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화,홍련’의 도전정신이 다시 필요한 이유

[엔터미디어=듀나의 영화낙서판] 다음 주 한국영상자료원에서는 영화 <장화, 홍련> 개봉 10주년 기념 상영회가 있다. 감독과 주연배우 임수정이 참석할 예정이다. 문근영도 오면 그림이 더 좋겠지만 연속극 주인공이 촬영장을 떠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장화, 홍련>은 다소 힘겹게 시작했던 영화이다. 처음 개봉 당시 이 영화에 대한 비평가들의 반응은 시원치 않았다. 뻔한 반전과 진부한 이야기가 지적됐고 '청담동 호러'라는 야유를 받았다. 하지만 개봉 이후 흥행에 성공했고, 이후 해외의 격찬이 이어졌다. 지금도 <장화, 홍련>은 <링> 이후 가장 훌륭한 아시아 호러 영화를 뽑는 투표에서는 늘 상위를 차지하고 종종 1위를 하기도 한다.

시사회 때 이 영화를 보았던 사람들은 무엇을 놓쳤던 걸까. 영화를 보기 전에 가져온 기대 이상을 보지 않았던 데에 문제가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들은 대부분 아주 쉬운 길을 갔다. 이 영화를 보면서 <링>이나 <오디션>의 영향을 지적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마찬가지로 이 영화의 텍스트를 가지고 초보적인 정신분석비평을 시도하는 것도 쉬운 일이었다. 그 방향으로 가기 시작하면 결론은 대부분 비슷해진다.

하지만 그걸 고려한다고 해도 당시 언론 시사회 때 모였던 관객들이 두 차례의 호러 장면에 너무나도 정직하게 반응했던 것을 분명히 기억하는 나에게 당시 비평적 반응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마 당시엔 호러 영화를 보면서 무서워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었고, 그 효과를 칭찬하는 것은 천박한 것이었나 보다.

<장화, 홍련>이 이후 한국 호러 장르에 끼친 부작용에 대해 지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후 충무로에서 나오는 호러 영화 절반이 <장화, 홍련>의 영향을 받은 '청담동 호러'였다는 것은 사실이다. (아마 그 마지막 영화는 <미확인 동영상>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영화들이 야마무라 사다코의 영향을 받은 긴 머리 귀신을 등장시켰다. 그렇다고 우리가 <링>의 중요성을 부정해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



한국 호러 영화의 문제점은 <장화, 홍련>을 낳았다는 것이 아니라, <장화, 홍련>을 포함한 몇몇 성공한 아시아 호러 영화의 프로토타입을 죽자고 울궈 먹었다는 데에 있다. 그것은 멍청하고 게을러 빠진 제살갉아먹기였으며, 우린 지금 그 결과를 보고 있다. 만약 그들이 <장화, 홍련>처럼 생긴 영화를 만드는 것 대신, <장화, 홍련>만큼 개성적이고 효과적인 호러 영화를 만드는 데에 집중했다면 지금 이 꼴은 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호러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들 중 그만큼의 지적 노력이나 도전정신을 가진 사람은 드물었다.

너무 비관적으로 이야기를 했나보다. 한국 호러 영화를 기계적으로 욕하는 것은 <장화, 홍련>과 <링>의 아류작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쉽다. 적어도 최근 한국 영화는 지난 몇 년 동안 반복되었던 자기 반복에서 어느 정도 벗어났다. 2013년 장르 호러 영화의 성과가 그렇게 좋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사실 그 중 몇몇은 처참할 정도로 나빴지만), <무서운 이야기 2>에 수록되었던 정범식의 <탈출>은 신나는 롤러코스터였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는 서툰 제목에도 불구하고 <더 웹툰: 예고살인>은 대중적인 15금 호러 영화로서 만족스러운 오락성을 갖추고 있었다. 이들이 모두 꾸준하게 호러영화를 만드는 감독들의 작품이라는 점에 더욱 안심이 된다.

그리고 단편영화제를 기웃거리면 늘 기대할만한 신인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그들 중 한 명이었던 허정의 <숨바꼭질>은 다소 실망스러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허정을 포함한 새로운 감독들에 대한 기대를 접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미래의 우리 영화에 대해 최소한의 낙관도 하지 않는다면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은 에너지를 도대체 어디서 얻는단 말인가?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오늘 이야기를 끝내기로 하자. 위에서도 말했지만 올해는 <장화, 홍련> 10주년이다. 하지만 올해로 10주년을 맞는 한국 영화는 또 있다. <올드보이>, <지구를 지켜라>,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살인의 추억>, <스캔들: 조선남녀상열지사>와 같은 영화들이 모두 이 해에 나왔다. 한국 영화 역사에 있어 거의 전설적인 해였던 것이다.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이를 기념해 '10주년 기념' 블루레이들이 쏟아져 나와야 한다. 한국의 블루레이 시장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으니 기대를 어느 정도 접을 수밖에 없긴 하지만 그래도 이들 영화를 기념하고 기억하려는 노력이 이렇게 빈약하다는 건 슬픈 일이다.

칼럼니스트 듀나 djuna01@empas.com

[사진=영화 <장화, 홍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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