1998년 모차르트 “C단조 미사” 연주에 발탁하여 현재 유럽 고음악 무대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소프라노 임선혜가 함께했다. 이 외 테너 벤자민 훌렛, 알토 크리스티나 하마슈트룀, 바리톤 요하네스 바이써가 솔리스트로 무대에 올라 간결한 4성부 합창을 들려줬다.

모차르트 <레퀴엠>은 서양음악 역사상 최초로 음악 원전과 작곡 양식 등 현대적인 의미의 엄밀한 분석과 검증을 받은 작품이다. 그 중에서도 바로크 시대부터 중요성이 강조 된 천상과 지상을 아우르는 '진노의 날'은 원본 가사에 충실한 수사적인 해석을 합창에 녹여 낸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의 합창으로 새 생명을 얻은 듯 했다. 물론 이 모든 건 가사의 의미를 중시하는 합창음악의 대가 필립 헤레베헤의 손 끝에서 시작됐다.

벨기에 겐트 대학의 학생들이 40년 전에 창단한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는 당시 새로운 아이디어인 바로크 시대의 연주 관행을 성악곡에 적용시킨 최초의 앙상블 단체이다.

이번 <레퀴엠> 공연은 기교보다 음악적 순수성을, 발성보다 가사 전달을 중시한 고음악과 자유를 갈구했던 모차르트의 음악언어가 친밀하게 만난 시간이었다.

공연전문 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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