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로의 결혼’ 바리톤 한경석 [인터뷰]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돌직구 인터뷰] 2013년 뉴서울오페라단(단장 홍지원)이 제작하는 <피가로의 결혼>은 원작을 충실히 재현하면서도 사랑의 소중함과 이해 용서 및 화합을 유쾌, 상쾌, 통쾌하게 보여주는데 집중한다. 6월 15일과 16일 양일간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만날 수 있다.

백작역 바리톤 한경석은 바리톤 김진추(피가로), 소프라노 강혜정(수잔나), 소프라노 이지연(백작부인)과 함께 짝을 이뤄 15일 낮 공연과 16일 무대에 오른다. 또 다른 백작 류현승, 피가로 성승민, 수잔나 정혜욱, 백작부인 이원신은 15일 저녁 무대를 책임진다.

■ 5년을 기다린 대화

-꼭 한번 만나고 싶었는데 좀처럼 기회가 생기지 않았어요. 주변 성악가들에게 한경석이란 이름을 말하면 다들 첫 마디가 ‘너무 좋으신 분이다’고 하던데요
“감사합니다. 항상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무대 위에서의 모습과 무대 밖에서의 모습 모두가 좋은 성악가란 점이 더욱 궁금증을 갖게 했습니다. 매번 ‘정성스런 공연’ 보여주신 점 역시 기억납니다.
“최선을 다 하는 공연인가 아닌가는 성악가 본인 뿐 아니라 관객들이 더 잘 알 거라 생각해요. 연습 역시 이미 한 공연이다, 혹은 나이가 있으니 마음대로 빠져도 된다는 생각은 아니라고 봅니다. 선배가 될수록 더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요.”

-성격 자체가 온화한가?
“저도 사람인지라 불같은 면도 있습니다. 다만 자제하고 사는 거지요. 특히 오페라 무대에 서는 것은 남의 삶을 사는 것이잖아요. 각 작품의 주인공 스펙트럼은 다 다르죠. 그렇다면 그걸 표현하는 입장에선 가장 평정한 상태에서 주인공의 성격을 찾아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파워게임’ 위에 선 백작의 매력 선 보일 것”

천재 모차르트의 아름다운 음악과 극작가 다 폰테의 탁월한 풍자와 유머가 합쳐진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은 내용상 로시니의 오페라 <세빌리아의 이발사> 속편이다. 피가로와 수잔나의 주인 알마비바 백작이 수잔나에게 초야권을 행사하려고 하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유쾌한 음악과 희극적 터치로 보여주는 작품.

-이번 <피가로의 결혼>의 특징이라면
“윤상호 연출님, 박지운 지휘자님 모두 상당히 의욕적이세요. 텍스트 분석은 물론 드라마 안에 담긴 재미 역시 잘 찾아내서 말씀 해주세요. 각 캐릭터의 심리적 변화, 관객과 소통하는 말의 뉘앙스에 중점을 두고 하고 있습니다.”

-백작이란 캐릭터는 어떻게 잡았나
“시대적 배경과 문화적인 면, 백작의 내면까지 여러 가지를 연구했어요. 연출은 정신병이 있는 백작을 요구하셨어요. 백작의 내면적 색깔이 상당히 복잡한데, 그걸 단순히 소리로만 보여주는 게 아닌 연기적으로도 보여 줄 수 있도록 신경 쓰고 있어요.”

