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2’ 이병헌 위상, 이연걸과 비교해 보니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레드: 더 레전드>는 이병헌의 <지.아이.조> 시리즈에 이은 세 번째 할리우드 영화이자, 브루스 윌리스, 존 말코비치, 캐서린 제타존스, 안소니 홉킨스, 헬렌 미렌, 메리 루이스 파커 등 초호화 출연진이 떼거지로 나오는 코믹 액션물로 관객의 기대가 집중되는 작품이다.

◆ 대량살상무기를 둘러싼 올스타청백전

프랭크(브루스 윌리스)와 사라(메리 루이스 파커)는 평이한 일상을 살던 중, 옛 동료인 마빈(존 말코비치)의 방문을 받는다. 마빈은 곧 의문의 폭발사고를 당하고, 프랭크는 불법 연행된다. 인터넷에 ‘밤 그림자’에 관한 25년 전 자료가 유출되자, 미국 정부가 이와 관련된 두 사람을 제거하려 나선 것이다. 두 사람은 레드(RED, 은퇴했지만 극도로 위험한 인물들)로서, 현역 못지않은 솜씨로 수사기관을 빠져나온다. 평범하게 살아왔지만, 비밀요원으로서의 삶을 동경해왔던 사라는 두 사람과 함께, ‘밤 그림자’의 자료를 유출한 자를 찾아 파리로 향한다. 프랭크의 옛 연인이자 러시아의 정보요원인 카자(캐서린 제타존스)는 ‘밤 그림자’의 정보를 캐내기 위해 프랭크에게 접근하여, 사라와 미묘한 신경전을 벌인다.

한편 한국의 잔혹한 살인청부업자 한(이병헌)은 프랭크를 없애라는 미국정부의 지시를 받고 파리로 온다. 그러나 격투 끝에 이들을 놓치고 자가용 비행기마저 탈취 당하자, 분노가 극에 달해 프랭크 일행을 뒤쫓는다. ‘밤 그림자’는 냉전시대 미국과 영국이 모스크바에 설치하려던 최강의 살상무기로, 이를 만든 과학자 베일리(안소니 홉킨스)는 영국의 정신병원에 수십 년째 수감되어 있다. 이를 알아낸 프랭크 일행은 베일리를 만나기 위해 영국으로 간다. 한편 영국의 정보기관은 전설의 여성킬러 빅토리아(헬렌 미렌)를 고용해 프랭크를 없애려 하는데.....

올스타청백전이 아닐 수 없다. 내로라하는 주연급 배우들이 총출동하여, 합을 맞춘다. <익스펜더블2>(2012)가 그러했듯이, 캐스팅의 성공이 이미 절반의 성공을 예약한 영화이다. ‘밤 그림자’와 구원(舊怨)을 둘러싼 플롯도 촘촘하고, 너무 무거워지지 않게 힘을 빼주는 유머도 합격점이다. 진지함과 경쾌함, 액션과 코믹의 농도가 딱 맞는다. 각기 개성이 돋보이는 캐릭터들 사이의 조화와 균형도 놀랍다. 서사의 진행속도가 빠르고, 인물들 간의 관계가 다소 복잡해보일 수도 있지만, 장르의 공식을 충실히 따르는 영화이기 때문에, 관객은 협곡열차에 몸을 맡긴 듯 영화의 상승과 하강을 즐기면 된다.



◆ 결코 밀리지 않는 이병헌, 기대이상!

한국관객으로서 가장 관심이 가는 대목은 이병헌이 어떻게 나오는가 하는 점일 것이다. 한마디로 기대이상이다. 딘 패리소트 감독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 출연했던 이병헌의 이미지를 눈여겨보았다는 말 그대로, 이병헌은 잔혹한 킬러이면서도 다소 껄렁한 매력을 지닌 ‘나쁜 놈’으로 분해 자신만의 개성을 충분히 살렸다. 분량도 꽤 많거니와 화면 속에서 배치되는 인물의 위상이 낮지 않다. 특히 호쾌한 무술액션과 완벽한 근육이 드러나는 노출장면은 이병헌이라는 배우의 매력을 충분히 보여준다.

예컨대 비슷한 캐릭터로 <익스펜더블2>에 출연했던 이연걸의 영화 속 비중과 비교해보면, 이병헌의 출연이 얼마나 성공적인지 알 수 있다. <익스펜더블2>에서 이연걸은 단독 샷을 거의 받지 못하고, 우람한 백인 배우들 에 파묻혀 ‘복잡한 기교의 무술을 하는 왜소한 동양남자’라는 인상을 줄 뿐이었다. 중화권 최고의 스타 이연걸이 할리우드 영화에 구색 맞추기 식으로 출연하여, 막내 캐릭터처럼 비춰지는 것을 목도하는 감상이 유쾌하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레드 : 더 레전드>의 이병헌은 독자적인 위엄을 지닌 캐릭터로, 다른 배우들에게 전혀 위축되는 느낌이 없다. 특히 헬렌 미렌과 함께 찍은 스포츠카 액션장면은 속도의 쾌감과 동시에 기묘한 케미스트리가 느껴진다. 두 사람은 관객의 웃음에도 크게 기여하는데, 한국인 관객만 알아들을 수 있는 이병헌의 생생한 욕 애드리브와 <더 퀸>, <엘리자베스 1세>에서 여왕 역할을 했던 헬렌 미렌이 나는 여왕이라며 미친 척하는 장면은 가장 큰 웃음의 포인트이다.



◆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야”...보고 있나?

영화는 전통적인 첩보물의 서사에 ‘위키리크스의 폭로’라는 최근의 시사를 민감하게 반영한다. 냉전시절에 미국과 영국이 대량살상무기를 모스크바에 심었다는 설정도 성찰적이다. 적과 동지가 구분되지 않는 혼돈 속에서, 자신이 속한 조직의 임무를 따르려는 카자에게 프랭크는 “이건 옳고 그름의 문제야”라고 말한다. 이해와 적대가 난무하는 와중에도, 인류적 보편성을 근거로 사고할 것을 촉구하는 것이다.

이런 식의 설득이 쉽게 통할 것이라고 믿기진 않는다. 그러나 어찌됐든 프랭크는 자신에게 원한이 있는 냉혹한 킬러 한마저도 인류를 위해 일하도록 한다. 우리가 어떤 기관이나 조직에 속해있든, 궁극적인 선택의 순간에 인류적 보편성을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다면, 세계가 최악으로 치닫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국정원 직원들, 보고 있나?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레드: 더 레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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