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허상을 잡으려다 본질을 놓친 이솝 우화 ‘개와 그림자’가 무용으로 만들어진다면? 개울물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보고 입에 문 고기를 빠뜨리는 내용을 담고 있는 이솝 우화가 국립현대무용단 홍승엽 예술감독의 손을 거쳐 무용 <개와 그림자>로 탄생했다. 우화 속 ‘그림자’는 무용 작품에서 껍데기 혹은 ‘허상적 자아’에 대한 알레고리가 된다.

지난 28일부터 30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선보인 <개와 그림자>는 시청각적 재미를 안겨 준 ‘기억의 본질에 대한 탐색 무용’으로 기억될 듯 하다.

무대 벽면을 가득 채운 것은 가벼운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진 2,200개의 기억상자들이다. 하얀 솜털 혹은 깃털, 과거의 그 어떤 물건들이 들어 있을 것 같은 이 상자들은 누군가의 기억세포들이다.

이 세포들이 우르르 무너지자, 사람의 그림자 형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축적된 기억들이 파편적으로 형태를 달리하며 무대를 채우기 시작했다. 기억의 흔적을 날리듯 연신 깃털을 날리는 여인, 빨간 색 하이힐을 손에 든 채 휘청거리며 걷는 여인, 조각난 거울을 하나 하나 전시하는 소녀, 종이를 찢는 소녀 등이 등장할 때마다 관객들은 기억의 저편으로 여행을 떠났다.

또한 거대한 치마 아래로 모여든 인간 군상들과 그 위에 서 있는 여인이 흥얼거리는 드라마 ‘마지막 승부’ 주제곡은 묘한 이질감과 애달픈 동질감을 함께 불러일으켰다

<개와 그림자>는 ‘기억상자’, ‘사진’ 등 과거를 기억하는 소품과 ‘거울’ 등의 자아를 반영하는 소품의 사용이 두드러졌다. 무용수들의 신체언어로 형상화되는 이미지들의 연결고리가 하나 하나 객석을 향해 낚시대를 드리우는 듯 했다. 이 무심한 듯 드리우는 낚시대의 미끼에 걸려든 이들은 ‘실실’ 웃음을 흘리기도 했다.

국립현대무용단의 2013년도 신작 <개와 그림자>는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에서 시작됐다. 주인공 뫼르소가 겪는 자아 정체성의 혼란을 이솝우화 ‘개와 그림자’로 연결하여 안무에 반영한 것.



무용의 전반부가 ‘기억의 축적이 과연 자아일 수 있을까’를 이야기했다면, 후반부는 '자아는 한마디로 단언할 수 없다'를 담아냈다.

13명의 무용수가 사각형 모양의 검은색 나무 패널을 움직이거나 패널로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면서 색다른 춤 사위를 그려냈다. 특히 패널의 겉을 부드러운 재질로 감싸 패널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느껴지는 가벼운 촉감이 객석까지 전달 됐는데, 이는 미로 같은 기억 속을 계속 부유하게 만드는데 일조했다.

검은 색 패널은 인물들의 달라진 상황, 조건, 환경을 상징하는 오브제로 쓰였다. 그 결과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아를 훔쳐보게 만들었다. 또한 유년시절 행복했던 기억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트럼펠린 놀이를 연상시키는 무용수들의 유희,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회의 등을 무용수의 빠르지만 볼륨을 줄인 대사와 웃음 등으로 익살스럽게 그려내기도 했다.

안무가 홍승엽이 던지는 진실한 자아에 대한 탐색, <개와 그림자>는 잠 들어 있던 시각과 촉각을 깨워 세우는 작품이다. 때론 리듬감 있게, 또 다른 한편으론 유쾌하면서도 의미 심장한 자아여행을 다녀오게 만들었다.

무용수 강요섭, 권민찬, 김모든, 김태희, 김호연, 박명훈, 박성현, 석진환, 이소진, 이수진, 이윤희, 정주령, 최희재 총 13명이 출연했다.

한편, 홍승엽 감독은 이번 작품을 마지막으로 국립현대무용단 임기를 마친다. 다음 달 28일, 국립현대무용단 제2대 예술감독으로 안무가 안애순이 취임한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국립현대무용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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