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물에 녹여낸 하위주체의 목소리
‘더 테러 라이브’ 창작자의 예민한 촉수

[엔터미디어=황진미의 편파평론] △이 영화 찬(贊)△. <더 테러 라이브>는 테러범의 대국민 인질극을 TV로 생중계한다는 기상천외한 설정을 품은 사회극이다. ‘대세 하정우’의 미친 연기력이 빛을 뿜는 가운데, 상업영화감독으로는 신인에 속하는 김병우 감독의 독창성과 패기가 돋보이는 수작이다.

◆ 팽팽한 긴장 속 허를 찌르는 풍자

여느 때와 다름없는 평화로운 아침.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의 청취자 의견을 듣는 도중, 자신을 50대 노무자라고 밝힌 사람이 횡설수설하다가 마포대교를 폭파하겠다는 말을 한다. 다행히 이 말은 방송에 나가지 않았지만, 곧 마포대교가 진짜로 폭파된다! 수 년 동안 TV 마감뉴스 앵커였으나, 최근 불미스러운 일로 라디오프로그램으로 밀려난 윤영화 앵커(하정우)는 재빨리 머리를 굴려, 테러범과의 통화를 독점생중계하려 한다. 이를 기회로 TV앵커 자리로 복귀하려는 것이다. 빠르게 머리를 굴리는 것은 윤영화 앵커만이 아니다. 보도국장은 시청률을 올리는데 혈안이고, 처음엔 만만하게 보였던 테러범은 방송을 대가로 돈을 요구한다.

윤영화 앵커는 자기가 상황을 주도한다고 생각했지만, 대테러 팀장이 방송국에 급파되고 테러범이 2차 테러를 언급하면서, 오히려 인질이 되어 계속 방송을 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린다. 게다가 얼마 전 이혼한 윤영화 앵커의 전처는 기자로 현장에 투입되었다가 다른 시민들과 함께 마포대교 상판에 고립되는데....

대단히 흥미진진한 상황들이 끊임없이 전개된다. 설정만 재미있고, 이후엔 살이 붙지 못해 앙상한 몰골을 드러내는 영화도 많지만, <더 테러 라이브>는 계속해서 빽빽한 갈등과 긴장의 요소들이 물밀듯 밀어닥친다. 어느 것 하나 그냥 가지 않는다. 테러범의 요구사항은 무엇인지, 방송국에선 어떤 자리다툼이 벌어지는지, 경찰은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 정치권은 어떤 원칙으로 움직이는지. 여기서 이들 각자의 욕망은 무엇이고, 가장 우선시 하는 가치는 무엇인지. 대단히 정밀하고 긴박한 묘사가 켜켜이 쌓이는 가운데, 팽팽한 긴장 속에서 허를 찌르는 풍자도 기가 막히다. 권력과 이해관계가 얽힌 구조 속에서,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의 형국으로 누가 누구의 뒤통수를 치는지 눈여겨보는 것만으로도 장르적인 쾌감이 넘치는데, 테러범보다 더 테러범 같은 언론과 경찰과 정치권의 진면목을 보는 심정은 실로 오싹하다.



◆ 쫄깃한 하정우의 생체의학적인 연기

장르적 재미는 물론이고, 선연한 사회비판의 메시지까지 담고 있는 농밀한 시나리오와 신인감독이 돌직구로 밀어붙인 연출도 출중하지만, 상영시간 내내 관객의 뇌리를 움켜쥐는 절대적인 힘은 하정우에게 있다. 이 영화의 공간은 극히 제한적이다. 마포대교가 폭파되거나 건물이 붕괴되는 스펙터클한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대부분의 상영시간 동안 영화는 라디오 녹음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을 담는다. 영화에서 공간의 제한은 자칫 치명적일 수 있다. 대사를 위주로 하는 TV드라마와 달리, 영화는 넓은 스크린을 채우는 다채로운 공간의 활용을 가장 큰 무기로 삼는다. 이 영화는 공간의 시각적 쾌감을 배우로 대체한다.