-극 중 백작은 ‘초야권’을 발동하려고 한다. 하지만 관객은 이 장면을 호색한 의미 이상으로 해석하지 않기도 한다. 백작 입장에선 이 장면을 어떻게 해석했나
“작품의 배경이 되는 18세기 초 당시 사회에서 백작의 힘은 막강했어요. ‘성적으로 즐긴다’는 의미보단 백작끼리 ‘초야권’을 두고 자신의 힘을 과시한 게 더 크다고 봤어요. 쉽게 말해 ‘한경석 넌 못했어? 그래 그럼 안 놀아’ 이렇게 반응을 하게 되는 거죠. 백작이 그런 말을 듣고 왕따를 당했다면 얼마나 충격이겠어요? 일종의 밀려선 안 되는 ‘파워게임’ 같은 거죠. <피가로의 결혼>은 모차르트가 코믹하게 풀어 해피엔드로 끝나긴 하지만, 내면을 뜯어보면 백작의 자존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미지로 봤을 땐 한경석이 그려 낼 섹슈얼한 ‘백작’이 잘 상상되지 않는다. 바리톤 류현승 선생님이 보여 줄 백작과 많이 다를 것 같다.
“제가 보여 줄 백작 색깔을 설명하긴 힘드네요. 연습을 보신 분들이 류현승 선생님 백작 색깔이 좀 더 느끼하다고 하네요(웃음)

-그렇다면 어디에 신경을 쓰고 있나
“음악적인 뉘앙스를 중요시하게 여깁니다. 흔히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하는데, 대가들이 감동을 주는 이유 역시 거기에 있어요. 뉘앙스가 선명해지면 볼거리가 많아지고 메시지 역시 선명해진다고 봅니다.”



■ 수학을 잘 하는 음악인 한경석

바리톤 한경석은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성악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재학 중 도독하여 슈투트가르트(Stuttgart) 음악대학 성악과와 오페라과를 졸업했다. 그 후 독일 슈베린(Schwerin) 국립 오페라단 전속 주역 바리톤으로 활동했다.

국내에서 오페라 <마농 레스코>,<돈 죠반니>,<코지 판 뚜테>,<피가로의 결혼>,<황제와 목수>,<카르멘>,<라보엠>,<피델리오>,<오텔로>,<탄호이저>,<돈카를로>,<투란도트>,<라트라비아타>,<세빌리아의 이발사>,<나비부인>,<팔리아치>, 창작 오페라 <지귀> 서울시오페라단 <연서> 등 수 많은 오페라에서 주역을 맡았다. 올 하반기엔 충무아트홀 무대에 오르는 <토스카>에서 ‘스카르피아’로 열연 할 예정이다.

한경석은 최근 대한민국오페라 페스티벌 참가작 서울오페라 앙상블의 <운명의 힘>에서 ‘돈 카를로 역을 맡아 호평 받은 테너 한윤석의 친형이기도 하다. 2006년엔 베세토오페라단(단장 강화자)의 <카르멘>에선 연적 돈 호세와 에스카미요로 형제가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그의 반려자는 소프라노 신윤정. 음악이란 끈으로 연결된 가족이다.

-언제부터 성악가가 되고 싶었나
“오디오 마니아라 원래 꿈은 공대에 들어가 기계를 만지는 거였어요. 하지만 '색약'이라는 이유로 공대에 진학할 수 없었어요. 그러던 중 음악에도 관심이 있어 오페라 콩쿠르에도 나가고 유학도 가면서 성악가가 직업이 됐어요.”

-성악가의 삶이 행복한가
“지금은 행복합니다”

-공대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는건가
“한동안 있었습니다. 독일 유학을 가서도 저와 마인드가 맞는 공대 친구들과 많이 어울렸어요. 어떻게 보면, 음악도 수학을 잘 해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음악이란게 감정적으로만 대하기 보단, 철저한 타이밍과 수학적 계산이 필요한 작업이거든요. 현재는 제가 하고 싶은 오페라 및 연주 활동 하면서 살고 있어 좋습니다.”

-테너 한윤석과 형제다. 그런데 외모 상으론 닮지 않았다
“많이들 닮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저희 형제가 어머니 아버지를 따로 닮은 편입니다. 그런데 조금 더 자세히 보면 비슷한 이미지가 보인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최근에 공연 된 오페라 <운명의 힘>을 보면서는 형제의 비슷한 면이 보이기도 했다. 공연은 봤나
“2013 대한민국 오페라페스티벌 작품 중 동생이 나오는 <운명의 힘>밖에 보지 못했어요. 제 작품 연습 때문에 다른 작품은 챙겨보질 못했네요. 다른 오페라 보는 것도 참 좋아하는데, 시간이 되질 않았어요. 이번에 일정 보면서 그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오페라 페스티벌이 거의 일주일에 한 편 꼴로 연달아 무대에 올려지는데 과연 이 모든 작품을 제대로 챙겨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매 주말마다 오페라를 즐기러 가기는 힘들지 않나요”

