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로의 결혼’ 소프라노 정혜욱 [인터뷰]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돌직구 인터뷰] “전 오페라 가수보다 오페라 배우가 되고 싶어요. 가수라면 노래 잘하는 건 당연하잖아요. 거기에 더해 연기 역시 잘 살려내고 싶어요. ‘오페라’란 말을 들으면 ‘재미없다’는 생각을 먼저 떠올리는데, 제 이름을 듣고 ‘그 사람이 하는 오페라는 재미있으니 가고 싶다’라고 반응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죠. 그러기 위해선 캐릭터의 인간적인 면을 보여줘 공감을 이끌어 내야 한다고 봐요.”

뉴 서울오페라단(단장 홍지원)의 <피가로의 결혼>이 오는 15일과 16일 양일간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른다. 발랄하고 사랑스러우며 재치 있는 아가씨 수잔나 역을 맡은 소프라노 정혜욱을 만났다. 연출 윤상호, 지휘 박지운(오케스트라 HYUM), 마에스타 오페라 합창단이 함께하는 이번 작품에선 소프라노 강혜정과 같은 역으로 무대에 선다.

■ 연극같은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천재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음악, 극작가 다 폰테의 탁월한 풍자와 유머가 합쳐져 오페라 부파의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피가로와 수잔나의 주인인 알마비바 백작이 백작부인 로지나에게는 관심을 두지 않고 오히려 백작부인의 시녀이자 피가로의 약혼자 수잔나에게 눈독을 들이며 벌어지는 일을 유쾌하게 풀어냈다. 백작은 수잔나를 차지하기 위해 초야권을 발동하려고 하지만 결국 피가로의 기지로 백작부인에게 마음을 되돌리게 된다는 내용이다.

단순한 흥미 위주의 희극을 넘어 재치가 빛나는 <피가로의 결혼>은 귀족(남성)과 서민(여성) 두 계급의 대립을 통해 서민의 승리와 귀족의 패배라는 내용을 강하게 표현했다. 또한 자유와 평등을 갈망하는 사회의식 및 휴머니즘이 더해 이 오페라를 아주 특별한 오페라 부파로 자리매김 하게 만들었다.

소프라노 정혜욱은 지난해 평단과 관객 모두의 사랑을 받은 고양문화재단 <피가로의 결혼>에 이어 다시 한번 ‘수잔나’로 관객을 만난다.

-고양 <피가로의 결혼>으로 정혜욱이란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아직은 배워가는 단계입니다. 장영아 연출님, 정은숙 선생님, 김덕기 지휘자님 등 선생들이 절 좋게 봐 주셔서 더 감사해요. 관객 평도 좋게 나와서 저 역시 기분 좋았고요.”

-선생님들은 어떤 점을 좋게 봐 주셨는가
“밝고 솔직한 점, 그리고 열심히 하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신 것 같아요. 당시 제 동선 뿐 아니라 다른 출연진 동선도 다 알고 있을 만큼 작품에 빠져들어서 지냈어요. 조연출이 놀랠 정도였죠. 그 분들이 많이 믿어주셔서 <피가로의 결혼>을 더 잘 할 수 있었어요. 이번 오페라도 보러 오신다고 하셨는데, 더 열심히 해야 할 것 같아요(웃음)”

-이번엔 윤상호 연출과 새롭게 작업하는데, 연출의 디렉션은 무엇인가
“연출 선생님은 좀 더 연극처럼, 드라마 보듯, 앞으로 나와 세밀하게 캐릭터를 보여주길 원하세요. 작품에 대한 분석 역시 섬세하세요.”

-작년과 비교해서 ‘수잔나’를 표현하는 데 있어 스스로 달라진 점이라면?
“사실 작년에 연습 과정이 너무 힘들었어요. 다시 하면 어떨까 걱정도 있었는데, 막상 또 하니 너무 재미있네요. 작년보단 ‘수잔나’란 캐릭터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작년엔 열심히 하는 것에 신경 썼다면 이번엔 더 깊게 생각한다고 할까요. 수잔나의 마음 뿐 아니라 백작, 그리고 백작부인, 피가로, 케루비노까지 상대방의 입장에서도 극을 바라 봐 ‘수잔나’란 캐릭터를 더 선명하고 명확하게 구축해 나가고 있어요.”



