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꾼 이자람이 선사하는 새로운 판소리의 세계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본능에서 나오는 소리가 추임새라고 했던가. 판소리 <사천가>가 공연 중인 충무아트홀 객석에선 ‘잘한다’, '좋다', '얼씨구', '이쁘다'가 절로 쏟아져 나왔다.
그 중에서도 ‘사랑은 비터스윗’이란 대목이 <사천가> 맛을 그대로 전달한다. 달콤쌉쌀 카베르네 쇼비뇽, 달콤한 비바 화이트 와인, 톡톡 피어오르는 스파클링, 깊은 인생의 맛이 담긴 샤또 시삭 임페리얼, 상큼한 보졸레 누보 모두가 담겨 있는 판소리였으니 말이다.
우리네 판소리라고 해서 걸쭉한 막걸리 맛만 예상한 관객들은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 사천가의 수십 가지 와인 맛에 빠져들었다. ‘짜릿한 시원함과 흥’이 새로운 판소리의 세계로 안내했다. 그 중에서도 일등공신은 주인공 ‘순덕’이로 분한 소리꾼 이자람이다. 이자람은 다섯살에 '예솔아 할아버지가 부르셔'란 노래로 데뷔, 열두 살에 판소리에 입문, 현재 국악인의 길을 걷고 있는 아티스트다.
판소리 소믈리에가 있다면 바로 이자람이 1호가 될 듯 싶다. 신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 와인이라면, 인간이 또 다른 인간에게 준 최고의 행복은 판소리였으니 말이다.
2007년 초연된 <사천가>는 20세기 서양 연극사를 대표하는 독일 극작가 브레히트 작품 '사천의 선인'에 우리 색깔을 입힌 현대 판소리다. 21세기 한국적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이번 작품은 착하디 착한 뚱뚱한 백수 처녀 ‘순덕’이가 주인공이다.
‘착한 아줌마가 되는 게 꿈이었다’고 밝힌 이자람, 아니 순덕은 신(神)들이 건넨 돈으로 분식집을 차린다. 하지만 온갖 사람들이 몰려와 분식집을 거덜 내는 통에 순덕은 착하게만 살 수가 없다. 착한 뚱녀를 지키기 위해 악독한 오빠가 출현해야만 하는 얄궂은 세상 이야기다.
소리꾼 이자람이 해설자 뿐 아니라 대사, 노래를 번갈아 가며 1인 15역을 한다. 한복 치마에 양복 저고리를 입은 소리꾼은 부채와 모자 간단한 소품 만으로 전통과 현대, 여성과 남성, 선과 악의 특성을 자유자재로 불러냈다. 이자람의 매력 터지는 목소리와 몸짓으로 탄생한 수많은 인간군상은 그렇게 유쾌함과 눈물이 공존하는 최고의 모노드라마를 완성시켰다.
판소리 <사천가>는 한 사람의 소리꾼이 극을 이끌어가는 판소리에, 독특한 마임의 막간극과, 타악을 결합한 모던한 연주가 더해져 보다 생동감 있는 극으로 탄생했다. 무엇보다 ‘사람의 삶’을 이야기 하고 있는 판소리의 매력이 극대화된 점이 매력 포인트다. 사람의 삶에 희로애락이 다 있듯 소리꾼은 신명날 때 신명나게 놀고, 풍자할 때 풍자하고, 화날 때 화를 낸다. 관객이 공감 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사느냐 보다는 ‘살아남는 자만이 강하다’라고 강요하는 세상 속에 던지는 유쾌하고 통쾌한 우리들의 속 시원한 외침이다. 시대와 관객들을 고려해 새롭게 대사를 짜 자기만의 특징적인 소리로 완성하는 ‘더늠’이 신적인 경지에 오른 이자람은 돈이 최고인 세상을 향해 일갈한다. ‘사람답게 살자’고.
2010년 폴란드 콘탁(Kontakt) 국제연극제 참가하여 소리꾼 이자람은 ‘최고 배우상(The Award for the Best Actress)’을 수상하기도 했고, 이후 시카고 월드뮤직페스티벌, LA 한국문화원, 뉴욕 APAP 아트마켓, 프랑스 리옹 국립민중극장, 시립극장, 아비뇽페스티벌 등에 초청받기도 했다. 특히 이승희, 김소진과 함께 참여한 프랑스 아비뇽페스티벌에서는 공연 중간에 기립박수를 받는 등 매 공연마다 전석 매진이라는 이례적인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사천가>는 판소리를 토대로 새로운 작품을 창작, 공연하는 판소리만들기 ‘자’ 가 제작 한 작품. 이자람이 예술감독으로 있는 판소리만들기 ‘자’ 는 창작 판소리 <사천가>, <허세가>, <앙드레 삼월이>, <억척가> 외에도 이자람의 네 번째 완창 판소리 <적벽가>를 만들었다.
충무아트홀 블랙에서 지난 9일 개막한 <사천가>는 세 명의 소리꾼 이자람, 이승희, 김소진이 8월 4일까지 최장기 공연을 꾸려간다. 배우 이윤재 권택기 오대석 이윤정, 악사 장혁조 이향하 신승태 박상준 김홍식 김솔지가 함께한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판소리만들기 ‘자', ㈜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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