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을 기다리며><품바> 배우 박호산 [인터뷰]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돌직구 인터뷰] “배우 손 안에 대본이 없으면 슬퍼져요. 대본이 없으면 친구도 없어요. 돈도 없어요. 작품을 쉬고 있는 동안 전 직업이 없어지는 거죠. 그 긴 시간 동안 무작정 기다리다보면 제가 잉여인간이 된 기분입니다. 연극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기다림인 것 같아요.”

최근 뮤지컬 <내사랑 내 곁에>, 연극 <광해: 왕이 된 남자>,<14人(in) 체홉>에 이어 뮤지컬 <영웅을 기다리며>와 마당극 <품바>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 배우 박호산을 만났다.

■ <즐거운 인생>을 기다린 불안하고 뜨거운 피

-작품이 끊이지 않는 배우다.
“최근엔 여섯 작품을 함께 하기도 했는데 ‘다시는 안 그럴게요’. 정말 눈 뜨면서 눈 감을 때까지 작품 생각만 했어요. ‘제 자신이 어디까지 하나 보자’ 라는 마음도 은연 중 있었던 것 같아요.”

-배우들이 작품을 쉬고 있을 때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는 말을 들었다. 혹시 그런 불안감 때문에 쉬지 않고 작업을 하나
“세무신고 하러 가면 ‘왜 왔어요’ 분위기도 보이지만 배우가 제 직업이에요. 그런데 그 배우가 직업도 없이 그 긴 시간 동안 견딘다는 건...당연히 불안하죠. 희망도 있지만요. 전 배우 손 안에 대본이 없는 게 가장 슬픈 일이다고 봐요. 연극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건 기다림인 것 같아요. 다음 작품은 언제 들어올까?,란 걱정은 배우라면 다들 한 번씩 해본 고민일 겁니다. <즐거운 인생>을 작업하기 전까진 저 역시 계속 그런 하루하루를 보냈어요.(작업욕심이 많은가?란 질문에) 우선은 배우로서 절 불러준 게 고맙죠. 그리고 ‘내 스케줄이 이러 이러하다 괜찮겠느냐’ 라고 물어봐요. 그래도 괜찮다고 하면 오케이 해요.”

-배우가 다작을 하는 게 관객 입장에선 여러 인물이 겹쳐 보여 단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제가 제일 신경 쓰는 부분도 ‘캐릭터라이징’입니다. 물론 이전 작품 이미지를 가지고 다음 작품에 쓰는 배우도 있겠죠. 하지만 하나의 캐릭터를 만들었으면 다른 캐릭터와 겹치지 않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한 작품을 오래하다 보면 무얼 하는지 모른 채 녹아버리기도 하는데, 여러 작품을 함께 하다보면 각 작품에 참여할 때마다 리프레시 되는 장점도 있는 것 같아요. 역할 바꾸기 놀이가 재미있어요. 많을수록 더 재미있고 변별력이 생기기도 해요.

제가 12월에 백암 아트홀 무대에 오르는 연극 <이>(爾) 에 참여하게 됐어요. 이번엔 장생 역으로 관객과 만나요. ‘공길’에서 ‘연산’, 이젠 ‘장생’으로의 변신인데, 이런 행보가 스스로 마음에 들어요. 장생이 공길 같지 않고, 또 연산 같진 않겠죠. 연산 역은 김뢰하 선배가 해요. 극단 우인의 창단 멤버였던 오만석이 연산 역을 하고 싶다면 저희는 오케이 할 겁니다. 스케줄이 맞기만 한다면요.”

-2004년에 공연된 김태웅 연출의 <즐거운 인생>을 재밌게 본 기억이 있다.
“<즐거운 인생>은 선배들이 많이 보셨어요. 술자리에 가면 선배들이 ‘네 이름이 뭐라고?’라며 관심을 보였는데, 그 때 자신감이 많이 생겼어요. 그 전에 <김치국씨 환장하다>란 작품에서 문성근씨 흉내를 낸 적이 있는데, 그 땐 ‘재주 좀 부리네’ 였다면 <즐거운 인생>은 더 많은 칭찬을 받았어요.