-모차르트 오페라가 쉽지 않다는 말도 있던데
“제가 생각해도 푸치니, 베르디 보다 모차르트 작품이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모차르트 오페라는 박자, 악센트, 발음 이 모든 게 다 정확해야 되요. 악보대로 정확하게 하지 않으면 다 무너지게 되거든요.”

-피가로 역 바리톤 성승민과 호흡은 어떤가
“이전에 <마술피리> 작품을 함께 하면서 친해진 선생님인데, 너무 재미있으세요. 단장님도 동글 동글한 제 얼굴과 성승민 선생님 얼굴이 피가로와 수잔나 그림 상으로도 너무 잘 맞다고 하시던데요. 또 성 선생님이 친근하게 ‘누님 누님’ 하면서 절 편하게 해줘요.”

-진짜 연인 사이처럼 보일 것 같다.
“제가 여학교만 나와서 남자들과의 시선을 맞추는 게 편하지가 않는데, 이번 상대 역 가수는 편해요. 함께 식사 자리도 만들어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서로를 이해하려고 노력했어요. 그 뒤엔 확실히 액팅이 더 편해지더군요. 저희끼리는 연습에선 아닐지라도 실제 무대에선 ‘진짜로 뽀뽀하자’고 말하기도 했어요.(웃음) 사랑 하는 척, 뽀뽀 하는 척 보이는 게 오히려 관객의 집중을 깰 것 같았거든요.”

-A팀과 B팀 느낌이 확실히 다를 것 같다
“바리톤 김진추-소프라노 강혜정-바리톤 한경석 선생님 팀과 저희 팀(바리톤 성승민-소프라노 정혜욱-베이스 바리톤 류현승)이 좀 다르실 겁니다. 저희는 그림 상 좀 더 ‘야하게(?) 가자’는 입장이라면 상대 팀들은 좀 더 담백하게 가실 것 같아요. ‘수잔나’만 이야기 하자면, 혜정이는 우아한 수잔나에 가깝고 저는 깜찍한 수잔나로 보인다고 하더군요. 연출님은 상대방의 좋은 점을 서로 나눠 가지라고 말씀해주시기도 했어요. ”

-힘든 장면은 없나
“3막에 백작부인의 계략에 따라 백작을 유혹하는 장면이 조금 힘들어요. 류현승 선생님이 워낙 점잖으신 분이라 제가 과감하게 연기 하는 걸 주저하게 되는 면이 있더라고요. 또 캐릭터 상으로 단순히 백작을 유혹하는 게 아닌 사랑하는 피가로에게 생기는 죄책감을 함께 표현해야 하는 점도 쉽진 않네요.”

-어떤 ‘수잔나’를 보여 주고 싶은가
“섹시하고 발랄하고 영리하고 깜찍한 수잔나를 보여주고 싶어요. 러블리한 첫 장면부터 마지막 소리까지 진짜 사랑하는 연인처럼 관객이 느낄 수 있도록 해야죠.”



■ 오페라 배우 정혜욱

소프라노 정혜욱은 선화 예술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상명대 음악대학 성악과 및 이화여대 대학원 성악과를 졸업하였다. 그리고 뒤 늦은 나이엔 서른 넷에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났다.

그 후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이탈리아 테너 ‘카를로 베르곤지’로 부터 '매우 음악적이고 아름다운 목소리'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탈리아 페르모 국립음악원을 수석 졸업하고 벤냐미노질리 아카데미아 및 오지모 아카데미아와 페스카라 아카데미아를 수학한 만학도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국내 활동은 2008년 예술의전당 기획 오페라 <마술피리>를 시작으로 <돈 죠반니>, <코지 판 뚜떼>, <라보엠>, <사랑의 묘약> 등을 선 보인 바 있다. 또한 프리마돈나 앙상블, 예울음악무대, 이태리가곡 연구회 <노이> 등에서 활발히 활동 중이다
-MBC 아역 탤런트로 먼저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는 말을 들었다
“'조리 조리‘라는 만화가 주제곡도 부르고, 당시 유행했던 어린이 드라마 <호랑이 선생님> 에도 출연했어요. 선화예중을 다닐 당시였는데, 학교에는 금기시하는 게 있어서 드라마 출연을 알리지 않고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지금도 물론이지만 당시 최고의 가수였던 조용필을 쫓아다니는 아이 역할을 하게 됐는데, 그 사실을 학교에서 알게 돼 배우 생활을 접었어요.”

