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한 해 수십 개의 창작 오페라가 무대에 오르고 쉽게 잊혀지는 가운데, 창작 오페라의 성공은 어디에서 기인할까? 지금까지 만나 본 창작 오페라는 여타의 유명 오페라에 비해 몰입이 쉽지 않았다. 대개 유명 인물들의 업적에만 집중한 결과 내용상으로 거부감이 들거나, 우리말로 부르는 아리아가 맛깔스럽게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오페라 <손양원>에선 창작 오페라의 숨겨진 원동력을 발견했다. 음악적 색깔이 크리스천이 아닐지라도 마음을 끄는 힘이 있었고, 우리말로 부르는 아리아의 어색함도 과하게 노출되지 않았으며, 완벽하진 않을지라도 드라마적 구성이 상당히 흥미로웠다. 물론 그 안엔 유명 작곡가 박재훈의 찬송가, 국내 성악가들의 뛰어난 기량이 한 몫 하고 있다.

박재훈 작곡가의 창작 오페라 <손양원>이 지난 달 31일부터 2일까지 3일간에 걸쳐 예술의전당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됐다. 2012년 초연에 이어 드라마 구성과 음악적 완성도를 높인 이번 작품은 귀 뿐 아니라 마음을 사로잡는 음악이 많았다는 점에서 박수를 치게 만들었다.

손양원의 아리아 ‘감옥의 빈 방에는’, ‘저 목자여’, ‘원수를 사랑하라는 주님 말씀 따라’, ‘손 목사님의 아홉 가지 감사’는 1막과 2막에 걸쳐 나와 극 흐름을 매끄럽게 연결했다. 손양원의 딸 손동신의 ‘덮어주고 감싸주는 주님 사랑’, 손동신 ‘아앗 저들의 눈빛, 가인의 눈빛’, 정양순 여사의 ‘아름다운 한반도’의 울림도 컸다. 반란군 중위와 사령관들인 김지회 홍순석 지창수 안재선이 함께 부르는 사중창 ‘적기가’의 붉은 열기도 객석에 전달됐다.

그 중에서도 2막에서 들을 수 있는 손동인의 마지막 찬송 ‘하늘가는 밝은 길이’는 공연의 막이 내린 뒤에도 계속 생각나는 곡 중 하나이다. 단 아쉬운 점이라면 작품의 타이틀 롤인 손양원의 아리아보다 손동인의 아리아가 더 기억에 남는다는 점이다. 오히려 ‘하늘가는 밝은 길이’ 1막에서 손양원의 아리아로 한번 나온 뒤, 2막에서 손동인의 아리아로 조금 달리 변주 됐다면, 훨씬 더 감동적이었을 듯 싶다. 그렇게 되면 '아버지의 가르침'과 ‘순교자’란 주제도 더 효과적으로 전달 할 수 있으니 말이다.



2013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네 번째 참가작 고려오페라단 오페라 <손양원>은 민족지도자 ‘손양원’ 목사의 일대기를 담고 있다. 그 중에서도 두 아들을 총살한 원수 안재선을 양자로 삼은 손양원 목사의 사랑과 헌신에 대한 내용이 대통합의 메시지와 어울리며 감동을 줬다.

이회수 연출가는 하늘로 연결되는 인생길, 십자가로 완성되는 천국의 길을 콘셉트로 내세웠다. 상징성 있는 무대(무대감독 이진수)로 도드라지지 않는 이미지를 그리면서 무대의 전체 프레임이 조금씩 변해간 점도 인상적이다. 사변의 각이 진 무대가 점차 모양을 달리하며 하나를 향해 달려갔다.

2013년 <손양원>이 위인 손양원이 아닌 인간 손양원을 그린 것과 맥을 함께 한 것으로 보인다. 첫 장면에서 다정한 손양원 목사 가족의 한때를 보여 준 점 역시 같은 의도로 이해하면 될 듯 하다. 1막 순교자의 시간 장면에선 손양원 목사의 가족 모두에게 하나 하나 핀 조명을 비춰 장면을 완성한 점도 눈에 들어왔다.



이 연출가는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길처럼 오페라 손양원의 무대에는 긴 인생길이 놓여 있고. 우리의 소원이 천국에 있듯, 그 길은 하늘 길로 연결 되어있음”을 연출의도로 밝혔다. 이어서 “미니멀리즘(minimalism)으로 표현된 무대는 무대 속 ‘사람’으로 완성 될 것”을 전했다.

<손양원>의 드라마 구성은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진 않는다. 시간 순서대로만 극을 구성한 1막이 그러했는데, 아직까지 발전될 소지가 많은 창작 작품이니 만큼 1막 구성에 더 긴장감을 부여했으면 한다. 일대기를 그대로 보여주다 보니 극이 교훈조로 비춰진 점이 전체 호감도를 낮췄다.

또한 작품의 출연진이 너무 많은 점도 극을 다소 장황하게 보이게 한다. 손양원 패밀리 외에 주요 인물은 원수 ‘안재선’과 전도사 ‘이인제’이다. ‘안재선’은 재공연에서 비중이 높아지며 ‘나는 살인자’라는 아리아도 부르게 됐다.

반면, 손양원 목사와 손양원 목사 가족들 옆에서 계속 등장하는 전도사 ‘이인제’의 캐릭터 색은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주요 아리아도 없이 보조하는 역으로만 그려지고 있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절대 비중을 무시 할 수 없는 역이다. ‘이인제 캐릭터’는 '부모님의 신앙' '순교자의 신앙', '아버지의 마음', 등을 강조하며 손 목사가 두 아들을 잃고 슬퍼하고 있을 때, 손 목사에게 "동인이와 동신이가 당신의 아들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을 건네는 부분에서 감지할 수 있다. 보다 명확한 캐릭터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오페라 <손양원>의 주역으론 테너 정의근 이동현 윤병길(손양원), 메조소프라노 양송미 송윤진 김정미(정양순), 테너 김동원 정재환 양인준(손동인). 바리톤 공병우 박찬일 조상현(손동신), 소프라노 이현정 오미선 정성미(손동희),바리톤 김재섭, 김종표(이인제), 바리톤 곽상훈 한정현(안재선)이 나섰다.

테너 정의근은 ‘손양원’ 목사의 신념과 의지를 몸에 체화시켜 힘 있고 유연한 소리를 들려줬다.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인물을 그려낸 점이 진정성을 엿보게 했다. 손동인 역 테너 김동원 정재환 양인준 모두 명쾌하고 부드러우면서도 서정미 넘친 가창을 들려 줘 많은 박수를 받았다. 바리톤 김재섭과 김종표의 호소력 넘치는 소리도 돋보였다.

악인 ‘안재선’의 명확한 캐릭터화는 ‘배우라 칭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로 열연을 보여 준 바리톤 곽상훈에게서 발견할 수 있었다. 다만 ‘안재선’을 자꾸 사이드로 달려가게 만든 동선은 극 흐름을 끊는 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젊은 성악가에 대한 찬사는 반란군 특무상사 지창회 역을 맡은 테너 최호준에게 넘겨야 할 듯 싶다. 강인하면서도 빛깔이 선명한 열정을 소리에 담아 보여 준 점이 호감을 갖게 했다. 이기균 지휘자가 음악의 결을 살리며 CMK 교향악단을 지휘했다. 포천시립합창단과 베아싱어즈가 합창의 힘을 살렸다.

한편, ‘대한민국 오페라페스티벌’은 <손양원>에 이어 국립오페라단의 창작오페라 <처용>을 선 보일 예정이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고려오페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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