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간다’ 누군가는 비웃지만 진심은 통한다

“누군가가 (한국인 대표로) 저희를 뽑아 준 건 아니잖아요. 하지만 한국인으로 처음 출전하는 거잖아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제 마음만은 국가대표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서 뛰겠습니다.”
- SBS '우리가 간다'에서 백성현의 한 마디

[엔터미디어=정석희의 그 장면 그 대사] 며칠 전 방송된 SBS 파일럿 프로그램 '월드 챌린지-우리가 간다'. 영국에서 열린 울색 레이스(Woolsack Race)에 참가한 멤버 중 막내 백성현의 비장한 다짐을 듣고 있자니 나 또한 두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따지고 보면 양털 포대를 짊어지고 가파른 40도 경사를 오르내리는 지극히 단순한 경기가 아니던가. 그러니 멀리 유럽에서 열렸다지만 기껏해야 동네잔치 밖에 더 되느냐, 우리나라로 따지면 ‘봉평 메밀 축제’나 ‘벌교 꼬막 축제’에 나가 수선을 떠는 격이 아니냐며 비웃는 이가 있을 수도 있겠다. 또 외화 낭비라는 지적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찡하게 가슴에 와 닿았던 건 그만큼 간절한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손에 땀을 쥐는 정도까지는 아니어도 나처럼 승리를 기원해준 시청자들, 꽤 많았지 싶다.

개인전 참가로 기력을 죄다 소진해버린 백성현이 다시 단체전에 투입되어 오르막을 힘겹게 올라야 했을 때는 마치 국제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우리나라 선수를 보는 양 안타까운 심정이었으니까. 키 크고 다부진 체격의 현지인들과 겨루는 상대적으로 왜소해 보이는 우리 청년들. 어찌 응원을 하지 않을 수 있으리. 그리하여 마지막 주자 서지석이 역전에 성공하였다가 체력이 고갈돼 결국 골인 지점 몇 미터를 남겨놓고 주저앉고 말았을 때는 절로 격려의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는데 “넘어진 순간에는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어요. 제가 멈췄잖아요. 그냥 아무 생각도 안 들더라고요. 미안한 마음 밖에.”라며 자책하는 서지석에게 이런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 잘했어! 최선을 다했잖아? 그럼 된 거야. 어느새 그들과 한 마음 한 뜻이 된 것이다.

동생들이 힘겨워하는 모습에 끝내 눈시울을 적시고 만 큰 형님 윤태영, 혹여 자신이 팀에 폐가 되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사기진작을 위해 애쓴 박효준, 평소와는 달라 보이는 진지한 자세로 최선을 다해준 전현무까지, 받아든 성적표는 보잘 것 없다 해도 이들 다섯이 펼친 레이스는 분명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 한국에서의 최종 기록은 5분 11초, 대회 공식 기록은 4분 37초. 그 34초를 단축시키고자 그들이 얼마만큼 사력을 다했는지 이미 우리가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역시 2013년 예능 프로그램의 정답은 ‘진정성’과 ‘새로운 얼굴’, 그리고 서로의 조화라는 생각이 든다. ‘남자들의 도전’이라는 익숙하다 못해 흔한 포맷이었지만 이른바 스타급 ‘선수’를 먼저 불러다 놓고 그때부터 틀을 짜는 방식이 아니라 확실한 틀부터 갖추고 틀에 맞는 새로운 인물을 발굴해 하나하나 채워 넣는 방식이 주효했지 싶다. 빤하지 않은 캐릭터, 그리고 그들의 관계가 빚어내는 신선함과 그에 따른 진심이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나름 ‘세계 각국의 문화를 재해석해보고 우리나라에서도 세계적인 축제가 열리길 꿈꾼다’는 목표도 있으니 금상첨화가 아닐는지.

‘무모한 도전’이라는 지난한 과거를 딛고 일어선 ‘무한도전’이야 예외지만 대부분의 예능 프로그램은 단 1회만으로도 미래가 밝을지 어두울지 대번에 판가름이 난다. MBC 예능을 부활시킨 <일밤>의 두 주역 ‘아빠 어디가’와 ‘진짜 사나이’만 봐도 그렇지 않았나. 그런 의미에서 '월드 챌린지-우리가 간다'는 기대되는 프로그램이다. 위기에 처한 SBS 예능의 구원투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꼼꼼히 부족한 부분을 보강하고 그 다섯이 다시 우리를 찾아올 날을 기다리며!

칼럼니스트 정석희 soyow59@daum.net

[사진=S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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