또 기억나는 건 <즐거운 인생>은 함께 출연한 김뢰하 선배가 절 배우로서 인정해준 작품이기도 해요. 그 전엔 ‘네가 (극단)연우야?’ 란 식으로 대했다면, 그 뒤엔 ‘네가 내 후배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줬죠. 뢰하 형은 한번 인정한 사람에겐 정말 잘 해주세요. 그 형이랑 이렇게 <품바>를 하게 되니 좋네요. <품바>하면서 소스를 가장 많이 알려준 선배이기도 합니다.“



■ 인간 박호산의 속 시원한 외침 <품바>

<품바-오리지널>(이하 ‘품바’)는 32년간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웃음으로 풀어낸 연극이다. 가장 낮은 자의 소리를 통해, 우리 안에 잠자고 있는 신명을 깨워 준 공연으로 평가 받기도 했다. 1대 품바 정규수를 비롯하여, 2대 정승호, 10대 박해미, 12대 최종원, 13대 박철민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등용문이었던 <품바>는 4년 만에 1인 극의 취지를 되새겨 그 대를 이어갈 배우 김뢰하, 장용철, 김왕근, 박호산을 만나게 됐다.

-<품바>는 노 개런티로 출연한다는 소식이 있던데, 어떻게 출연하게 된 건가
“우선 노 캐런티로 잘못 알려졌는데, 네 명의 배우 모두 러닝 개런티로 출연하기로 했어요. 객석의 30% 수익금을 배우들이 가져가기로 한 거죠. 소극장의 수익금이 많지 않다는 건 잘 아시겠지만, 그래도 개런티에 대해 궁금한 관객들에게 사실을 말해야 하는 게 옳은 것 같아서요.

<품바>는 2년 전부터 제의가 있었지만 시기적으로 맞지 않았어요. 그런데 선거가 끝난 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상태에서, 다시 제의가 들어오자 ‘꼭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됐어요. <품바>에서 제가 외치는 것들에 정치인들은 코웃음도 안치겠지만 제 속이라도 시원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저, 장용철, 김왕근, 김뢰하 선배가 뜻을 모으게 됐습니다. “

-사진만 봐도 네 명의 ‘품바’들이 다 다르다. 대본을 다 열어 논 건가
“14대 품바로 열연했던 선욱현 연출이 대본을 아예 열어놨어요. 시작은 각기 다르게 열어요. 물론 안에 있는 기본 내용은 같지만 극 구성이 달라요. 같은 공연 다른 느낌의 네 가지 버전의 <품바>를 만나실 수 있을 겁니다. 배우들도 각기 다른 콘셉트를 잡았어요. 장용철 선배는 아코디언을 들고 나온 철학자, 혹은 도사 느낌입니다. 행동 하나 하나가 그런 이유가 있어 보이는 게 매력 있어요. 김뢰하 선배는 트럼펫을 들고 나와요. 정신이 반쯤 나가있는 미친 과학자 분위기죠. 핍박을 심하게 받아 정신이 나간 지식인 느낌이 나기도 해요. 김왕근 선배는 채플린을 연상시켜요. 마술도 보여주시는데, 극 중 넝마를 입은 광대 인상이 확연하게 느껴질 겁니다. 저요? 기타를 들고 버스킹 하는 길거리 가수로 나옵니다.“

-관객들은 <품바>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지 않나
“저 역시 구태의연하다. 예스럽다는 고정관념이 있었어요. 요즘 관객들이 과연 이 작품을 보고 싶어할까? 란 의문도 가졌죠. 그런데 대학로 주 관객층 말고 어르신들이 자주 찾아오세요. 그래서 직접적인 후기나 이런 건 많이 없는데, 어르신들이 좋아하세요. 저희 장인 어른도 제 공연 말고도 다른 배우들이 나오는 날로 자주 보러 오세요.

그리고 막상 대본을 읽어보니 깊이가 있어요. 단순히 거지들이 엿 팔고 노는 마당놀이로 끝나는 게 아닌 민족과 국가에 대한 엄청난 철학이 담겨있어요. 원작자인 김시라 선생님의 대본을 읽을수록 보수주의자의 면모가 느껴져요. 아이러니라면 그 보수 정신을 가지고 진보를 이야기 하고 있어요. 결국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진보가 아니라 상식이라는 의미죠.”

