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먼 인 블랙> 배우 홍성덕 [인터뷰]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돌직구 인터뷰] 다섯번째 앵콜 공연에 돌입한 연극 <우먼 인 블랙>은 실화로 착각할 만큼 호소력 있는 스토리, 어떠한 특수 효과도 없이 오로지 빛과 소리, 배우들의 연기를 통해서만 극적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보기 드문 수작이다.

1987년 초연, 1989년 웨스트엔드 입성 후 현재까지 누적 관객 약 800만 명을 기록하며 웨스트엔드 최장기 흥행작으로 등극한 연극이다. 2007년 국내 초연부터 ‘아서 킵스’를 맡아 캐릭터와 가장 깊게 맞닿아 있는 배우 홍성덕을 만났다. 이번 시즌에서는 영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부터 <건축학 개론>까지 특유의 절제된 감정을 선보여 온 배우 김의성이 더블 캐스팅 됐다.

■ 가슴이 뻥 뚫리는 연극 <우먼 인 블랙>

영국 작가, 수전 힐(Susan Hill)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연극 <우먼 인 블랙>은 끔찍한 과거의 사건으로 수 년간 악몽과 불안에 시달리는 ‘아서 킵스’가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과거의 사건과 다시 마주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

이를 위해 배우 한 명을 고용하고, 배우는 ‘과거의 젊은 킵스’를, 중년의 킵스는 ‘과거에 그가 만났던 인물들’을 연기하며 당시 사건을 연극 무대 위에서 만들어 나간다. 이렇듯 연극은 아서 킵스’와 젊은 시절의 그를 연기하는 ‘배우’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이야기를 전달하는 극중극 구조를 취한다. 과거의 킵스를 연기하는 ‘배우’ 역할엔 김경민, 김보강이 더블 캐스팅 됐다.

-<우먼 인 블랙> 초연 배우다
“2007년 초연 땐 와이킷 탕이 연출했는데, 그때부터 현재 이현규 연출까지 계속 참여했어요. 다섯 번째 시즌입니다. 처음엔 걱정이 생기기도 했어요. 내용만 놓고 본다면 잔인하고 슬픈 내용이잖아요. 혹시 후유증 남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정이 들어서 그런지 공연이 끝나고 나면 속이 뻥 뚫려요. 오늘같이 몰입도가 좋은 날은 더 시원해요.”

-오늘 관객들 반응이 좋았다.
“그럴 때면 배우도 기분 좋아요. 그래서 오늘 함께 한 김경민 배우에게 최고란 의미로 엄지를 들어줬어요. 그랬더니 ‘아이~ 형 왜 그래요?’ 하며 웃더라고요.”

-상대 배우들에게 기운을 불어넣어주는 배우인가 보다
“기분 좋게 연습하고, 기분 좋게 공연하자는 주의입니다. 보강이와 공연 할 땐 ‘역시 보강이가 최고야’라고 말하기도 하죠. (웃음) 이렇게 사이좋게 공연하면 공연도 더 좋아져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죠. 상대 배우의 에너지가 좋아지면 시너지 효과가 생기구요”

-계속 이번 작품을 해 오고 있는데 어떤 장면이 제일 힘드나?
“연기적으론 초반에 어색한 연기를 보여줘야 하는 장면입니다. 연기 안했던 사람이 과장된 포즈와 함께 어색한 티를 내야 하는데 쉽지 않아요. 체력적으론 마차 장면이 제일 힘들구요. 땀이 제일 많이 나는 장면인데, 더블 캐스팅 된 김의성 배우 역시 이 장면이 제일 힘들다고 했어요. ”



-아서 킵스가 중간 중간 대사 없이 어둠 속에서 지켜보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이 이전하고 달라진 것 같던데
“이전 공연 땐 해설 타이밍 때도 무대를 안 보고 객석을 쳐다보고 있었어요. 그랬더니 몇몇 관객이 ‘왜 나만 쳐다보느냐. 부담스럽다’는 반응이 있었다. 다들 본인만 쳐다보고 있는 인상을 받았나 봐요. 그 뒤 이현규 연출이 꼭 객석을 쳐다볼 필요는 없다. 유연성 있게 하자고 해서 변화가 생겼어요.”

-동숭아트센터 소극장, 샘터극장, 충무아트홀블랙 등 공연장도 계속 바뀌었다
“공연장도 바뀌고 배우도 바뀌었어요. 또 공연이란 게 매번 할 때마다 다르고, 할 때마다 다른 재미가 있어요. 지난 충무 공연 땐 무대 뒤에 자리한 2층 침대를 움직이게 해 앞으로 쭉 뽑아내기도 했는데, 극장의 특징에 맞게 여러 가지 시도를 해 색다른 재미를 줬어요.”

