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정 사인회 논란’ 팬 우롱인가, 마녀사냥인가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지난 21일 논란의 중심이 된 배우는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에 출연중인 백민정이다. 20일 자신의 페이스 북에 올린 “얼굴 근육에 경련 나는 사인회 싫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자초한 것.

백민정 배우는 반나절이 지난 뒤 트위터로 사과문을 게시했다. “공연 후 체력적으로 너무 지쳐있는 상태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을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는 관객 분들의 사랑이 얼마나 절대적이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뮤지컬을 아껴주시는 분들의 마음을 가벼이 여긴 것이 결코 아님을 헤아려주시고 다시는 이런 일로 심려 끼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미 뮤지컬 팬들의 공분을 산 초기 발언으로 인해 사과문에 대한 반응은 우호적이지 않았다. 결국 사태가 심각하게 흐르는 걸 의식했는지 뮤지컬 <두 도시 이야기> 21일 저녁 공연에 출연하기로 되어 있던 백민정은 이날 무대에 서지 않았다. 대신 더블캐스팅 된 신영숙 배우가 무대에 올랐다. 제작사인 비오엠 코리아 측은 이 건에 대한 공식 입장을 아직 발표하지 않은 상태다.

‘백민정 사인회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은 두 가지다. 우선은 “배우로서 적절치 못한 발언을 했다"로 보는 시각이다. 관객의 박수와 사랑이 있어야 배우가 있고 공연이 살아 날 수 있는 건데, 그 시각을 간과한 채 푸념만 하는 배우에 대해선 싸늘한 시선을 거둘 수 없다는 입장이다.

더 나아가 배우가 이 한 몸 바쳐 죽어라 무대에서 일하는 것처럼, 관객들은 자신만의 일터에서 죽어라 일한 뒤 받은 돈으로 티켓을 사서 공연을 보러 오는 것이다. ‘누구 하나 피곤하지 않는 현대인이 어디 있겠냐’는 주의다.

바로 그들이 팍팍한 현실을 위로해주는 공연과 좋아하는 배우를 좀 더 가까이 보고 싶어, 기나긴 행렬에 동참해 어렵게 사인을 받기도 한다. 그런데 그 때 받은 사인이 가짜 웃음으로 포장한 채 정말 하기 싫어서 울며 겨자먹기로 했던 서비스였다면 그 누가 기분이 좋겠는가. 무대 위와 아래가 다른 배우라는 생각에 분명 배신감이 들었을 것이다.



사인회가 갑작스럽게 정해졌던, 이미 며칠 전부터 정해진 행사든 배우가 직업인 이상 무대 위 공연 뿐 아니라 마지막 팬 서비스까지 최선을 다해야 한다. 당시 힘들었던 마음은 겉으로 표출 할 게 아니라 마음 속으로 삼켜야 하는 게 프로다. 하지만 백민정은 한 순간 절제되지 못한 발언을 쏟아냈고, 이로 인해 관객들은 우롱 받았다고 느꼈다.

다른 시각은 이번 사태가 ‘마녀 사냥’과 다를 바 없다는 입장이다. 배우도 똑같은 인간인데 ‘3시간이란 힘든 공연을 끝마치고 난 뒤 사인회에 참여하기 보다는, 빨리 분장 지우고 쉬고 싶은 건 같은 심정 아니겠냐’는 동정론이다. 감정 노동자의 비애에 대한 공감도 한 몫한다. 여기엔 직업상 힘들다고 토로한 비공개 SNS 글을 까발려 이슈화한 기자의 문제까지 겹쳐있다.

이번 사태에 대해 일반인들은 기성용 SNS 사건, 걸 그룹 시스타의 효린이 팬사인회에서 무표정으로 일관해 논란이 된 사건을 떠 올렸을 것이다.

반면 뮤지컬 팬들은 <쓰릴 미>, <라카지> 사태와는 다르게 왜 이렇게 실시간 검색어에 뜰 정도로 후폭풍이 거센지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즉 뮤지컬 팬들의 분노가 높았던 이전 사건과는 달리 언론의 마녀사냥이 도를 넘어 진행되고 있는 것.

우선, 이 사태를 처음 폭로한 기자는 공연 담당 기자가 아니다. 문제의 사진에 함께 찍힌 배우 임혜영이 연관되면서 사건이 급속도로 커진 감이 있다. 물론 사진을 올린 이는 백민정이지만 여기에 '좋아요'를 누른 동료 배우 임혜영으로 인해 비공개 발언이 퍼져나갔다. <두 도시 이야기>에 함께 출연 중인 임혜영은 2011년 KBS2 <남자의 자격> 합창단 편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린 배우다. 뮤지컬 배우라기 보다는 연예인 이슈 시각으로 접근한 것이다. 거기서 시작된 기사는 확대 재생산 되면서 아직도 많은 이슈를 만들어내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언론과 대중은 무얼 밝혀냈나. 배우만 일방적으로 몰매 맞는 형국이다. 배우도 똑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이 과정에서 실종됐다. 백민정 발언에서 알 수 있는 건 글을 쓸 무렵 그가 심신이 피로했다는 사실 밖에 없다. 그러나 세상은 한 배우의 됨됨이가 막장이라는 증거로 치부했다. 내용 없는 폭로가 얼마나 기만적인지, 한 사람을 어떻게 극도의 공포로 몰아 넣을 수 있는지 확인해 줄 뿐이었다.

대중들 역시 이 사태의 본질을 보다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뮤지컬 팬들은 백민정이 지금까지 19년 동안 어떤 최선의 공연을 보여줬는지 잘 알고 있다. 단 한 순간의 발언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지만, 오랜 시간 공연 담당 기자 일을 하면서 뮤지컬 배우로서 그녀의 인성이 나쁘다는 소문은 듣지 못했다.

선배인 이정열 배우 역시 “배우로서는 물론이고 인격적으로도 선하고 좋은 사람입니다. 무대 위에서 전력투구를 다한 한 배우의 투정으로 봐 주시길 바랍니다. 부탁드립니다. 이 녀석...지금 얼마나 마음 아파할지..”라는 발언을 했다. 현재 <뮤직박스>에 출연중인 대학 동기 황만익 배우 또한 백민정 배우에 대한 애정을 담아 비슷한 발언을 했다.

백민정의 추후 행보는 어떻게 될까. <두 도시 이야기>의 마지막 공연까지 쭉 함께 한다고 했을 때 관객들은 과연 백민정을 진심으로 환영할까? 아니면 못 마땅해 할까? 초반엔 아마도 후자가 더 많을 거라 생각된다. 이전보다 관객들의 시각은 분명 냉랭할 수 있다. 하지만 거짓말 하지 않는 무대, 최선을 다한 공연을 보여준다면 진심은 분명 전달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두 도시 이야기>측은 배우와 팬들이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행사를 기획해보는 것도 좋겠다.

현재 백민정에게 필요한 건 관객들의 눈높이로 내려와 세간의 비판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관객과의 진짜 소통과 사랑’이 필요한 때이다. <두 도시 이야기>의 주제가 뭔가. ‘숭고한 사랑과 희생’ 아닌가.

마지막으로 휴대전화만 열면 본인 생각을 쓸 수 있고 수천 개의 반응이 오지만, SNS가 태생적으로 혼자만의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적인 공간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 홍명보 새 축구대표팀 감독이 기성용 사건 이후 SNS 활용법에 대한 교육을 실시한 것처럼 뮤지컬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SNS 교육을 실시해야 하는 날이 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엠뮤지컬 컴퍼니, 비오엠 코리아, 백민정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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