영화는 상영시간 내내 하정우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잡는다. 영화에서 가장 스펙터클 한 것은 시시각각 변해가는 하정우의 얼굴이다. 그는 처음에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테러범과 보도국장을 낚는 듯이 보였지만, 곧 생방송 스튜디오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인질신세가 된다. 그는 귀에 폭파장치가 설치되어 있다는 테러범의 말에 따라, 매순간 기폭장치의 신호음을 들으며 한 마디 한 마디 숨을 골라야 한다.

자신과 전처와 다른 인질들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순간이지만, 신뢰받는 앵커로서 카메라 앞에서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한 양 표정관리를 해야 한다. 그는 테러범과 보도국장과 대테러 팀장의 협박과 요구를 동시에 들으며, 매순간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밀당’을 구사해야 한다. 이 와중에 경쟁사는 그의 비리사실을 까발리고, 그는 사회적 매장을 눈앞에 둔 채 카메라 앞에서 최대한 자신을 변호해야 한다.



여기서 배우의 연기는 중층적이어야 한다. 점점 사색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그것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 토할 것 같은 긴장을 견디면서, 계속 표정관리를 하는 모습을 이중 삼중의 마스킹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단순히 감정을 폭발시키는 연기는 쉽다. 그러나 폭발직전의 감정을 최대한 자제하며 상대와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응대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여기서 하정우는 가히 생체의학적인 연기를 보여준다. 액션이 아니라 교감신경에 의한 생체반응으로 연기를 한다. 그는 정말로 눈 밑이 어두워지거나, 얼굴이 벌게지고, 점점 귀까지 벌게지는 등의 미묘한 낯빛의 변화를 보여준다. 긴장을 표현하기 위해 손을 떠는 식의 액션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목덜미에 살짝 소름이 돋거나, 동공이 확장되거나, 약간 초점이 흐려지거나, 결막에 실핏줄이 곤두서는 등의 자율신경계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다. 실로 거짓말 탐지기를 동원한다 한들, 하정우의 생체반응이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분하는 것은 힘들어 보인다.



◆ 하위주체의 목소리, 그리고 임박한 파국

영화는 테러범이 누구인가 하는 것을 반전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반전이 아니다. 누구든 중반 이후에는 그가 자신이 말하는 액면 그대로의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챌 수 있다. 언론과 경찰과 정치권은 그가 신분을 속였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대변하고자 했던 ‘한 번도 말해지지 않은 존재의 목소리’이다.

이른바 ‘하위주체의 목소리’로서, 노동계급의 생생한 육성이 스크린 안팎에 울려 퍼진다. 30년 전 마포대교를 직접 건설했지만, 여전히 50대의 나이에 철야수당 2만 5천원을 받기 위해 비오는 밤에 위험한 공사를 하다 죽은 노동자, 보상도 사과도 받지 못한 하찮고 억울한 죽음. 언론이나 경찰이나 정치권, 어느 누구도 이들 노동자의 목숨은 물론이고, 평범한 인질들의 목숨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테러범은 인질의 죽음에 사과하지만, 그들은 끝끝내 사과하지 않는다.

영화는 하위주체의 피맺힌 목소리를 전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본과 권력의 모순을 실컷 까발려 놓고 적당히 봉합하지 않는 ‘화끈한 엔딩’으로 서늘한 카타르시스를 안긴다. <명왕성>,<설국열차>,<더 테러 라이브> 등 사회모순을 다룬 최근의 한국영화의 엔딩은 모두 아나키즘적인 파괴를 담고 있다. 창작자의 예민한 촉수가 임박한 파국을 감지한 것이다. 단언컨대, 이 체제의 끝이 멀지 않았다.

칼럼니스트 황진미 chingmee@naver.com

[사진=영화 <더 테러 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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