-정치 쪽으로도 관심이 많은 배우로 안다. 이 점이 <품바>란 작품과도 잘 어울린다.
“<품바>를 하면서 토요집회도 매일 나가고 있어요. 이 작품은 관객 참여 형 연극이에요. 단순히 대본을 외워서 이야기 하는 게 아니라 배우의 역량이 물처럼 흘러야 해요. 밖의 이야기를 제대로 들어야 작품을 제대로 보여 줄 수 있게 되는 거죠. 위에서 발언을 막지 않냐고요? 나 같은 것도 막을까? 어떻게 막을까? 그러다 에라 모르겠다는 마음도 있어요. 그런 말을 하죠. 셋만 모여도 정치가 이뤄진다고. 둘이면 상관없는데, 셋 이상이 모이면 한쪽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정치를 하게 돼요. 그게 서글프기도 하지만 그런 거 생각 안하고 작업 하려고 합니다.”



■ 초연 배우의 힘! <영웅을 기다리며>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실제 ‘난중일기’에 없는 3일간의 묘연한 행적을 재기 발랄하고 엉뚱한 상상으로부터 그려낸 창작 뮤지컬 <영웅을 기다리며>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진정한 ‘영웅’이 과연 누구인지를 떠올리게 된다. 2013년 시즌에선 배우 박호산, 임기홍, 원종환이 번갈아 가며 이순신으로 분한다.
-이현규 연출의 <영웅을 기다리며>에도 출연 중이다. 2009년 초연에 이어 다시 돌아왔는데 어떤 '영웅‘을 보여주고자 하는가
“<영웅을 기다리며>란 작품의 시작은 ‘누구나 영웅이 될 수 있다’였어요. 성군 혹은 대단한 사람이 아닌 ‘우리 곁에 있는 평범하고 친숙한 영웅’을 보여주고자 했어요.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울고, 막달을 지키지 못해 애처로워 하는 어찌 보면 옆집 아저씨 같은 인물입니다. 초연엔 보다 진중한 인물이었던 이순신이 재공연을 거듭하며 코미디 적으로 강조된 감이 있었는데, 이번엔 나라를 지킨 장군으로써 ‘충’ ‘효’를 좀 더 살려냈어요. 난중일기 속 이순신 장군의 자상한 모습과 인간적이고도 소박한 모습도 함께 담아내야죠.”

-초연 관객과 지금의 관객 반응이 달라진 건가
“초연 땐 '작은 월급이지만 행복하게 살자‘라는 식의 보다 긍정적인 관객 반응이 있었다면, 재공연을 거듭해가고, 대통령이 바뀌고 국민들의 인식이 바뀌면서 ’공연을 보러 왔으니 티켓 값에 맞는 향응을 제공하라. 재미있게 해달라‘는 입장이 많아진 것 같았어요. ‘갑’과 ‘을’의 관계가 시작된 거죠. 정치가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어요.”

-정치적 발언을 듣다보니 변정주 연출과 통하는 지점이 많을 것 같다
“그만한 페이스 북 친구도 없죠. 가끔 소주잔 기울이기도 하는데, 술자리에선 그런 정치적 이야기는 피하기도 하죠.(웃음) 연극 <아가멤논> 작업을 함께 한 적도 있는데, 작업 쪽으론 부딪치기도 했어요.”

■ 뱃 속에서 죽은 내 아이 <완득이>

-기국서 연출의 ‘햄릿 4’를 보며 배우가 되기로 마음먹었다고 들었다. 기 연출과 작업을 한 적은 없나
“기국서 선생님에 대해선 여러 가지 이야기만 들었어요. 예를 들면, ‘넌 너무 연기가 노래, 빨갛게 해봐’란 디렉션을 주신다고 하더라구요. 직접 작업 해보진 못해서 자세히는 모릅니다. 연극판이 친한 사람끼리 그룹지어지는 게 많아 생각보다 인연이 닿지는 않았어요. 연우무대랑 작은신화 극단이 친하다면, 기국서 연출님이 계신 극단 76은 김낙형 연출님이 계신 극단 죽죽과 친분이 깊죠.”

-기국서 연출님을 꼭 한번 만나고 싶을 것 같다.
“선생님은 ‘솟대’같은 존재죠. 생각하면 따뜻해지고 말 할 수 없는 그리움이 생기는. 그 점에서 오광록 선배도 마찬가지입니다. (오광록 배우 목소리 톤으로)‘우리는 새다. 조용히 해라. 너희는 떠오르는 태양에게 미안하지도 않냐’. 이 대사는 마로니에 공원에서 광록 선배랑 같이 있을 때 직접 들었던 대사입니다. 이 대사가 정우성, 이정재 주연의 영화 <태양은 없다>에도 삽입된 걸로 알아요.”