-작년엔 동명의 영화도 개봉했다. 영화는 봤는가
“영화가 크랭크 인 한다고 할 때부터 개봉 날만 기다렸어요. 동명 영화의 후광 효과도 무시할 수 없는 거니까요.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영화를 딱 봤는데, 연극과 상관없이 재미가 너무 없었어요. 끝까지 보지 못했죠. 영화는 ‘상상’을 너무 펼쳐놓은 느낌. 해리포터로 유명한 그 배우(다니엘 래드클리프)를 보러 왔다는 인상이 강했어요.”

-연극 <우먼 인 블랙>이 영화와 다른 점이라면
“가장 큰 차이는 ‘상상력’ 아닐까요. 연극에선 ‘상상력’을 강조해요. 대사에도 나오죠. ‘저희와 같이 갈까요?”하고. 극중에 마차로 나오는 소품이 실제론 궤짝입니다. 하지만 상상을 하게 되면 마차로 느껴져요. 초연 땐 바퀴 달린 궤짝도 아니고 의자를 놓고 했는데도 마차가 달려오는 느낌을 받았다는 관객분이 많았어요. 그런 관객분 들은 연극을 너무 잘 보고 가신 분이죠.“

-공포 연극인데 고급스럽다는 평을 많이 봤다.
“저희 작품을 무서운 쪽, 공포에만 초점을 두고 보신다면 평이 안 좋을 수도 있어요. 오히려 사람 사는 얘기 쪽에 초점을 두고 보신다면 더 공감이 될 수 있을 듯 해요. 엄마가 아들 잃고, 아빠가 아내와 아들 잃고 얼마나 슬프겠어요. 또 줄거리는 다르겠지만, 누구나 자신만의 아픔이 다 있잖아요. 다만 아서 킵스처럼 꺼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치유를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죠. 마음 속 이야기를 끄집어 내는 순간 가슴이 뻥 뚫립니다. <우먼 인 블랙>은 공포와 아픔, 그리고 웃음이 있는 연극입니다. ”



■ “1년 365일 내내 연기 하지 않는 연기에 자신 있어요.”

배우 홍성덕은 91년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개관 공연인 <겨울사자들>로 정식 프로 무대에 데뷔하게 된다. 극단 로뎀 채윤일 연출에 의해 올려진 이 작품은 배우 고두심, 송채환 출연으로 화제를 모았던 연극. 그 뒤 홍성덕은 연극 <날 보러와요>, <목포의 눈물>, <거룩한 작업>,<돈 내지 맙시다>,<지워진 얼굴>, <물 속에서 숨쉬는 자 아무도 없다>,<러빙유>, <드레싱> 등의 작품에 출연했다.

-연극을 전공했나
“데뷔 초기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무대에 섰어요. 그 뒤 2001년에 전문대 연극 영상학과에 들어갔어요. ‘편입을 해 볼까?’란 생각도 했는데, 2004년에 결혼을 하게 되면서 결국 학업에 대한 욕심은 접었어요. 당시 주머니에 돈이 하나도 없이 결혼을 하게 됐거든요. 돈은 없었지만 행복한 결혼이었어요.”

-부인도 배우인가
“와이프는 결혼해서 두 아이가 생긴 뒤론 배우 활동을 못하고 있어요. 같은 배우라 그런지 제 연기에 대해 한 번도 칭찬 한 적이 없어요. 대개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서 ‘그렇게 해서 되겠어’라고 말해요. 또 이미 오랜 시간 동안 절 알아온 사람이라 남들이 모르는 버릇도 알고 있어서 그런 점도 다 꼬집어서 지적해요. 또 5년 전부터 서로 존댓말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게 상당히 좋네요. 존댓말을 쓰니 큰 싸움은 일어나지 않더군요.”

-배우 생활 20년이 넘었는데, 중간에 연극을 쉰 적은 없었는가
“2002년부터 파파프로덕션 명예단원으로 <라이어>시리즈를 쭉 함께 해 왔어요. 많은 작품엔 출연하진 않았지만 쉰 적은 없어요. 몇 년 전에 샘터 극장 앞에서 선배를 만난 적이 있어요. ‘요새 뭐하니’ 라고 물으셨는데, ‘네 라이어 합니다.’라고 말했어요. 또 얼마 뒤 그 선배를 만났어요. 똑 같은 질문을 하시고, 전 똑같은 답을 했죠. 다시 얼마 뒤 그 선배를 마주쳤는데, 질문이 달라지셨어요. ‘너 라이어 하지. 맞지’ 그래서 전 웃음으로 답했습니다.”