-선화예중에서 예고까지 계속 예술고등학교를 다녔다. 기억나는 선생님이 있다면
“선화예고 음악부장이었던 유병무 선생님이 저에게 ‘조수미 같은 음악 빛깔이 있으니 열심히 해라’라는 말을 해 주신 적이 있어요. 유병무 선생님은 소프라노 조수미의 스승으로도 유명하시죠.”



-늦게 유학을 갔는데 그 이유는 뭔가
“성악과를 졸업한 뒤 육아 때문에 한 참을 쉬었어요. 너무 어렸을 때부터 해 오던 거라 지겨웠던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어요. 그러다 30대가 넘어 아이를 데리고 이태리로 유학을 떠났어요. 우선은 학위를 따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정말 죽어라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딸려 있으니 쉽지가 않았어요. 당시 이태리에 왔던 문혜원 선생님(연세대 교수)이 ”안 되겠다“ 면서 제 아들을 한국으로 데려갔어요. 공부에 전념하라는 거였죠.”

-하나에 빠지면 그것만 생각하는 성격인가 보다
“기억나는 일화론 제가 탤런트 견미리 언니랑 친한데, 언니랑 차를 타고 가는데 제 아들이 배가 아프다고 하는 거였어요. 한참 <피가로의 결혼> 연습 시기라, 운전하면서도 계속 그 작품 노래를 부르곤 했거든요. 그래서 아프다는 아들에겐 ‘어떡하지’라고 걱정스런 말투를 건네면서도 바로 오페라 연습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됐어요. 그랬더니 언니가 ”넌 네 아들이 아프다는데도 차에서 연습 중이냐“며 제 흉내를 내더라구요. 엄마로선 그러면 안 되는데, 제가 하나를 시작하면 그것 밖에 못하는 성격입니다. 만학도로 더 열심히 해야죠.”

-뒤늦게 ‘오페라’로 돌아 와 더 애정이 많을 것 같다. 오페라 가수로서 꿈이 있다면
“전 오페라 배우가 되고 싶어요. 뭘 해도 ‘정혜욱’이 보이기 보단 ‘캐릭터’로 기억되는 배우 있죠. 그런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되면 재미없는 오페라가 아닌 보고 싶은 오페라가 되지 않을까요”

-연기가 뛰어난 국내 소프라노가 많지 않은 것 같다.
“연출님이 그랬어요. ‘소리는 물론 연기가 되는 소프라노 영역을 뚫어봐’라고. 많은 소프라노들이 아름답게만 보이려고 노력하는데 전 그렇게 되면 관객과의 공감도는 떨어진다고 봐요. 무대에서 더 망가지고 재미있는 모습을 많이 보여 줘 인간적인 성악가로 기억되고 싶어요.”

-오페라 배우로 인정하는 성악가가 있나
“음, 지난 해 함께 공연했던 바리톤 김재섭 선생님이요. 정말 무대에서 연기 하시는 것 볼 때마다 놀래요. 너무 잘 하시거든요. 이번 <피가로의 결혼> 끝나고 오산에서 또 한 번 <피가로의 결혼>을 하게 됐는데, 그 작품에서 다시 만나게 됐어요. 캐릭터 연구 면에서 대단하신 분이세요.”

-아역 탤런트 경험 말고 연기적으로 도움 받은 게 있나
“제가 춤을 좋아해서 밸리댄스랑 재즈댄스를 배웠어요. 몸이 풀어지는 게 연기에도 많은 도움이 되더라구요. 연극에도 관심이 많구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무대가 스승이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같은 작품이라도 작년에 했던 <피가로의 결혼>이 다르고 올해 <피가로의 결혼>이 다른 것 처럼, 실전 무대에서 감각을 익혀나가는 것 같아요.”

-추후 계획이 있다면
“올 10월에 예울음악무대에서 주최하는 베르디 오페라 갈라 무대의 사회를 맡게 됐어요. 배우 서태화씨랑 공동 사회를 보는데, 가수로서 무대에 서는 것과는 또 다른 재미가 있을 것 같아요.”

소프라노 정혜욱은 15일 토요일 7시 단 1회 공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루 하루 노래하는 게 너무 즐거워요. 수잔나 인 척 하는 게 아닌 진짜 사랑스러운 수잔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사랑과 지혜, 재치와 해학 및 리얼리티가 살아있는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기대해주세요.”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정혜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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