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일’, 세 방울의 눈물보다 더 소중한 것

[엔터미디어=정석희의 TV 돋보기] “내가 죽은 다음, 나를 위해 순도 백퍼센트의 눈물을 흘려줄 사람이 과연 있을까?” 누구나 SBS <49일>을 보는 동안 한번쯤은 이런 생각을 한다. 내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진심으로 울어줄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나 역시 곰곰이 꼽아봤지만 솔직히 세 사람씩이나 댈 자신이 없다. 가족들도 울기야 울겠지만 진정으로 내 죽음을 애통히 여기기보다는 자기 연민이 더 크지 싶다.

강민호(배수빈)와의 결혼을 앞두고 뜻밖의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신지현(남규리). 그러나 실은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니었던지라 현대판 저승사자인 스케줄러(정일우)로부터 한 가지 제안을 받게 된다. 가족을 제외하고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세 사람의 눈물을 49일 안에 받아 오면 다시 회생할 수 있다나? 여유롭고 품성 좋은 가정에서 자라나 스물일곱 해를 별 걱정 없이, 별 다툼 없이 살아온 지현이는 이보다 쉬운 일은 없다고 자신했다.

적어도 헌신적인 약혼자 민호와 서로 속속들이 우정을 나눠온 신인정(서지혜)만큼은 슬피 울고도 남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니까. 하지만 송이경(이요원)의 몸을 빌려 그녀가 목격한 진실은 너무나 엄청났다. 어이없게도 민호와 인정이 결탁해 아버지 신일식(최정우) 사장의 재산을 노리고 있었던 것.

사람은 살면서 한번쯤은 크든 작든 이처럼 누군가에게 뒤통수를 맞는 경험을 한다. 내 앞에서는 마치 제 살이라도 베어 먹일 듯 살갑게 굴지만 뒤돌아서서는 딴 소리를 하는 이들이 알고 보면 부지기수가 아닐는지. 허나 세상 물정 모르던 지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 잔인한 현실이지 싶다. ‘모르는 게 약이다’ 혹은 ‘아는 게 병이다’라는 옛말처럼 차라리 몰랐던 게 백번 천 번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어쩌랴. 이미 청천벽력 같은 두 사람의 배신을, 그리고 아버지 또한 위기에 빠졌음을 깨닫게 된 것을. 단순히 되살아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두 사람을 응징하기 위해서라도 세 사람의 눈물이 필요해진 지현이의 49일은 안타깝게도 속절없이 흘러만 간다. 그러던 찰라 다행히 지현을 진심으로 그리워하는 한강(조현재)이 눈물을 흘려주긴 했지만 남은 십여 일 동안 과연 울어줄 사람이 두 사람씩이나 생길지 난감하기만 하다.




그런데 의외로 사고무친인 송이경에게 진심으로 울어주는 사람이 생겼다. 가족도 아닌, 연인도 아닌 생판 남인 지현이가 이경의 외로운 처지를 딱하게 여겨 펑펑 눈물을 쏟은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경이가 못 잊어하는 송이수를 찾아주려고 백방으로 애를 쓴 끝에 결국 이수가 스케줄러라는 사실을 알아내기까지 한다. 49일, 하루하루가 너무나 소중한 지현이가 이경을 위해 시간을 사용했다는 것이 뜻 깊다.

처음에는 지현이가 자신의 일을 해결하고자 누군가를 이용한다는 것이 마뜩치 않았다. 이경의 몸을 빌린 지현이로 인해 삶이 뒤죽박죽됨은 물론 한시반시 제대로 쉴 수가 없으니 몸이 어디 남아나겠는가 말이다. 하지만 역시 긍정의 에너지가 넘치는 지현! 누구보다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남을 위해 마음을 쓸 줄 아는 지현이가 참으로 기특하지 않은가. 하기야 따지고 보면 이경이도 지현이게 크나큰 빚이 있다. 찻길로 뛰어 들어 자살을 기도한 이경이로 인해 지현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던 것이니까.

어쨌거나 자신을 위해 누군가가 흘려줄 세 방울의 눈물도 중요하지만 그 못지않게 지현이가 이경을 위해 흘린 눈물 또한 소중하다. 회생의 진정한 조건은 어쩌면 세 방울의 눈물이 아니라 지현으로 인해 바뀌어 나갈 이경의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 뒤 5년이라는 시간을 죽은 듯 살아온 이경에게 다시 살아난 지현이가 생의 의지를 불어 넣어주길 기대해본다. 이 시점에 또 다른 상념에 젖는다. 나는 누군가를 위해 순도 백퍼센트의 눈물을 흘리게 될까?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entermedia.co.kr
그림 정덕주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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