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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기마랭 총성’, 춤 이상의 악몽과 강렬한 침묵
기사입력 :[ 2013-06-10 17:14 ]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매우 정치적인 연극 혹은 무용 <총성>이 시작되면 섬광처럼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7명의 무용수들을 만날 수 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누군가의 팔이 불쑥 튀어나와 여자 무용수의 귀를 혹은 입을 틀어막는다. 곧 날카로운 칼날이 무용수의 목을 겨누기도 한다.

배경 음악도 없이 오래된 영사기에서 나오는 흘러간 소음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캄캄한 무대 위에선 계속 뭔가가 벌어졌다. 그리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천 밑으로 ‘스스르’ 밀려 들어가 존재를 의심 받던 무용수처럼. 불안한 관객의 시선은 절대 자유롭지 못했다.

또 한가지 예기치 못한 공격이 계속됐다. 불안함을 배가 시키듯 계속 벽에 걸린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등 액자가 떨어지고, 컵이 깨지고 의자가 부서졌다. 자유의 여신상 동상도 어김 없이 산산조각이 났다. 아름다운 몸의 움직임과 긴밀한 연관성을 지닌 공연이 ‘무용’이라고 생각했던 관객들의 고정관념도 시원하게 깨졌다.

춤 이상의 그 무엇을 본 관객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무용과 연극이 결합된 무용극(dance theatre)에 대한 의미 역시 보다 확실해졌다. 또한 춤이라는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몸짓, 대사, 소리 등 인간을 표현하는 모든 것을 무용의 도구로 사용한 마기 마랭의 작품 세계를 더 긴밀하게 알게 했다.

프랑스 누벨 당스(Nouvelle Danse: 새로운 무용)를 이끈 안무가 마기 마랭(Maguy Marin)이 2003년 내한 이후, 10년 만에 자신이 이끄는 마기 마랭 무용단(Compagnie Maguy Marin, 1978년 창단)과 함께 한국을 찾았다.

지난 6월 5일부터 7일까지 LG아트센터 무대에 오른 마기 마랭 무용단 <총성(Salves)>은 무대 위의 저항이 그녀의 통찰력(지성)과 만나 폭발하는 순간을 담아냈다. 62세 예술가의 눈에 비친 오늘날의 유럽을 엿볼 수 있게 했다는 점에서 더욱 인상적이었다.

2010년 프랑스 리옹 무용비엔날레에서 초연된 이 작품은 새로운 무대 언어로 갈채를 받았다. 특히 후반 10분 동안 펼쳐지는 최후의 만찬은 웃을수도 그렇다고 울 수도 없게 만들었다. 생명의 빛이 환하게 비치듯 밝아진 무대에서 무용수들은 만찬을 준비하는 가 싶더니 곧 밀가루, 찰흙, 물감 등을 상대 무용수와 무대에 흩뿌리며 새로운 장면을 연출했다. 공중엔 미니 헬리콥터도 띄웠다.



폭력이 난무하는 병든 사회에 대한 자포자기의 심정인지, 그도 아니면 최후의 축하인지, 또 다른 의미인지는 관객 나름의 몫으로 남겨졌다.

첫 장면에서 볼 수 있는 가느다란 실로 연결된 일곱 남녀의 공동 운명체, 중반에 볼 수 있는 의자 장면(일렬로 앉아있는 사람들 사이로 새로운 한 사람이 끼어들면 끝에 앉아있는 한명이 의자에서 바닥으로 떨어진다)의 불안감 등이 계속 밀려오며 여러 감상에 젖게 했다.

탈출구를 찾을 수 없는 암울한 유럽의 현실과 미래는 그 어떤 화려한 영상보다 완벽하게 전달됐다. 악몽 같은 난장판 속에 실제로 내던져진 듯 천천히 다가오는 충격에 몇몇 관객은 침묵 이외의 답을 찾지 못하기도 했다.

스페인 이민자의 딸에서 누벨 당스(Nouvelle danse, 움직임을 위한 움직임 예술이 아닌, 움직임의 연극 그리고 ‘시성’에 집중하는 새로운 무용)의 흐름을 주도한 인물인 마기마랭의 작품은 독일 현대 무용의 독특한 장르인 탄츠테아터(Tanztheater)에 비견될 만한 것으로 간주되곤 한다.

춤과 연극을 결합했다는 점에서 피나 바우쉬와 비교되는 마기 마랭은 작품 속에 영화 및 문학의 연계(초현실주의 작가와 부조리 작가들과의 연계), 말이나 대사의 활용, 작품 주제에 있어도 연극적인 성향을 짙게 드러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1997년 서울연극제에 초청되어 연극 관객들을 매료시켰던 <바르떼조이(Waterzooi)>에도 연극적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며, 라틴 아메리카의 역사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박수만으로 살 수 없어(2002)>(2003년 서울세계무용축제(시댄스‘SIDance’))에도 그녀의 작품 특징이 잘 드러나 있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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