-맞다.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참가작 다 챙겨 본 한 명으로서 5월과 6월 일정 소화하기가 쉽지 않았다
“제주도 휴양지에 온 듯 아예 연속으로 오페라를 관람할 수 있는 게 아닌 이상 일주일에 한 편씩 새 작품이 올려지는 건 너무 타이트 하다고 봐요. 관객 입장에서도 일주일에 한 번씩 만만치 않은 오페라 티켓 값이 나가는 건데 쉽게 즐기기도 어렵고요. 체력적으로도 쉽지 않아요.”

-오페라 페스티벌 아니면 이렇게 오페라를 끊이지 않고 보는 경우도 흔치 않다. 여름 되면 오페라 작품을 만나기도 쉽지 않다
“유럽처럼 오페라가 1년 내내 올라가면 좋을 텐데, 국내 상황은 그렇지 못하죠. 국내에 사립 오페라 단체들이 정말 많아요. 같이 힘을 합쳐 대극장용 오페라, 소극장용 오페라를 번갈아 무대에 올려 오페라를 활성화시키는 방안을 마련했으면 하는 생각도 듭니다. 뜻이 맞고 극장을 함께 나눠 쓸 수만 있다면 꼭 어려운 일은 아니라고 봅니다.”



■ 무대에 서면 한 없이 커 보이는 성실한 오페라 가수 한경석

바리톤 한경석은 무대 밖에선 비교적 왜소한 체형인데 무대에만 서면 한 없이 커 보이는 가수이다. 한번 보면 쉽사리 잊기 어려울 정도로 존재감을 아로새기는 가창과 연기력을 보여줘 자연스럽게 관객을 제 편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어떤 가수가 되고 싶나
“성실한 오페라 가수가 되고 싶어요. 한국에선 ‘성실하다’는 의미가 고지식하다는 안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감도 있지만, 전 모든 작품을 성실하게 대하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최선을 다해 준비하고 무대에 올라 최선을 다하는 가수가 아니라면 제 자신 뿐 아니라 관객에게 부끄러울 것 같습니다. 오페라는 시간예술입니다. 그래서 순간적 실수는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딱 보면 ‘성실히 하는구나’ 혹은 ‘그냥 하는구나’는 알 수 있다고 봐요.”

-구체적으로 어떤 자세로 임하나
“예전에 독일에서 오페라 <탄호이저> 공연을 소프라노 헬렌 도나트(Helen Donath) 선생님과 함께 한 적이 있는데, 그 분에게 많이 배웠습니다. 당시 60세가 넘은 고령이셨는데, 항상 제 시간에 오셔서 연습에 임하셨어요. 또 ‘새로운 프로덕션과 공연을 하면 노래 역시 새로 하는 것처럼 해라’는 말씀도 하셨어요. 플라시도 도밍고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그 분 역시 ‘이미 많이 해 본 작품이라도 새롭게 만난 작품 대하듯 매번 공부를 한다’고 하시더군요. 그 분들 말씀에 공감합니다.”

바리톤의 전성기인 40대 후반에 접어든 한경석은 성실함을 실천하고 있는 성악가 중 한 명이다. 인터뷰 말미 “한국에서만 있는 잘못된 관행들이 허용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했던 거니까 나중에 잠깐 해도 돼’ 이런 태도는 안 됩니다. 이미 했던 작품이니 더 열심히 하지 않으면 그 동안 못 봤던 것들이 보이지 않아요. 열심히 하지 않을 수가 없죠. 그걸 보여 줬을 때 스스로 뿐 아니라 관객들도 느낄 수 있다고 봐요. 그리고 건전한 비판이 있어야 건전한 공연이 나올 수 있다고 봅니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한경석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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