-박호산 표 똥주를 결국 만나지 못했다. 완득이 역 한지상 정원영 배우도 완득이에 대한 애정이 대단하더라.
“삼청 교육대 조교 같은 무서운 이미지 하나, 완득이의 엄마 이야기를 할 땐 얄미울 정도로 약을 올리는 전혀 다른 이미지, 이렇게 두 가지 잣대로 똥주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더블 캐스팅 된 김진수 형과도 많이 친해져 ‘내가 더 잘 할 수 있어’란 농담도 주고 받으며 무대에 올릴 날만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런데 작품이 엎어졌으니 ‘아이가 태어나지도 못하고 뱃 속에서 죽은 느낌’이죠...”

-작품을 올릴 수 없겠다는 공지가 났던 당시 상황을 이야기한다면
“연출팀이 와서 ‘죄송한 공지를 하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저희들은 장난으로 받아들이고 ‘만우절 개그 치곤 너무 세다. 그럼 다음 개그는?’ 이렇게 반응했어요. 그런데 점점 ‘저게 진짜구나’라는 느낌이 오니. 다들 충격을 받았어요. 연출님이 돈을 구하러 다녔지만 안 됐다는 말에 노개런티, 후불제로 가겠다는 말까지 나왔어요. 결국 개런티가 아닌 제작비 문제라는 걸 알게 되면서 속상한 마음에 낮술을 먹기 시작했어요. 이러니 연극쟁이들이 술을 안 먹을 수가 없어요. 선배들이 한명씩 돌아가면서 계속 술을 샀어요. 결국 새벽 4시까지 원 없이 술을 먹었어요. ”

-이석준 배우와 함께 한 <건메탈 블루스>도 중간에 공연이 중단된 적이 있다.
“한 작품이 관객과 만났느냐 만나지 않았는냐는 상당히 중요한 차이라고 봐요. 그래서 관객이 한명일지라도 그 공연을 해야 하는 게 맞고요. 1회라도 공연을 했다는 건 관객과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는 거잖아요. <건메탈 블루스>도 아픈 기억이 있지만, <완득이>는 너무 너무 아팠어요. 다 만들었는데 관객과 단 한 번도 만나지 못했으니...”



■ “박호산은 공연계의 유재석이다”에 대한 진실

1996년 뮤지컬 <겨울나그네>로 데뷔한 배우 박호산은 뮤지컬 <빨래>, <형제는 용감했다>, <광화문연가>, <에릭사티>, <총각네야채가게>, <오디션>, <미스터마우스>, 연극 <미친키스>, <철수와 만수>, <임대아파트>, <갈매기>, <추적>, <디너>, <해마>, <벚꽃동산> 등 작업을 해왔다. 최근엔 독립 영화 <족구왕> 작업도 끝마쳤다.

가을엔 최원종 작가 겸 연출의 <에어로빅 보이즈> 두 번째 시리즈 <헤비메탈걸즈>에서 배우 서현철 염혜란 황석정 구혜령 등 연기파 배우들과 함께 출연 한다. 연극과 뮤지컬 쪽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박호산은 올 연말엔 tvN 사극 드라마 <금이가 그린 놈>에도 출연 할 예정이다.

-현재 <나와 할아버지><달을 품은 슈퍼맨>에 출연중인 배우 오의식이 ‘박호산 형님은 공연계의 유재석이다’고 말 한 적이 있다.
“아...제가 안티 팬은 없는 편입니다. 그런데 안티 기획자는 있어요.”

-기획자들 앞에서 배우들이 소리 높이기 쉽지 않은데, 필요한 말을 꼭 하나보다. 그래서 안티 기획자가 생긴 건가. 미리 말하자면 인터뷰 타이틀이 ‘돌직구 인터뷰’다. 인터뷰이가 말한 대로 다 나갈 건데 기사로 내 보내도 되는가
“JTBC <표창원의 시사 돌직구>도 좋아하는데, 제 발언으로 남이 피해보는 경우가 아니라면 다 내보내도 됩니다. 선배들이 저에게 하는 말이 ‘넌 너무 연극 마인드야’ 였어요. 그럼 또 전 물어보죠. ‘연극 마인드란 뭔가’ 그랬더니 ‘정의의 마인드’란 답이 돌아오더군요.

