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이 내린 목소리 소프라노 김상희 열연 빛나

[엔터미디어=정다훈의 문화스코어] 지난 9일 개막한 예술의전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는 타이틀 롤을 맡은 소프라노 김상희의 ‘신이 내린 목소리’가 빛난 무대였다.

A팀과 B팀의 <투란도트>를 모두 만나 본 결과, A팀에서 눈에 들어 온 가수는 류 역 소프라노 곽진주였으며, B팀을 빛나게 한 가수는 투란도트 역 소프라노 김상희였다. 얼음공주에서 사랑에 눈 뜬 공주로의 변신까지 김상희의 연주와 연기는 모두 몰입도가 높았다. 특히 아리아 ‘먼 옛날 이 궁전에서’의 포르티시모는 훌륭했다. 고음부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유연하고 황홀한 소리는 ‘신이 내린 목소리’라 할 만했다. 젊은 성악가 곽진주는 연기가 완전히 무르익진 않았지만 소리통이 크면서도 촉촉한 음색이 귓가를 사로잡았다. ‘얼음장 같은 공주님의 마음도’(Tu che di gel cinta)에서 보여 준 호소력 있는 보이스가 좋은 인상을 갖게 했다.

독일 아욱스부르크 오페라극장 전속 테너로 활동 중인 칼라프 역 테너 김지운은 소리의 결은 좋았으나 볼륨감이 부족하고 경직된 감을 준 점이 아쉬웠다. 2010년 초연에 이어 다시 한번 캐스팅 된 또 다른 칼라프 역 테너 윤병길은 호소력 있는 음색과 연기가 좋았음에도 고음에서 피치가 불안하게 떨어진 점이 호감도를 떨어뜨렸다.

티무르 역 베이스 김철준은 푸치니 베이스라고 하기엔 소리의 질감이 가벼웠지만 음악성이 좋은 성악가였다. 장면 하나 하나에 가슴과 감정을 담아 표현한 점이 청중을 설득시켰다. 김민석은 베이스 특유의 풍부한 음색으로 무게 중심을 실었지만 가사전달력이 미흡했다. 이외 소프라노 이승은(투란도트), 소프라노 임수주(류), 테너 양일모(알툼), 바리톤 박영욱(만다리노) 등이 출연했다.

푸치니는 3막 칼라프 왕자를 연모하던 여자 노예 류가 ‘왕자의 이름을 밝히라’는 고문 앞에서 자결하는 일부까지만 작곡한 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의 제자 프랑코 알파노가 3막의 이중창과 피날레를 작곡해 유작을 완성시키며 1926년 밀라노의 스칼라극장에서 초연 무대를 가졌다.



2013년 예술의전당 가족 오페라 <투란도트>는 다양한 피날레 버전 중 알파노(Alfano) 1st version을 선보였다. 이 버전은 알파노 자신의 주관적인 의견을 줄이고 푸치니가 남겨놓고 계획한 스케치를 그대로 활용한 버전.

지중배 지휘자는 “알파노의 두 번째 버전보다 5분 정도 더 길다. 류의 죽음 이후 투란도트의 흔들리는 내면, 칼라프 왕자와 주고 받는 장면이 길어져 투란도트의 심리변화를 확연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고 전했다.

장영아 연출가는 2010년 초연했던 무대를 기본으로 상징적인 이미지를 더욱 강화했다. 장 연출가는 “‘사랑과 치유’에 초점을 맞춘 ‘투란도트’는 수수께끼, 왕자와 공주 등장 등 어른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쉬운 요소가 많아 가족오페라로 적합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의견을 밝혔다.

‘토우’ ‘등불’ ‘부채’로 신비로운 무대를 만들어낸 오페라다. 칼라프 왕자에 앞서 수수께끼에 도전했지만 풀지 못해 죽은 열두 명의 왕자는 유리관 속의 토우로 형상화했고, 핑, 팡, 퐁이 해학적으로 그려내는 사랑과 죽음의 메시지를 18개의 등불을 통해 전달한다. 망나니 푸틴 파오(하미희)와 경비병들의 손에 쥐어진 금속 부채는 어린이 관객들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날카로운 의미를 전달했다. 수수께끼 장면에서 볼 수 있는 가로 세로 및 상단에 설치된 붉은 천도 ‘사랑’이라는 종착역까지 가는 과정을 효과적으로 보여줬다.



다른 <투란도트> 작품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극의 긴장감을 지속시키는 군중들과 희극적 재미를 선사함은 물론 스토리텔러로 나선 중국관리 핑 팡 퐁의 존재감이다. 중국 출신의 안무가 리휘가 투입된 이번 작품은 중국 궁중무용의 동작들을 현대예술의 형식으로 풀어갔다. 베이징 시민으로 출연한 인천오페라합창단과 하모니어린이합창단은 공연 내내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움직여 조정당하는 군중의 내면을 감지하게 했다. 노래 연기 춤 모두를 소화하기 위해 열연한 핑(바리톤 나유창 박정민), 팡(테너 민경환 최상배), 퐁(테너 김건우 송승민)의 앙상블도 좋았다.

지휘를 맡은 지중배 지휘자는 빠른 템포로 리드미컬하게 프라임필하모닉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다만 푸치니의 화려한 관현악이 성악가들과 완벽한 합일을 이루지 못한 채 이어져 작품의 서정미와 비장미가 만족할 만큼 느껴지지 않았다.

공연전문기자 정다훈 ekgns44@naver.com

[사진=예술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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