-이현규 연출과 각별한 인연이 있는 것 같다
“이현규 대표는 정말 고마운 친구입니다. 연극쟁이들은 4대보험이 안 되는 것 알고계시죠? 그래서 더 금전적으로 힘들어요. 혼자 몸이라면 그나마 괜찮은데, 가족들이 있잖아요. 곰팡이 피는 월세 집에서 좀 더 깨끗한 전세 집으로 옮겨야 할 때, 금전적으로 도움을 줬던 친구이죠.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이번에 처음 아서 킵스 역이 더블이 생기긴 했지만, 거의 원 캐스트로 섰다. 공연이 없는 날은 뭐 하는가
“돌이켜보니 1년 365일 내내 월요일만 쉬고 일을 했던 것 같아요. 매일 무대에 오르면서 연습실에선 차기작 연습하고. 이런 일정이 계속 됐던 거 같아요. 주말도 쉬지 못하니까 가족들에게 늘 미안하죠. 지금 마음 같아선 여행 한번 가고 싶어요. 아들도 ‘아빠, 우리도 바닷가 가고 싶어’라고 말했는데, 아직도 그 소원을 이뤄주지 못했네요.”

-매일 매일이 공연으로 시작해서 공연으로 끝나는 것 같다.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나?
“영화는 1년에 한두 편 찍고, CF도 시간과 여력이 되면 해요. 오히려 영화보다는 CF가 시간 맞추기가 쉽더라고요. 저는 게임도 못하고 특별한 취미도 없어요. 여유가 없어서 여가 활동도 못하고 있네요. 그나마 자주 하는 것은 산에 오르는 일입니다. 가까운 낙산사를 자주 올라가는데 산에 올라가면 치유가 되요. 그런데 일주일에 딱 하루 쉬는 날인 월요일만 되면 왜 이렇게 할 일이 많고 힘든지 이상해요.(웃음)”



■ ‘홍사모’를 기다리며

아날로그적 정서를 지니고 있는 배우 홍성덕의 입담은 본인의 구형 폰 만큼이나 투박하지만 매력이 가득했다.

-<우먼 인 블랙>을 보면 다들 홍성덕 배우의 연기에 대해 칭찬하더라
“하는건지 마는건지 힘을 쭉 빼고 하는 연기가 좋아요. 그래서 처음엔 관객들이 ‘저 사람이 배우가 맞나?’하는 그런 생각을 갖게 되는. <라이어>때도 그랬는데, 다른 배우들은 뭔가를 보여주는데, 전 대단하게 뭘 보여주지 않으니까 처음엔 의아해 하시는 관객분도 계셨어요. 이런 걸 생활연기라고 하나요? 내려놓고 하는 연기. 연기 티 안나는 연기, 어찌보면 그냥 하는 연기처럼 보는 연기. 그런 연기가 좋아요. 이런 연기가 나름의 매력이 있다고 봐요.”

-입담도 좋다. 중견 배우 김응수씨 처럼 토크 방송에 나가면 인기가 있을 것 같은데“기회가 없었어요. 불러주지도 않구요.(웃음) 영화도 방송 쪽 오디션도 아주 가끔 보기도 하는데, 정형화된 뭔가를 요구하시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전 형사 같지 않은 형사, 이런 역할 잘 할 자신 있는데.”

-팬클럽도 있는가
“오랫 동안 배우 생활을 하다보니 팬도 생겼어요. 절 관심 갖고 지켜봐 주는 몇몇 관객은 팬 레터나 꽃다발을 보내주시기도 해요. 하지만 대부분 멀리서 지켜보는 관객들입니다. 누군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홍사모‘ 같은 클럽을 만들어주신다면 고맙죠. 그런데 절 꾸준히 지켜봐 주시는 관객이 열 분이 되려나?(웃음)”

-요즘은 배우들이 팬들과 스마트폰으로 소통을 많이 하기도 하던데
“보시다시피 제 핸드폰이 구형입니다. 그런 쪽으론 제가 둔해요. 얼마 전엔 보강이랑 화보 촬영을 했는데, 촬영 끝나자 마자 바로 핸드폰으로 사진을 보여주더라구요. 그런 점에서는 편리하게 보이긴 했어요. 그런데 요즘에 분장실 가보면 너무 조용해요. 다들 핸드폰을 손에 들고 게임을 하든지 SNS를 하거나 하죠. 결코 좋은 풍습은 아닌 것 같아요. 사람들끼리 대화가 없어졌잖아요. 사실 지금도 인터뷰가 아닌 그냥 일반적인 만남의 자리였다면 다들 핸드폰을 꺼내놓고 각자 ‘띡띡’ 누르면서 뭔가를 하고 있었을 걸요.”

-그래도 홍성덕 배우를 조용히 지켜보고 있는 관객들은 SNS상으로나마 배우의 소식을 알고 싶어할 것 같다.
“아 그래요? 그러면 바로 핸드폰부터 바꿔야 할까요? 제가 생각보다 귀가 굉장히 얇아요(웃음)"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연극열전, 파파 프로덕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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