예전에 <형제는 용감했다> 재공연을 하며 포스터 때문에 문제가 벌어진 적이 있어요. 포스터에 제 사진은 하나도 없이 정성화 배우로만 채워져 있었어요. 솔직히 초연 배우는 저인데, 재공연을 하면서 모든 공은 성화에게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리고 출연진 명단에서도 제 이름이 뒤에 가 있었어요. 나이나 경력이나 제가 결코 밀리지 않는데 말이죠. 물론 제가 성화를 싫어한다는 그런 의미는 아닙니다. 제 아들도 포스터에 아빠 사진이 없으니 ‘아빠 이번엔 공연 안 해?’라고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기획자에게 따졌어요. ‘이 모든 게 다른 배우가 유명하기 때문이냐?’고. 그럼 인정하겠다고. 그런데 그것도 아닌 다른 답변들을 하는 거였어요. 이것 말고도 주조연들과 달리 지급되는 특별 공연 페이 때문에도 싸움을 벌인 적이 있는데, 이런 저의 발언들을 다 곱게 보지 않으셨어요.”

-30대 시절 피가 상당히 뜨거웠나보다.
“제 10부터 30대까지를 쭉 돌아보면 사랑-직업-외로움-불안함이란 단어가 스르륵 지나가요. 첫사랑을 만난 10대를 지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20대를 맞이했어요. 12동안 공부한 게 학력고사 하루로 결정이 되던 날이죠. 정신이 멍해졌어요. 너무 화가나 교과서며 참고서며 다 모아서 불태우기도 했죠. 성격 한번 더러웠죠. 그리고 30대가 됐어요. 이혼 직전까지 갔고 아이는 둘이고. 제 손엔 대본도 없고 친구도 없고. 돈도 없고. 외로웠어요. 서른아홉이 돼서 ‘내가 인생을 잘못 살았구나’라는 반성이 몰려오기 시작했어요. 그 전엔 저에게 안티 거는 사람을 직접 찾아가서 ‘뒤에서 이야기 하지 말라’고 이야기했어요. 제가 건넨 칼날에 다친 사람도 생겼을 겁니다. 그건 아닌데...”

-박정환에서 박호산으로 이름을 바꾼 것도 그 때문인가?
“반성도 제 성격처럼 밀려왔어요. 내가 죽든가 사단이 나야지. 어떡하지 죽을 수도 없고... 그렇게 반성하던 그 즈음 꿈을 꿨는데, 생전 만나보지 못한 할아버지가 꿈에 나왔어요. 그런데 절 ‘호산’이라고 부르는 거에요. ‘호산아’ 이렇게 부르는데 혼나는 느낌도 들고 기분이 괜찮았어요. 지금도 누군가 제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런 기분이 들어요.”

-이름 바뀐 뒤로 성격도 달라진 건가
“주변에서 많이 죽었다고 하는데, 까칠한 건 아직 남아있어요. 형들한테 대들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오지랖이 넓은거죠(웃음). 차라리 정치쪽으로 오지랖이 넓은 게 나은 것 같아요.”

-배우들 사이에선 그 누구보다 정의로운 배우 아닌가
“지금보니 ‘정의’란 칼로 서걱 서걱 베고 다닌거였어요. 제가 최근에 결혼식 대신 김동화 작, 박호산 연출의 연극 <여왕개미>를 무대에 올린 적이 있어요. 김동화 배우와 새로운 인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하고 결혼식보다는 공연을 함께 올려보자고 결정한 거죠.(재혼이라는 용어를 써도 되겠냐고 묻자)네. 재혼 맞습니다. 쓰지 않아야 할 이유도 없죠. 저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연극이었는데. ‘내가 저렇게 못되게 살았구나’란 생각이 들어 많이 울었어요.”

정의로운 배우 박호산의 뜨거운 이야기는 2시간이 넘게 이어졌다. 귀를 쫑긋하게 만든 마지막 발언은 “연극쟁이들은 밥 먹는 값으로 술을 먹어요. 단골이 생기는 거죠. 모종의 카르텔이 형성돼요. 하하”. 다음엔 연극 마인드로 무장한 인간 박호산과 술 한 잔을 마주한 채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진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연극열전, 파파프로덕션, 극단 가가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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